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치적인 예수 이미지, 역사적 신빙성 없다
상태바
비정치적인 예수 이미지, 역사적 신빙성 없다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05.27 12: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에 대한 오해와 사실
ⓒ한상봉

예수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오해는 종교를 정치와 경제에서 분리하는 서구의 근대적 프레임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주로 종교적 차원에 집중되고, 예수 당시의 상황에서 기본적인 사회적 갈등은 유다이즘이라는 종교와 헬레니즘이라는 문화 사이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예수는 유다이즘이라는 하나의 종교에서 그리스도교라는 다른 종교에로의 전이를 촉발시킨 종교 지도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차원을 소홀히 다루는 경향은 종교와 국가 사이의 분리, 종교 생활과 정치-경제생활 사이의 분리라는 근대적 이분법에 따라 역사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객관적 연구에 따르면 예수 당시의 사회에서는 종교, 정치, 경제가 분리되지 않았다. 이러한 분리는 당시의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에서 이질적이었다. 지중해 주변의 세계를 통치한 로마의 황제는 제국의 성전들과 전당들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경배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사제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는 장소였을 뿐 아니라 유다인 사회의 중심이었다. 즉 예루살렘의 성전은 영적이고 종교적인 권위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기도 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였고, 모세의 율법은 나라의 법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연구에 있어서 비정치적인 해석이 여전히 발견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영적인 구원자로 왔지, 정치적인 활동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곧 예수는 영적인 왕국을 선포하였지, 지상의 왕국을 말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인간을 개인적인 거룩함에로 부르셨지, 정치적인 변혁에로 초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예수는 정치적 파당을 결성하거나 최고 의회의 공직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고, 사회 제도들에 대하여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정치의 지저분한 현실로부터 초연한 비정치적인 종교적 스승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예수를 당시의 구체적인 정치적 현실에서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예수에 대한 비정치적 해석의 배후에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즉 많은 경우 정치는 권력 투쟁, 당파성, 추잡한 일, 뒤가 구린 일, 사리사욕 등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는 어원적으로 그리스어의 폴리스(polis), 곧 도시와 관련된다. 정치는 도시를 형성하는 것, 즉 인간이 ‘더불어 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역사의 예수는 정치와 사회 변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단지 영적인 스승이었는가? 예수를 당시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 사실 비정치적인 예수의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라는 예수의 선포를 들었던 기원후 1세기 팔레스티나 유다인들은 이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을 단지 세상 종말이 다가왔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다 고대사>에서 기원후 6년에 일어난 갈릴래아 사람 유다의 반란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 반란자들은 “하느님만이 주인이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폭넓게 퍼져 있었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당시 상황에서 유다인들은 로마 황제와 헤로데 가문의 통치를 받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 즉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날을 열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주장이었다. 사실 예수가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을 일으킨 것은 동시에 정치권력과의 충돌이기도 했다. 당시 지배 체제에서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인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반대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정의에 따라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재구성하기를 요구하는 예수로 말미암아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의 왕국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왜 당시의 정치적 통치자들은 예수를 죽였겠는가?


송 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