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수영복 패션쇼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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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수영복 패션쇼도 하고
  • 서영남
  • 승인 2021.05.24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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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4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필리핀의 공립학교는 예산 부족으로 교육자재들이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학교 도서관이나 학급 문고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또 필리핀은 책이 무척 비쌉니다. 헌책을 파는 곳도 있습니다. 필리핀어로 된 책은 더욱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한국에서 영어 동화책을 많이 모아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어로 된 동화책을 500만원어치나 구입했는데도 책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틈만 나면 신기한 듯 책 구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영어를 실력이 좋은 선생님께 배우면서 학교에서의 성적이 쑥쑥 올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상을 싹쓸이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공부를 잘 하면서 엄마와 아빠가 신이 났습니다. 맥없이 놀던 부모들이 서서히 희망을 품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쌀 떨어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던 아이들도 부모가 놀지 않고 일하니까 신이 났습니다.

어느 엄마는 소액대출을 받은 돈으로 필리핀식 떡을 만들어서 민들레국수집에 옵니다. 그걸 사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빈둥거리던 어느 아빠는 스스로 과일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또 필리핀식 손수레를 장만해서 고물을 수집하는 일을 합니다. 어느 엄마는 사리사리 스토어(구멍가게)를 열기도 했습니다. 떡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죽을 만들어서 팔기도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은 군것질을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탕 하나가 1페소입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곤 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받으려고 난리가 납니다. 사탕을 받고 뒤돌아가서 또 옵니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에 사탕과 간식거리를 나눠주면 줄을 서지도 않습니다. 달라고 손을 내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몫의 사탕이나 과자 또는 빵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필리핀은 3월부터 5월까지가 한여름입니다. 비는 오지 않고 무척 덥습니다. 기온이 40도를 넘나듭니다. 우리 민들레국수집 아이들은 개울가에 살면서도 물놀이를 해 보질 못했습니다. 그저 물을 몇 번 끼얹는 것이 전부입니다. 민들레국수집 마당에 간이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밤새 수돗물을 받아 놓았습니다. 아이들에 물에서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이들이 물에서 놀고 나오면 아이들은 하얘지는데 물은 까매집니다. 아이들이 오후 5시에 집에 돌아간 후에는 봉사자 자매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아이들 문화체험을 위해서 주일마다 박물관, 성당, 미술관, 영화관, 놀이공원, 고궁, 동물원, 수영장, 쇼핑몰을 다녔습니다. 멀리 갈 때는 지프니를 빌렸습니다. 아이들은 동네 외에는 거의 다녀보질 못했습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승용차나 승합차를 타면 멀미하기가 일쑤여서 비닐봉지를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수영장에 갔을 때가 가장 놀라웠습니다. 수영복이 없는 아이가 대다수여서 수영복도 마련했습니다.

수영복 패션쇼도 했습니다. 오전반 아이들과 오후반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수영장 입장료가 비싸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영장에 가는 것은 아주 특별한 때뿐입니다. 소풍가듯 충분한 간식을 마련했고, 돼지고기 바비큐도 충분한 준비를 했습니다. 어찌나 신나게 놀았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비엠비에이 마을은 공동묘지 변두리의 개울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성당 소유의 땅이고 주민들 대부분이 성당에 다닙니다.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세를 삽니다. 동네에 화재가 난 후에 굶기를 밥 먹듯 하다가 점점 밥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생일날 소박하게나마 가정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아이들이 점점 귀티가 날 정도로 건강하고 복스럽게 변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한 처음에는 아이들이 자주 아팠습니다. 먹을 것도 없는 데 배는 불렀습니다. 또 콧물을 잘 흘렸습니다. 머리에 부스럼도 자주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아파도 그냥 엄마가 끌어안고만 있을 뿐 약을 먹이거나 병원에 데랴갈 꿈도 꾸지 않습니다. 몇 천 원 하는 약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뎅기열에 걸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냥 아픈 아이를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아기는 죽을 정도도 아프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에게 아이가 아프면 보건소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 오면 약을 사 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몇 천원이면 아이들이 씻은 듯 나았습니다. 거의 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약효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깡마른 아이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겁이 덜컥 나기도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에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정상으로 된 후에는 볼 살이 뽀얗게 오르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습니다. 잔병치레 하는 아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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