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양 한 마리, 은전 한 닢, 아들 하나를 위한 식탁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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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양 한 마리, 은전 한 닢, 아들 하나를 위한 식탁공동체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11.21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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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 - 5
돌아온 탕자(Rembrandt,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 The Hermitage, St. Petersbur, Russia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는 작은 아들 뿐 아니라 큰 아들도 잃어버린 아들이었던 셈이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떠났고 돌아와서도 아들이 아닌 종이 되고자 했다. 큰 아들은 종처럼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 뿐 아니라 큰 아들도 아들로 받아들이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다.

아버지와 두 아들 뿐 아니라 형제간의 공동체도 재형성한다. 작은 아들처럼 큰 아들도 여러 경계들을 설정한 인물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들 경계들을 허물어 버린다. 경계를 뛰어넘는 자비 즉 “함께 아파하기”의 실천이 바로 우리 비유의 핵심 메시지이다. 공동체의 회복은 아버지와 두 아들 사이의 수직적 경계를 허물고, 아들 형제 사이의 수평적 경계를 무효화한다.

이제 우리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문맥(context)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 본문은 루카 15장의 세 비유 중의 하나이다. 이 비유들은 예수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있는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 상황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의 식탁 친교 혹은 식탁 공동체를 비판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연속적인 세 비유를 발설한다. 따라서 루카 15장의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과의 식탁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첫 번째 비유(루카 15,3-7)에서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한 마리를 잃은 후, 그 잃은 양을 찾고는 기뻐한다. 두 번째 비유(루카 15,8-10)에서는 은전 열 닢 중 한 닢을 잃은 부인이 그것을 찾고서 기뻐한다. 세 번째 비유인 우리 본문에서는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와 같이 이 세 비유는 백 중 하나에서 열 중 하나로 그리고 둘 중 하나로 잃어버린 것의 중요성이 점차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비유는 모두 잃은 것을 되찾는 것에 관한 것이다. 각각의 경우, 양 백 마리, 은전 열 닢 그리고 두 아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온전한 형태의 공동체이다. 그런데 양 한 마리, 은전 한 닢, 한 아들을 잃었다는 것은 공동체의 와해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회복, 즉 올바른 관계의 회복을 가리킨다. 이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주제는 세 비유에서 공통적으로 기쁨이라는 모티프와 관계된다.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루카 15장 세 비유의 주제는 그 배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의 식탁 공동체를 옹호하기 위하여 이 세 비유를 발설한다. 이러한 문맥에서 우리 비유의 아버지는 용서하시고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을 상징하고 예수는 그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한다. 그리고 작은 아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킨다면, 큰 아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지시할 것이다.

사실 역사의 예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쳤고 그것의 실현을 위하여 실천하였다. 즉 예수의 일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운동이었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나 무시간적이고 비역사적인 용어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로서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였다. 예수에게 있어 독창적인 새로움은 무엇보다 그 하느님 나라가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과 행적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 즉 새로운 질서와 가치는 이미 현존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 안에서 현존하는 하나의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이다. 이와 같이 예수가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은 새로운 공동체 운동이었다. 예수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도전하고 비판할 뿐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하나의 대안(alternative)으로 제시하고 실천하였다. 예수는 그 대안적 질서와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대안적 공동체 운동인 것이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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