[예수, 그 낯선 분] 정의가 관대함을 넘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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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정의가 관대함을 넘어설 수 없다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12.2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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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 - 1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붉은 포도밭>

마태 20,1-16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는 예수의 사회-경제적 비전이 잘 드러난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에서는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고, 지배와 착취에 반대하는 나눔과 섬김, 형제-자매됨, 상호성과 연대성, 그리고 친교가 실현된다. 따라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돈, 토지, 노동, 권력의 영역에 있어 대안적 방안들, 즉 경제적이고 사회-정치적인 구조의 변혁을 위한 초대이다.

이 비유의 주제는 하늘나라의 정의(正義)이다. 비유 말씀은 “하늘 나라는 ...와 같다.”는 표현으로 시작한다.(1절) 전형적인 비유의 도입이다.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고용한다. 비유의 사회적 배경을 이루는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에서 시골 농부, 어부, 소작인, 노예, 기술자, 품삯 일꾼 곧 일용 노동자는 사회의 하층민들이었다.

비유의 주인은 이른 아침에 나가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고용한다.(2절) 주인이 약속한 삯인 한 데나리온은 날품팔이꾼과 그의 가족이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이다. 그 후 주인은 아홉 시쯤에 장터에 나가 하는 일 없이 있는 서 있는 이들을 고용하며 정당한 삯, 곧 정의로운 삯을 주기로 약속한다.(3-4절)

여기서 장터란 그리스어로 아고라이다. 이 비유에서의 광경은 광장 혹은 장터라고 부를 수 있는 너른 터에서 선택을 기다리는 일용 노동자들을 포도밭 주인이 고용하는 상황인 것이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5절)

주인이 오후 다섯 시쯤에도 장터에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오후 다섯 시쯤이란 일몰이 다가오는 시각이다. 그래서 주인이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7절) 하루해가 저물 때까지 고용되지 못해 일용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주인은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라고 말한다. 주인은 저녁이 되도록 고용되지 못한 품삯 일꾼의 상황을 가엾이 여기고 함께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한 데나리온을 주도록 한다.(8절) 맨 먼저 온 이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했지만 역시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10절) 그래서 그들은 불평을 터뜨린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12절) 그러자 주인은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13절)라고 말한다. 그렇다. 주인은 정의를 행하였다. 왜냐하면 주인은 맨 먼저 고용된 이들과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불의라는 불평에 대해 주인은 합의한 정당한 삯을 지불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14절) 여기에서 가난한 이에 대한 주인의 관대함이 잘 드러난다.

15절에서 주인은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내가 선하다고 당신 눈이 악한 것이오?”이다. 여기서 주인의 선함과 불평자의 악함이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악한 눈”이란 시기와 질투, 관대함의 부족을 의미한다. 잠언 22,9은 “어진 눈길을 지닌 이는 복을 받으리니 제 양식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친다.

맨 먼저 온 이들과 주인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깨어진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질투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더 많이 일했으므로 더 많이 받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정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자신의 이익을 가난한 다른 이들에게 주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들의 정의는 사실 자신의 질투에 대한 포장에 불과했다. 그들의 정의는 관대함을 제한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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