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자비로운 아버지와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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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자비로운 아버지와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10.25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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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 2
돌아온 탕자(Rembrandt,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 The Hermitage, St. Petersbur, Russia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 - 1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예수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에토스(ethos)를 제시한다. 예수의 에토스가 잘 표현되는 자리 중의 하나가 바로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이다. 이것은 예수의 비유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고 잘 알려진 것이다.

루카 15장은 세 개의 비유로 이루어진다.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이다. 루카 15,1-2은 예수가 이 세 비유를 이야기한 상황에 대한 묘사를 제공한다. 예수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상황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 상황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의 식탁 공동체를 비판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연속적으로 이 세 비유를 이야기한다.

예수는 한 사람의 이야기꾼(storyteller)이다. 루카 15,3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루카 15,4의 첫 번째 비유는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라고 시작하고, 루카 15,8의 두 번째 비유는 “또 어떤 부인이”로 시작한다. 루카 15,11은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는 도입구와 함께 “어떤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루카 16,1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는 도입구와 함께 “어떤 부자가”로 시작하는 새로운 비유가 소개된다. 따라서 루카 15,11-32는 하나의 비유로서 문학적 단일성을 가진다.

루카 15,11-32의 본문은 읽기의 초점을 등장인물인 아버지, 큰 아들, 작은 아들 중에서 누구에게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우리 본문은 “탕자의 비유”로 불린다. 그러나 이 명칭은 우리 비유 전반부의 앞부분을 적절하게 잘 표현하지만, 전반부의 뒷부분과 후반부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리고 이 명칭은 작은 아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탓에 아버지와 큰 아들은 관심 밖에 있다. 이와 유사한 명칭인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도 작은 아들이 관심의 중심에 있다. 한편 <성경>의 명칭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비유 전반부의 뒷부분을 잘 표현하지만 앞부분을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성경학계에서는 우리 비유에서 아버지의 특성과 역할에 주목하는 연구 경향들이 있다. 즉 아버지를 이 비유의 중심인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경향을 대변하는 비유의 명칭으로는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 “아버지의 사랑의 비유” 등이 있다. 또한 아버지의 역할과 함께 두 아들을 모두 잃어버린 아들로 표현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와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라는 명칭도 있다. 그리고 이 비유의 중요 등장인물과 그 관계를 잘 표현하고 비유의 내용을 중립적으로 묘사하는 “아버지와 두 아들 비유”라는 명칭도 사용된다.

이 비유의 중요 등장인물인 아버지, 큰 아들, 작은 아들에 따라 본문의 구조를 나눌 수 있다. 11-24절의 중심 등장인물은 작은 아들이고 25-32절의 중심은 큰 아들이다. 따라서 우리 본문은 중심인물에 따라 11-24절과 25-32절의 두 부분으로, 즉 전반부와 후반부로 그 구조를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문학적 구조에서 지적할 점은 각 부분의 끝이 아버지의 말로 마무리 된다는 것이다.

전반부의 끝인 22-24절(“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과 후반부의 끝인 31-32절(“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은 작은 아들, 잔치, 기쁨에 대한 아버지의 언급이다.

본문의 문학적 구조를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나누는 제안들 중에는 다른 방식도 있다. 아버지, 작은 아들, 큰 아들이라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좀 더 세분한 구조인 셈이다. 11-12절은 전체 비유의 도입 부분이다. 첫째 부분(13-20ㄱ절)은 작은 아들, 둘째 부분(20ㄴ-24절)은 아버지와 작은 아들, 셋째 부분(25-28ㄱ절)은 큰 아들, 넷째 부분(28ㄴ-32)은 아버지와 큰 아들이 중심이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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