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끝나고,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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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은 끝나고,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 최태선
  • 승인 2024.04.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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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공원 운동하는 곳에서 노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우리 국민이 정신을 못 차린다고 했다. 대통령을 뽑았으면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지. 국회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의 사고로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싸움이 나거나 마주칠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는 관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모두 우주라는 사실이다. 우주 자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주의 중심이다. 그래서 후설의 현상학이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모든 문명은 “희생의 체제”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기대 역시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명은 희생의 체제로서 조금씩 존재 방식을 달리하지만 그 본질은 변함이 없다.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가 나뉘고 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고, 그것을 기득권으로 여기게 된다.

작금의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는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 적도 있고, 그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막무가내로 신봉하는 이들은 없다.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역시 희생의 체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희생양의 수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일 따름이고, 그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이번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힘 있는 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도 없다.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발동했고, 간호사법이나 다른 여러 법들에 거부권을 발동한 것도 결국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선 일방적인 결정이다. 그가 무조건적으로 친미를 주장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그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것을 정의로 생각하는 그의 편향적인 사고를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미국을 돌아보는 것도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 세계적인 반혁명 운동의 선두주자다. 미국은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 로마는 자신의 식민지가 된 나라들에서 가난한 자들을 괴롭히는 부자들 편을 들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가 부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로마는 불평등과 불법, 절대 다수의 불행을 조장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로마의 정책을 답습하겠다는 미국의 결정은 이와 같은 치밀한 계산 끝에 나왔을 것이다.”

호로비츠의 책에서 인용한 토인비의 말이다. 토인비는 미국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미국은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고 있는 이 시대의 제국이다. 그런 미국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부자들의 편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트럼프와 같은 만무방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사고가 철저하게 부자들을 향해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강력한 미국의 본질이 바로 “제국”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친미를 외쳐도 미국은 그런 한국을 미국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미국이 바라보는 한국은 로마가 바라보던 식민지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당연히 한국의 부자들의 편이다. 로마가 불평등과 불법, 절대 다수의 불행을 조장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면 미국은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작고하신 세이비어교회의 목사였던 고든 코스비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미국"이라 부르지 않고 "제국"이라 불렀고, 미국의 정책이 제국주의임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는 에이즈 환자들과, 노숙자들과 집 없는 사람들과 같은 이들에게 거할 곳을 제공하고 먹을 것을 주었다.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이비어교회를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곧 우리 시대의 진정한 교회이며 그들이 곧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고, 매우 편향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우리 사회를 비롯한 전 세계적인 문제가 빈부격차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부를 움켜쥐고, 대물림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근본적으로 변질된 곳임을 파악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그럴 수가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세상이 잘못된 곳임을 알고 그곳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영성을 개인적인 성취의 목적으로 삼아 복음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세상을 전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은폐했고, 교회(사탄은)는 그 일에서 완전한 성공을 이루었다.

“그(예수)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런데 빌립이 하느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니, 남자나 여자나 다 그의 말을 믿고서 세례를 받았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하느님 나라의 일을 강론하고 권면하면서, 담대하게 말하였다.”

잘 보라.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신 일이 무엇인가.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것이었다. 필립보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하느님 나라의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이 일의 의미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이 세상이 잘못된 곳임을 고발하고, 그렇지 않은 다른 세상이 가능함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복음의 의미이고, 그 복음의 핵심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 복음은 근본적으로 세상을 전복하는 평화적인 혁명을 이룰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복음은 어디로 갔는가. 그 대답은 어렵지 않다. 오늘날 복음은 “사후천국”으로 환원되었다. 복음이 근본적으로 “사후천국”으로 치환되어 귀착된 것이다. 복음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로 몰아낸 사탄의 전략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키르케고르가 풍자한 그대로 “뒤뚱거리며 걷는 거위”가 되어 죽음의 문이 된 교회를 경건하게 드나들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도 아니고, 물가도 아니고, 집값 안정도 아니고 빈부격차다. 우리 정부는 친미를 외치며 제국도 아니면서 제국이라는 착각에 빠져 불평등과 불법, 절대 다수의 불행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시각이여야 하며,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의 사명선언문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탄식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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