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을 배신한 역사가, 요세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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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을 배신한 역사가, 요세푸스
  • 송창현
  • 승인 2016.06.2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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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기원후 1세기의 유다인 역사가이다. 그는 유다인들의 역사, 특히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연결하는 시기의 역사를 상세하게 전해준다. 페르시아 시대, 헬레니즘 시대, 마카베오-하스모네아 시대, 로마 시대의 유다이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요세푸스의 문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 예수, 야고보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당시의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젤롯파 등의 종교적 당파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사가이다.

요세푸스의 생애에 대한 일차적인 사료는 바로 그가 직접 쓴 작품들이다.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파란만장하였다. 요세푸스는 기원후 38년 경 칼리굴라가 로마의 황제였던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그의 히브리어 이름은 요셉 벤 마티티야후였다. 그의 아버지는 사제였으며, 그래서 요세푸스 또한 사제였다. 그의 어머니는 하스모네아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훗날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 불리는데, 플라비우스는 그가 섬겼던 로마 황제들의 가문 이름이고, 요세푸스는 요셉의 로마식 이름이다.

요세푸스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나이 열넷에 이미 지식이 탁월하여 율법학자들이 그에게 의견을 구하였다고 한다. 그후 그는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에세네파 등 당시 유다이즘의 다양한 종교적 경향과 그룹들을 섭렵하게 된다. 그리고 광야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그는 결국 바리사이파가 되기로 결심한다. 64년에 그는 로마에 갇혀있던 몇몇 유다 사제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로마로 갔는데, 거기에서 로마 제국의 위대함과 힘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유다로 돌아온 그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일어난 제1차 유다 봉기(66-70년)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유다의 지배 계층의 일원으로서 갈릴래아 유다인 군대의 사령관이 되지만 전세가 불리해지자 로마 군대에 투항함으로써 자신의 동족을 배반한다. 그리고 그는 로마 군대의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후일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게 되는데, 그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된다. 그 후 그는 황제들의 보호 아래 로마에서 시민권을 가지고 자유를 누리며, 보장된 삶을 살면서, 여러 작품들을 저작하였고 약 100년경에 죽었다.

요세푸스가 남긴 중요한 역사적 문헌은 <유다 전쟁사>, <유다 고대사>, <아피온 반박>, <생애> 등이다. 일곱 권으로 된 <유다 전쟁사>는 66-70년에 로마에 대항하여 일어난 제1차 유다 봉기의 시작, 진행, 결과 등에 관한 기록으로서 75년에서 79년 사이에 쓰였다. 요세푸스는 이 작품을 통하여 당시 로마의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팔레스티나의 지리와 유다인들의 역사, 생활, 관습, 사상 등을 소개한다.

특히 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자신을 보호해준 로마 황제들을 칭송하고, 유다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려 하였다. 곧 유다인들이 로마를 대항하여 무장 봉기를 일으킨 것은 온 민족이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현명치 못한 지도자들과 젤롯파 같은 과격한 그룹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스무 권으로 된 <유다 고대사>는 창조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제1차 유다 봉기의 발발까지를 서술하는 방대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집필 연대는 도미티아누스 통치 제13년, 곧 93-94년이다. 요세푸스는 구약성경과 외경의 내용을 단순히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역사 해석을 서술한다. 그리고 그는 유다의 역사를 로마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다양한 창작, 미화, 과장을 사용하였다.

두 권으로 된 <아피온 반박>은 반 유다주의에 대한 논박을 내용으로 하고, <생애>는 그의 자서전적 작품으로서, 유다 봉기 당시 그가 취했던 행동에 대한 비판에 자신을 변명한다.

그런데 요세푸스의 작품들이 지극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일반적인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요세푸스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형태의 부정확성을 지적할 수 있다. 심지어 그의 작품들 가운데 병행하는 본문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내용이 발견된다.

그리고 우리는 요세푸스의 집필 동기와 목적을 지적할 수 있다. 요세푸스는 이방인인 로마의 독자들에게 유다인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풍습을 소개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로마인들에게 호의적이며, 그의 유다 역사에 대한 서술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과장과 미화가 발견된다. 이러한 과장과 미화는 동족을 배반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한 보상 심리였을까? 어쨌든 이러한 그의 목적과 특정한 경향은 동시에 그의 역사 서술의 한계로 작용한다. 여기에 요세푸스에 대한 비판적 읽기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요세푸스의 작품들은 오랜 기간 동안 특히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보전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요세푸스의 세례자 요한, 예수, 야고보에 대한 기록에서 그들 신앙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승 과정에서 우리는 후대의 수정, 첨가, 윤색 등의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인 <유다 고대사> 18권 63-64는 <플라비우스의 증언>이라고 불리고 있는 대목인데, 이 본문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곧 이 대목이 순수한 요세푸스의 작품인지 아니면 후대 그리스도교적인 첨가와 수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파란만장 했던 삶을 살았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그는 구약과 신약 사이를 잇고 있는 시기인 역사적 예수 시대에 대한 기록을 남긴 고마운 유다 역사가이다. 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요세푸스의 작품들은 제2성전 유다이즘과 신약 성경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소중한 문헌들임에 틀림없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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