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도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이 있어요
상태바
필리핀에도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이 있어요
  • 서영남
  • 승인 2021.05.04 0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남의 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3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필리핀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학까지 무상입니다. 하지만 학비만 무상입니다. 교복이나 학용품, 간식비와 교통비로 들어가는 돈이 있습니다. 가난한 부모는 그 비용조차 대기 어렵습니다. 하루에 500페소(12,500원 정도)를 벌려면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해야 벌 수 있습니다. 이삼백 페소도 벌기가 어렵습니다. 아예 일거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녀는 보통 일곱 여덟입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책이 없어도 공책이 없어도 학교를 다닐 수 있지만 간식비가 없으면 학교에 가기를 싫어합니다. 필리핀의 초등학교는 거의 2부제 수업입니다. 그리고 우리와는 달리 첫교시가 아침 6시에 시작됩니다. 많은 아이들이 아침도 먹지 못한 채 학교에 갑니다. 간식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모두 간식을 먹는 데 자신만 먹지 못하면 창피해 합니다. 아예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초등학생을 장학생으로 뽑았습니다. 매월 부모님에게 학생 1명당 600페소(15,000원 정도)의 장학금을 드렸습니다. 보통 자녀수가 칠팔 명입니다. 가장 자녀가 많은 집은 남매가 열셋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에서는 둘 또는 세 명이나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으로 뽑혔습니다. 매달 1명당 600페소의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한지 일 년이 지나면서 상급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이 생겼습니다. 하이스쿨에 진학한 학생에게는 매달 1,000페소(25,000원 정도)의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어느 날 우리 아이들 어머니들에게 무엇이 제일 필요한지 물어봤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무보증 무이자 소액대출입니다. 필리핀에서 가난한 빈민층은 은행을 이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습니다. 가난한 마을에는 고리채가 대부분입니다. 높은 이자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이자를 갚느라 돈을 모을 기회조차 가지기 어렵습니다. 처음 아이들 부모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이야기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돈을 빌려주면 일하지 않고 먹고 노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5,000페소(125,000원 정도) 한도의 소액대출을 했습니다. 대상은 아이 엄마에게만 한정했습니다. 작은 사업계획서를 간단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것, 이자 없이 매주 100페소 또는 200페소로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것, 원금을 전부 상환하면 상금으로 500페소를 드린다는 것, 다시 대출받을 자격을 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소액대출의 종자돈은 500만원(200,000페소)이었습니다. 고마운 분이 기꺼이 후원해주셨습니다. 처음 소액대출을 한 후에 몇 주가 지났습니다. 매주 조금씩 갚아야 하는데 연체하는 가정이 몇 가정이 나타났습니다. 연체하는 가정을 남몰래 찾아갔습니다. 자녀가 여덟이나 있는 가정입니다. 아이들이 맥없이 앉아있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밥을 먹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굶었다고 합니다. 쌀독에 쌀이 한 톨도 없습니다. 큰아이나 엄마와 함께 동네 쌀가게에 가서 10킬로를 사서 주었습니다. 밥을 할 수 있도록 숯도 서서 챙겨주었습니다. 소액대출을 연체하는 가정에는 집에 쌀조차 없습니다. 아무 말 없이 쌀을 조금 챙겨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방문한 후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연체하는 가정이 점점 줄어듭니다. 나중에는 한 집도 연체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약 500회의 대출에 세 가정이 소액대출의 일부를 갚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이사를 한 경우였습니다.

마누엘라 할머니는 손자 네 명을 돌보면서 삽니다. 담벼락에 기대어 천막을 치고 삽니다. 동네 재래시장에서 점포도 없이 길바닥에서 바나나를 팝니다. 하루 먹을 쌀을 사기도 어려웠습니다. 세 아이가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이었습니다. 두 명은 초등학생이고 큰 아이는 하이스쿨을 다녔습니다. 마누엘라 할머니는 소액대출에 힘입어서 시장에 조그만 가게도 마련했습니다. 이년 후에는 작은 집도 마련했습니다. 조그만 도움인데도 빈곤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모습을 봤습니다. 

아이들이 전에는 책을 봐도 배가 고파서 먹을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책을 보면 글자가 보인다고 합니다. 배고프지 않아서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을 받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부모들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아이들도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공부에 집중합니다. 가정이 화목하게 변합니다. 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이 제일 무서웠던 아이들이 신이 났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