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함께 아파하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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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함께 아파하는 연대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12.13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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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30-37) - 2
빈센트 반 고흐, 착한 사마리아인

어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은 돌봄을 실천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이라는 종족 간, 지역 간의 경계, 정결과 부정의 경계를 뛰어 넘어 배제와 분리가 아닌 돌봄과 배려를 실천하게 하였는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동사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이다. 이 동사는 다른 이와 “함께 느낌”, 곧 공감(共感)을 가리킨다. 특히 이 단어는 다른 이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를 의미한다.

가엾은 마음이 든 착한 사마리아인은 다양한 경계를 무효화하고 개인주의와 엘리트주의 영성의 배제와 분리를 넘어서 돌봄과 배려를 실천한다. 그것은 바로 강도 만난 이와의 공감, 곧 “함께 아파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초주검 당한 이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루카 10,34-35) 이와 같이 사마리아인은 고통당하는 이와 연대한다. 그를 고통에서 해방하려 행동한다. 이 해방 실천은 기름, 포도주, 노새와 함께 하는 생태적 연대이고, 여관 주인과 함께 하는 사회적 연대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분리와 배제를 뛰어 넘는 “함께 아파하기”의 길을 제시한다. 곧 그는 당시 유다인들의 정결의 정치학에 도전하고 “함께 아파하기”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경계들로 갈라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예수의 정신과 가치가 살아 있는 자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의 “함께 아파하기” 에토스는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비전이다.

그리고 우리 비유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는 예수의 초대로 끝난다. 이 말씀은 고통 받는 이와 “함께 아파하기”의 실천에로의 초대이다. 곧 예수는 고통 받는 이와 함께 느끼는 새로운 삶의 방식, “함께 아파하기”의 에토스를 실천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예수는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품성을 “함께 아파하기”로 계시하였고, 그것을 거룩함의 참된 의미이며 하느님 백성의 탁월한 덕행으로 제시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경계들로 말미암아 갈라진 공동체를 다시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 바로 예수의 사회적 영성의 핵심이다. 그것은 분리와 배제를 뛰어 넘는 사랑의 실천이다.

예수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결국 역사적 예수 당신 자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말씀은 “예수를 뒤따르기”를 실천하는 당신 제자들에게 또 한 사람의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영성으로의 초대이다. 이 사회적 영성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실현되고, 마침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교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에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 당한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의 이웃이 되도록 초대받고 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웃의 고통에 눈을 감고 “나” 안에 갇힌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너”를 향해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함께 아파하기”와 정의를 위한 열정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피조물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비로운 마음이다. 곧 예수를 뒤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존재 방식인 사회적 영성이다.

이와 같이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그의 에토스를 잘 표현하는 것은 바로 “함께 아파하기”이다. 복음서에서 “가엾은 마음이 들다” 동사로 표현되는 예수의 에토스는 공감이고, 특별히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 즉 다른 사람과 “함께 아파하기”이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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