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아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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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아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
  • 참사람되어
  • 승인 2024.04.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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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러 세상에 온 예수는 ‘교리’에 관심 없다 -2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요한 3,3)

예수님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또는 새로이 태어난 사람으로 규정지을 만한 어떤 특별한 자격 요건이나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를 위한 어떠한 의식(儀式)이나 전례도, 관습도 특별히 만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성전(聖殿)조차도 필요치 않았다. “당신들은 위로부터 새로 나야 한다고 내가 당신들에게 말했다고 해서 놀라지 마시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붑니다. 영으로부터 난 이는 모두 이와 같습니다”(요한 3,7-8).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은 믿음이다. 요한복음에서 믿음과 생명은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생명에로 일깨워지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표징이나 기적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은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단순히 그에게 의존하여 손 모아 비는 행위와는 다르다.

신앙은 또한 쉽게 달아오르는 격정 같은 것이 아니다. 또 신앙은 철학이 아니다. 신앙은 과학이 아니며, 도덕적 관념과 같은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신앙이란 앎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시는 외아들, 하느님이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요한 1,18)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현존이며,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분이며,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전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말한 영원한 삶은 진리를 안다는 것이며, 안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파견과 진리 사이에는 이중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분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리는 일이었고, 파견 그 자체가 바로 진리였다.

예수님의 파견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거짓말을 버리고 진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예수의 파견에 참여한다는 것은 교회라는 울타리 속으로, 제도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아는 믿음, 즉 진리의 삶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데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 여러분이 서로 사랑을 나누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13,34-35)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랑의 움직임, 그 과정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과정의 핵심이며,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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