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이웃이 아니었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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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이웃이 아니었다…그러나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12.04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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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30-37) - 1

역사적 예수의 일은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는 대안적 공동체 운동인 하느님 나라 운동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뒤따르는 것, 즉 그분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분의 비전(vision), 그분의 정신, 그분의 가치를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의 비전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자리 중의 하나가 그분의 비유 말씀이다. 이 비유 중에서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30-37)를 읽는다.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에게 질문을 한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이 율법 교사의 관심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예수에게 그 대답을 구한다. 영원한 생명에로 이르는 길은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을 통해서이다. 이 점에서 예수와 이 율법 교사의 생각은 같다.

그런데 율법 교사는 자기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고 묻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그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의 출발점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를 묻는다. 이에 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야기한다.

예수의 비유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과 예리코의 지형적 위치를 잘 표현한다. 예리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리고 예리코는 구약 뿐 아니라 신약성경에도 등장한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도시의 터는 구약 시대의 예리코, 신약 시대의 예리코 그리고 오늘날의 시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예루살렘은 평균 해발 760m에 있는데, 이곳에서 동쪽으로 즉 유다 광야로 39km 가량 내려가면 해수면 보다 258m 낮은 곳에 예리코가 위치한다. 따라서 예루살렘과 예리코의 고도차는 1,000m나 된다. 예리코는 사해에서 북서쪽으로 약 11km 떨어져 있고, 요르단 강에서는 서쪽으로 약 8km 되는 지점에 있다. 예리코는 유다 광야의 경계에 해당하는데 오늘날의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2km 가면 분당 4,500 리터의 물을 내는 술탄 샘(En es-Sultan)이 있다. 물이 귀한 이 지역에서 큰 샘인 셈이다. 이처럼 물이 풍부한 까닭에 예리코에는 직경 5km의 초원이 형성되어 있다.

신약성경 시대의 예리코는 구약 시대의 예리코인 텔 에스-술탄(Tel es-Sultan)에서 남서쪽에 위치하였다. 헤로데 대왕(기원전 37-4년)은 와디 킬트(Wadi Qilt) 양쪽에 하스모네아 왕가의 별장을 개조하여 궁전을 지었는데, 이곳이 툴룰 아부 엘 알라이크(Tulul Abu el-Alaiq)이다. 이 헤로데 궁전 남서쪽에는 요새가 있었는데, 이것을 그의 어머니 이름을 따라 키프로스(Kypros) 요새라 불렀다. 그리고 헤로데는 텔 에스-술탄의 남서쪽에 있는 텔 에스-삼라트(Tel es-Samrat)에 경마장과 반원형 극장을 건설하였다. 예수 당시의 예리코는 텔 에스-삼라트와 툴룰 아부 엘 알라이크 부근에 위치하였을 것이다.

예수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가 버렸다. 사실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는 율법 교사의 관점은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와 레위인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는 강도를 만난 그 사람이 이웃이지 못했다. 그들의 이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쳐다 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사제와 레위인은 유다인 중에서도 종교적 엘리트들이다. 유다인들의 율법에 충실했던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자신들의 제의적 정결(淨潔)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초주검 당한 이가 죽어 있기라도 했다면 부정한 것과 결코 접촉해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강도당한 이는 이웃이 아니라 배제와 분리의 대상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했다. 그것은 정결과 부정의 경계이다. 여기서 사제와 레위인은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 영성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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