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엘리트 위한 제국의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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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엘리트 위한 제국의 통치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07.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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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당시의 사회-경제 체제 - 1
ⓒ한상봉

역사적 예수가 살았던 기원후 1세기의 팔레스티나는 억압 정치와 착취 경제의 특성을 가진 전-근대적인 농경 사회적 지배 체제였다. 당시의 철저히 신분 사회적이며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체제에서는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과 부자들이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를 차지하였다. 즉 사회적 부의 원천은 시골 농부들의 생산물이었는데, 이것은 대부분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도 않는 소수의 도시 지배 엘리트들과 부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예수 당시 사회의 상층을 이루었던 이들은 로마 제국의 지도자들과 대사제, 수석 사제들, 최고 의회 의원 등과 같은 유다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인 수도 예루살렘에 살며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었다. 모세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던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은 종교적 엘리트들이었다.

이에 비해 농부, 어부, 소작인, 종, 품삯 일꾼, 세리, 창녀 등은 사회의 하층민들이었다. 특히 나병 환자, 거지, 눈먼 이, 귀먹은 이, 병자, 더러운 영이 들린 이 등은 사회 밑바닥의 소외된 이들이었고 여성은 철저히 차별받았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기원후 1세기 팔레스티나의 사회적, 정치적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삶을 살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차이를 이유로 성별, 계층별, 세대별, 건강 상태별로 갈라져 있었다.

로마 제국의 경제 구조는 착취적이고 불공평하였다. 전체 주민 중 소수에 불과한 지배 엘리트들이 제국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민중의 삶은 생존을 위한 일상적 투쟁의 연속이었다. 이 투쟁은 끊임없이 순환적이었다.

로마 제국의 부는 토지의 소유권에 토대를 두었다. 즉 제국의 권력과 부는 토지에 기초를 두었다. 지배 엘리트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통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습을 통해 토지와 노동에 의한 제국의 일차적 자원들을 통제함으로써 통치하였다. 그들은 토지를 소유하였고 생산의 약 65퍼센트를 소비하였다. 그들은 노예와 소작인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결국 그들은 지배 엘리트가 아닌 이들, 즉 일반 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살았다.

제국과 지방의 지배 엘리트들은 민중에게 공물, 세금, 소작료 등을 부과하였다. 그들은 생산물에 세금을 부과하고 분배와 재화의 소비를 통제하여 민중의 부를 빼앗았다. 세금과 소작료는 재화로 납부되었는데, 시골 농부나 어부는 그들의 어획, 수확, 가축 중에서 어림잡아 20-40퍼센트를 지배 엘리트들에게 바쳐야 했다. 따라서 당시 로마 제국 안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반란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세금에 대한 거부는 토지, 바다, 노동력, 생산물에 대한 로마 제국의 통치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로마의 군사적 보복은 피할 수 없었고 또 잔인하였다.

이와 같이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은 토지 생산물의 생산, 분배, 매매, 소비를 체계적으로 통제하였다. 그래서 제국의 경제는 위계질서적이고 과두정치적인 사회-정치적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지배 엘리트들은 세금, 소작료, 대부, 이자, 공물, 매매 등을 통하여 시골 농부, 기술자, 비숙련 노동자들의 생산물을 자신들에게로 재분배하였다. 그 결과 지배 엘리트들은 막대한 부를 차지하여 사치스런 생활 방식을 향유하고 많은 생산물을 소비하였으나, 다수의 육체노동자들은 단지 이러한 불의한 경제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자원을 통제하는 것에 덧붙여 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이 토지의 제국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통치하였다. 강압의 지배 수단은 다름 아닌 로마 제국의 군대였다. 이에 덧붙여 지배 엘리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과 통신의 수단을 통제하였다. 예를 들어 각종 화폐 동전의 도안들, 거대한 기념물의 건축, 다양한 건물들의 건축 등을 통하여 지배 엘리트들은 그들의 가치들을 전파하였고 그들의 이익에 복종하는 의식을 형성, 확산시켰다. 실제로 로마의 중앙과 지방 사이의 보호 연결망과 동맹 관계는 제국의 통치를 확장시켰고 현 상황을 유지시켰다.

이러한 제국의 위계질서와 통치 방식을 통하여 지배 엘리트들은 그들의 이익을 강화하였다. 로마 제국의 가치와 질서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양산하였다. 이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차단되었고, 반대자들의 저항은 제국의 무자비한 군사적 개입에 의해 철저히 탄압되었다. 그것은 폭력에 의해 로마 제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로마 제국의 질서는 예수가 살았던 당시 팔레스티나의 상황을 결정짓는 요인이었다. 로마 제국의 사회-경제적인 체제는 가난한 민중의 삶을 더욱 더 가난하게 만들었고, 전통적인 생활 방식과 가치였던 마을 공동체들을 파괴하였으며, 가족들을 붕괴시켰다. 로마의 제국적 질서는 팔레스티나 민중의 공동체적인 가치와 사회적 구조를 파괴하였고,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와 불평등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다수의 가난한 민중은 배제되고 차별되어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살아갈 수 없었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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