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짜장면을 먹었지만 또 배고플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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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짜장면을 먹었지만 또 배고플 것 같아서요
  • 서영남
  • 승인 2021.06.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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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코로나19로 실내급식을 중단하고 도시락꾸러미를 손님들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손님들은 자유롭게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충분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한 채 기다립니다. 줄은 서지 않습니다. 항상 약한 사람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시락을 받지 못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줄을 서지 않습니다. 도시락이 떨어지면 한 시간 후에는 다시 도시락을 싸서 드립니다. 

겨울에는 손님들에게 어묵과 커피를 자유롭게 무제한으로 드시게 했습니다. 여름에는 커피와 얼음과자 또는 수박이나 떡을 나눕니다. 커피믹스 만큼은 드시고 싶은 분에게 한 번에 하나씩 드리고 있습니다. 거의 대다수의 손님은 커피믹스를 더 드리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한다면서 하나만 고집합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커피믹스를 가져가도록 시도를 하면 정말 눈 깜빡 할 새에 충분했던 커피믹스가 사라집니다. 손님들이 말합니다. 커피믹스가 수북이 쌓여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손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수박을 썰어서 손님들에게 한 조각씩 드렸습니다. 손님들과 인사하면서 수박을 나누는 데 새로운 손님을 만났습니다. 어디서 오셨는지, 왜 오셨는지 물었습니다. 십정동에서 왔다고 합니다. 배가 고파서 왔다고 합니다.  

오전 손님들에게 도시락꾸러미를 나눠드렸습니다. 한 분 한 분에게 꾸러미를 드리면서 음식이 상할 우려가 있으니 빨리 드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준비했던 도시락이 모자랍니다. 십정동에서 오셨다는 손님이 도시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다려달라고 말하려는데 아무래도 아침도 못 드신 것 같습니다. 아침을 드셨는지 물었더니 어제 저녁부터 굶었다고 합니다. 짜장면을 드시겠어요? 곱빼기로 먹고 싶다고 합니다.

십정동에서 온 손님을 모시고 중국식당으로 가는 도중에 늦게 오는 손님을 만났습니다. 도원역 근처에서 노숙하는 노인입니다. 연세가 일흔 중반인데 사연을 물어봐도 말하지 않습니다. 백결선생을 닮은 동민 씨가 나타났습니다. 동민 씨는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동민 씨는 입고 있는 옷을 모두 어설픈 손바느질로 요란스럽게 꿰맸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식당에 손님들이 있으면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민들레국수집 앞에 있는 천막에서 기다리시라고 했습니다.     

짜장면을 곱빼기로 세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곧바로 음식이 나왔습니다. 간이 식탁을 놓고 상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손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침 수길 씨가 도시락을 드신 후에 민들레국수집 주변을 청소하고 계십니다. 짜장면을 드실 수 있는지 물었더니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수길 씨는 민들레국수집에서 도시락을 나눌 때부터 스스로 주변을 청소합니다. 손님들이 먹고 버린 도시락을 치워 줍니다.   

참 맛있게 드십니다. 수길 씨는 십여 년 만에 먹어본다고 합니다. 노인은 몇 달 만에 먹어본다고 합니다. 십정동에서 온 손님은 짜장면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도 없다고 합니다. 참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합니다. 

세 분이 떠난 그제야 사라졌던 손님이 나타났습니다. 산책을 하고 왔답니다. 잔소리가 나오는 것을 참고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생수를 한 병 드리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짜장면 집에 가서 곱빼기 한 그릇을 사왔습니다. 정민 씨가 곱빼기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로 내려가는 데 골목길에 앉아 있는 십정동에서 온 손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나이는 칠십 하나입니다. 아내는 암으로 저 세상으로 갔고, 딸 하나는 가출해서 소식도 모른답니다. 십정동의 작은 공원에서 노숙하면서 지내고 있답니다.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도시락을 받아서 가고 싶어서랍니다. 금방 짜장면을 먹었지만 또 배고플 것 같아서요.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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