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시대의 유다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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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시대의 유다이즘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06.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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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이즘에 대한 오해와 사실 - 1
예루살렘의 유다인. ⓒ한상봉

역사적 예수 당시의 유다이즘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기 보다는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선입견, 오해, 왜곡 등에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는가? 혹은 과거의 사실을 오늘의 관점 안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 하지 않는가?” 라고 질문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 연구에 있어 현재를 과거에 투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잘못된 편견과 곡해를 뛰어 넘어 역사적 사실에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과거의 사실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을 전하고 있는 역사적 문헌을 비판적으로 읽고 분석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료에 대한 무비판적 읽기는 역사적 실제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낳고 그것은 한 시대에 대한 그릇된 오해를 낳게 된다.

먼저 우리는 예수 당시의 유다이즘에 대한 몇 가지 용어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예수 시대의 유다이즘”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은 역사적 예수가 살았던 시기 유다인들의 종교 생활과 제도, 사상 등을 가리킨다. 예수가 태어난 때를 기원전 7-6(?)년으로, 죽은 때를 기원후 30년이라 한다면, 예수 시대의 유다이즘은 바로 이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용어가 사용될 때는 정확하게 기원전 7-6(?)년에서 기원후 30년까지의 기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 기간 전후로 더 넓은 시기를 가리키곤 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신구약 중간시대 유다이즘”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 시기는 구약성경이 완결된 이후 신약 성경이 쓰여지기까지의 기간을 가리킬 것이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지혜서>가 쓰여 진 것이 기원전 50년경이고, 신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첫째 서간>이 쓰여 진 것이 기원후 50년경이라면, 신구약 중간 시대는 기원전 50년경에서 기원후 50년경까지의 약 100년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는 예수가 살았던 기간과 겹치고,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태동하여 신약성경의 가깝고도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기간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신구약 중간시대라는 용어는 위에서 지적한 약 100년 동안 보다 훨씬 더 넓은 기간을 포함하기도 한다. 간혹 기원전 50년 훨씬 이전 시기의 역사와 문헌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신구약 중간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부정확한 용어가 아닐까? “구약과 신약의 중간”이라는 말 대신에 다른 표현을 사용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셋째, “제2성전 유다이즘”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세운 성전이 첫 번째 성전이었다. 이 성전은 기원전 587년경 바빌론 제국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 그 후 바빌론 유배시기를 거치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다시 성전을 세워서 기원전 515년경에 봉헌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2성전이다. 솔로몬의 성전에 이은 두 번째 성전이라는 뜻이다. 유배 이후 세워진 이 성전은 헤로데 대왕에 의해 더 확장되었다. 그런데 이 제2성전은 기원후 70년경에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된다. 따라서 제2성전 시대는 역사적으로는 바빌론 유배 이후인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 시대를 모두 포함한다.

이 “제2성전 유다이즘“은 ”고대 유다이즘” 혹은 “초기 유다이즘”이라고도 불린다. 제2성전 유다이즘은 다양성을 그 특성으로 가진다.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 즉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젤롯파 등으로 인해 이 시기 유다이즘의 모습은 매우 다양했다. 그래서 제2성전 유다이즘은 단수의 “유다이즘”이라기보다는 복수 형태의 “유다이즘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기원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라는 상황은 유다이즘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이 사건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사두가이파의 몰락을 의미했고, 68년경 로마 군대에 의해 에세네파의 쿰란 공동체가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제1차 유다 항쟁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말한다. 즉 바리사이파를 제외한 다른 유다 그룹들의 몰락 혹은 쇠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70년 이후의 유다이즘은 바리사이들의 유다이즘, 즉 “라삐 유다이즘”이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구약과 신약의 중간”이라는 표현 보다는 오히려 “구약과 신약의 둘레”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둘레 시대“는 다름 아닌 제2성전 시대를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전의 유다이즘을 가리키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로 “제2성전 유다이즘”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의 동의어는 “고대 유다이즘”과 “초기 유다이즘”이다.  

송 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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