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송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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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송곳’이 있다
  • 주은경
  • 승인 2024.04.15 12: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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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8화

하느님은 선물과 함께 시험(?)도 주셨다. 여자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화장실 쓰레기 당번으로 배정된 A 때문이었다. 늦지 않게 아침미사에 맞춰 가려고 눈썹 날리듯 서둘러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는데, 옆에서 휴지통 안을 신문지로 이렇게 감싸라 저렇게 해라 속사포처럼 잔소리를 했다. 천천히 말해도 못 알아듣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지? ‘그래, 너 영어 잘 한다.’ 나는 속으로 욕을 했다.

며칠 전 메인하우스의 현관에서도 그는 내 속을 긁었다. 신발장에 잘못 놓인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네가 이렇게 놓았니?” 무슨 잘못된 일이 있으면 거듭 나를 지목해 확인했다. 그 차갑고 딱딱한 얼굴로. 그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답하면서 화가 쌓였다.

 

마돈나하우스의 여자 게스트하우스 건물.
마돈나하우스의 여자 게스트하우스 건물.

“네가 이랬니?” 거듭 나를 지목해 따졌던 사람

11월 26일 월요일. 18일째. 이번 주에도 A와 아침당번이 되었다. 숙소에서 게스트들이 사용한 컵을 아침에 부엌에 가져가서 씻고, 저녁에 다시 챙겨 와야 했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내 심기를 건드렸다.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빵 도마, 네가 가져왔니?”라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졌다. "‘No! 너 나한테 왜 그래?” A가 말했다. “네가 마지막으로 뿌스띠니아에 다녀왔으니까.”

“뭐? 빵 도마가 뿌스띠니아에만 있니? 메인하우스 주방에도 많은데, 왜 그걸 내가 갖고 왔다고 생각해? 왜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나에게 심문하듯 따지는 거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걸 영어로 뭐라고 말하지? 아침 채플에 가는 길. 그와 걸어가며 한참 고민해 영어문장을 만들어 말했다. 너의 태도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그런데 그는 말을 딱 잘랐다. “은경, 너 무슨 말 하는지 못 알아듣겠어.” 으윽. 부르르 화가 났다.

그런데 오늘 오전 나에게 배치된 작업장소는 걸어서 5분 거리의 세인트 메리(Saint Mary) 건물. ‘하우스 마더’ 쟌은 내가 어느 방으로 가야 하는지 A가 일러줄 거라며 그와 함께 가라고 했다. A와 함께 가라구?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A는 미국 보스톤에서 온 40대 백인 여성. 15년 전 당시엔 나와 거의 동년배였다. 그래서 하우스 마더 쟌이 나를 그녀와 함께 짝을 지어준 건가? 깡마르고 짧은 단발 곱슬머리에 키가 나보다 좀 작았던 A. 치아교정기와 금테 안경 탓인지 날카로운 인상에 마돈나하우스에서는 드물게 겨울에 일할 때도 점퍼 스커트를 즐겨 입는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걸어가며 생각했다. ‘내 마음을 내가 풀어야지 어쩌겠나.’ 이럴 때 가장 좋은 대화소재는 음식 아닌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냐. 무슨 음식 잘 하냐” 서로 얘기하다가 “내 남편이 음식 잘 한다”고 답하니, “아이가 있어?” 하고 물었다. 내가 기다렸다는 듯 “It is a private question"이라고 쏘아 붙였다. 이곳에선 서로 상대가 먼저 오픈하지 않는 개인사를 질문하는 건 실례라고 강조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에 살짝 무안한 빛이 돌았다. 오. 예! A에게 한방 먹인 것 같아 시원했다. 하지만 금세 찝찝한 마음이 밀려왔다. 사랑, 용서, 기도가 가득한 이곳에서 이런 작은 승리에 기뻐하다니.

 

공동체 안에서는 작은 일이 중요하다

그날 저녁 나의 영적 상담자 키에렌 신부에게 털어놓았다. “A 때문에 힘들어요. 이런 작은 일로 속상해하는 내가 싫어요.”

신부님이 조언했다. “공동체 안에서는 작은 일이 중요하죠. 그녀에게 직접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너는 나의 보스가 아니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하니, 천천히 말해 달라’고. ‘하우스 마더 쟌’과 상의해 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신부님과 얘기 나눈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음 날 아침, 하우스 마더 쟌에게 저녁 면담을 신청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미사시간이었다.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A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엄숙하고 경건해 보였던지. ‘평소에는 쌀쌀하게 나를 구박하면서. 참 가증스럽네.’ 동시에 다른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 너도 나와 똑같은 가련한 중생. 아픔이 있고 영혼의 휴식이 필요해 이곳에 왔겠지.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 볼까? 언젠가 너의 태도가 달라지는 날이 있기를.’ 갑자기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A가 기도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껴서? 그가 나를 괴롭힌 게 아주 작은 일이어서? 아니면 이곳의 단순하고 영적인 생활 덕분이었을까?

그날 밤 면담시간에 나는 하우스 마더 쟌에게 A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쟌은 깊은 공감을 표현했다. “너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다. 무엇이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여기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간섭하는 것. 그게 A의 약점(weakness)이다.”

상대의 단점 아닌 약점으로 보는 것

쟌의 이야기는 내게 작은 울림을 주었다. 쟌은 A의 ‘단점’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게 A의 ‘약점’이다.” 상대에게 문제라고 느낀 것을 그의 ‘약점’이라 보는 것과 ‘단점’이라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단점은 그 자체로 뭔가 고정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다. 그러나 약점은 내가 감싸줄 수도 있고, 조금씩 변할 가능성이 있는 열린 단어였다. 작지만 큰 발견이었다.

“그래도 너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그와 직접 대화를 해볼까?” 물었다. 쟌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쟌 역시 마돈나하우스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단다. 사사건건 자신에게 트집을 잡는 사람.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그를 대하는 마음을 바꾸고 나니까 그의 태도도 달라졌다고. 얼핏 판에 박힌 조언일 수 있지만, 뭔가 다가오는 게 있었다. 오늘 아침 채플에서 내가 느꼈던 건 그에 대한 긍휼의 마음 비슷한 것이었을까? “A를 위해 기도해보겠다”는 나의 말에 쟌의 동그란 안경 너머 똘똘한 눈빛에 웃음이 번졌다.

쟌과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A는 나에게 빨리 나오라고 몇 번이나 재촉했다. 이번 주 내가 A와 게스트하우스 당번이라 저녁식사가 끝난 후 팝콘을 튀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 자세를 바꾸자. 그의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언젠가 그도 변할 날이 있겠지. 흐음. 단전에 힘을 줘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그에게 다가갔다. 일부러 크게 웃고 떠들며 그가 하자는 대로 하면서 기분을 업 시켰다. 이런 태도로 주방에서 함께 팝콘을 만드니 그의 잔소리가 한결 들을 만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다. 영하 17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햇살이 비치면서 푸른 하늘이 나타나면 마음도 깨끗해졌다. 하지만 오후 3시 넘어 해가 지기 시작하면, 뼛속까지 추위가 몰려왔다.

 

아침 미사 드리는 채플
아침 미사 드리는 채플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하리라

아침 미사 시간에 성가를 함께 부르며 생각했다. 사람과의 갈등은 세상 어디에서나 있다. 한국의 일터나 가정, 심지어 좋은 친구 사이에서도, 멀리 이 캐나다의 영성공동체 마돈나하우스에서도 겪기 마련이다. 아니, 살아 있는 한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내가 그 갈등을 어떤 태도로 만날 것인가’ 아닐까?

지금 여기서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나를 이곳 마돈나하우스의 손님이고 이들에게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나는 계속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그를 품어보자. 세상에 메이저처럼 보이는 사람도 때론 외롭고 사랑받고 싶은 연약한 중생이다. 게다가 나는 ‘마이너’가 아니다. 단지 영어를 못하고 몸이 좀 약할 뿐이다.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여긴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마돈나하우스 아닌가?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하자, 내가 하느님의 사랑이고, 부처의 자비다.’ 그 날부터 나는 더 많이 웃었다. 내 좁은 자아의 한 조각을 내버린 홀가분함 덕분이었다.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현장을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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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a 2024-04-17 11:38:34
A의 기도하는 장면에서 왠지 울컥~~
미운사람은 어디서든 미운짓만 할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집니다.
언젠가 tv에서 비호감 정치인이 가족과 함께 평범하고 다정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건 연출일꺼야 '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어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얼마나 콩알만한 마음인지...또 한번은 적대적인 사람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나는 '작은 나'를 넘어서서 내가 한없이 넓어지고 내가 나인게 좋은 느낌, 내가 내편이 되어주고 좋은 벗과 함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습이 안되서 그걸 알고도 남들을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버릇을 잘 못고치고 있네요.

잔잔한 감동이 함께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