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엄마도 배가 고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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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엄마도 배가 고픕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04.1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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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2

2014년 6월에 필리핀 마닐라의 칼로오칸 시티에 있는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에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법인을 꽤 비용을 많이 들여서 구성했습니다만 인천교구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법인 사용을 포기했습니다. 필리핀도 인천 민들레국수집처럼 미인가로 운영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덕분에 필리핀에서는 은행 계좌를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인 아이들에게 오전과 오후 급식을 하고,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언제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배가 고프지 않게 돌봤습니다. 식사를 맘껏 하고 간식도 충분히 나누면서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서 쪼리 슬리퍼를 언제든지 나눠주었습니다. 

2011년부터 필리핀의 빈민가를 방문할 때는 쪼리 슬리퍼를 항상 충분히 마련해서 다녔습니다. 맨발인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많이 준비한 쪼리 슬리퍼도 나눠주면 금방 동이 나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집에는 가족 숫자보다는 신발이 모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방에서 조금 늦게 나오면 맨발로 올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칼로오칸 교구 까리따스에서 아이들에게 무료급식을 하는 경우에 쌀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아동 1인당 쌀 60그램입니다. 매달 아동 체중을 보고합니다. 아동의 체중이 20킬로가 넘으면 그 아동의 무료급식을 중단합니다. 그리고 한 아동 당 6개월간 무료급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적어도 하루에 아동 1인당 쌀이 100그램 이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쌀을 한 번 지원받은 후에 지원받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처음에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에서 우리 아이들이 밥을 먹는 것을 보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조그만 아이가 몇 번이나 밥을 더 먹습니다. 100그램의 쌀로 만든 밥보다 훨씬 많이 먹습니다. 아침을 굶고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가장 큰 걱정이 집에 쌀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쌀뒤주를 마련해서 쌀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5킬로의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집에 지붕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지붕이 없는 집이라니!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둘러본 다음에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마을에 불에 나서 모두 타버렸습니다. 시멘트 골격만 남았습니다. 어떤 집은 벽도 없습니다. 겨우 비닐로 하늘을 가렸을 뿐입니다. 밥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사는 집에 지붕을 덮어주는 일이 급했습니다. 최소한의 건축 재료를 사서 한 집 두 집 고쳤습니다. 어떤 가정의 집은 새로 지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이라고 하지만 사실 움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각목과 합판 그리고 함석으로 뚝딱하면 집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4만 페소(100만 원 정도) 정도면 주변의 판잣집과 비슷하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집의 지붕과 벽을 가리는 작업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매달 아이들 부모님에게 드렸습니다. 장학금 나누는 날 선풍기가 없는 가정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50가정 중에 40가정이 선풍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10가정은 선풍기가 있다고 합니다만 안전망도 없는 위험천만한 것인데 선풍기가 있다고 손을 들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쓸 만한 선풍기는 1000페소(우리 돈 2만 5천 원 정도) 정도였습니다. 

필리핀에서 아동들에게 무료급식을 하는 경우 닫힌 문틈으로 밥 먹는 아이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배고픈 아이들을 봅니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도 엄마와 떨어져서 아이만 밥을 먹습니다. 어느 날 밥을 먹고 나온 아이들 챙겨주면서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엄마에게서 꼬르륵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엄마들도 배가 고픕니다. 아니 모두가 배가 고픕니다. 엄마들께도 밥을 드리자고 했더니 봉사자 자매들이 반대를 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무료급식을 하면서 뽑힌 아이들에게만 밥을 주지 엄마에게 주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어렵게 봉사자들을 설득해서 함께 오는 아이들 엄마에게도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들이 숟가락을 못 듭니다. 집에 있거나 따라온 아이들 고픈 배를 걱정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가족이면 누구든지 식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점심 때 밥을 먹으러 오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 가족의 집을 살펴봐야 합니다. 집에 쌀이 떨어진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몰래 쌀을 챙겨드립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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