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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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 서영남
  • 승인 2021.04.1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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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에도, 엄청난 사고를 당할 때에도,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남을 돌보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이반 일리치)

삼년 전 어느 날입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장성 성 글라라 봉쇄 수녀원에서는 매년 수녀원 수입의 십일조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종교 불문하고 한 곳을 찾아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눈답니다. 올해는 감옥에 갇혀있는 분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분들과 나누고 싶다면서 민들레국수집에서 그 일을 대신해 달라고 하십니다. 수녀원 십일조를 한꺼번에 보낼 수도 있고 매달 보낼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매달 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내년 1월까지 1년 동안 매달 70~80만 원 정도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광주대교구 유지재단 이름으로 보낼 것이고 답신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봉쇄수녀원이라서 어려운 일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해서 미안하답니다. 사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는 돈이 절실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어도 돈이 없으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외부에서 돈을 보내주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일이 정말 힘듭니다. 제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들은 이야기로는 한 달 내내 돈 있는 사람의 빨래를 해 주면 오천 원 정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한여름에 같은 방에 있는 사람에게 부채를 부쳐주면 벌 수 있는 돈이 오천 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는 그 일마저도 거의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돈 있는 사람보다 몇 배나 더 혹독한 감방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데레사 자매, 여든일곱의 할머니

데레사 자매님이 전남 함평에서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왔습니다. 거의 십몇 년 만입니다. 여든일곱의 할머니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만나고 싶어서 오셨답니다. 앞으로 아들에게 받는 용돈을 아껴서 매달 십오만 원을 보내시겠다고 합니다. 감옥에 있는 어려운 이들에게 써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연도나 한 번 해 달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 때는 편안하게 하늘로 갔을 것이라고 합니다.

삼십여 년 전입니다. 영등포구치소에서 천주교 예비신자 교리를 맡고 있었습니다. 데레사 자매님은 그때 만난 형제의 어머니입니다. 갇혀있는 아들이 천주교를 믿는다고 하니까 당신도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빈첸시오, 어머니는 데레사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빈첸시오는 모범수로 7년의 감옥생활을 잘 보내고 모범수로 가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훌륭하게 사회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업도 제대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잘 살게 된 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 덕분인데도 데레사 할머니는 제가 도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노비오 형제, 재난지원금을 받았다면서

이십오 년 전에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제노비오 형제는 지금까지 무기징역을 살고 있습니다. 교도소 밖에서도 갇혀 있는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약 없는 감옥생활에 큰 힘이 됩니다. 아주 작은 도움을 줄 뿐이었는데도 고입검정고시, 대입검정고시 그리고 두 개의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기술도 열심히 배워서 기능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많이 아픕니다.

작년에는 외부 병원에 나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데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은 건강보험이 안 됩니다. 그리고 수술비용은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데 이백만 원이나 모자랍니다. 그 돈이 마련되어야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저에게 빌려달라고 합니다. 감옥에서 벌어서 갚겠다고 합니다. 감옥에 있는 공장에 출역해서 일하면 한 달에 십만 원 정도의 상여금을 받는 데 그걸로 몇 년이라도 걸려서 갚겠다고 합니다. 고마운 분의 도움을 받아서 이백만 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잘 받았습니다.

제노비오 형제가 얼마 전에 나라에서 재난지원금을 받았다면서 그걸 전부 민들레국수집으로 보내왔습니다. 노숙하는 분들에게 맛있는 고기반찬을 해 드리라고 합니다. 또 이 이야기를 들은 고마운 분이 오십만 원을 후원해 주시면서 이십만 원은 제노비오 형제에게 나머지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면 좋겠다고 합니다. 전에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우편환으로 보낼 때에는 영치금 만원을 보내는데 수수료가 이천 오백 원이었습니다. 지금은 개인별로 가상계좌가 있어서 돈을 보내는 것이 아주 편합니다. 제노비오 형제에게 이십 만원을 보내고 최고수(사형수를 최고수라고 합니다.) 두 명, 무기수 여덟 명에게 삼만 원씩 보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는 작은 돈이라도 체감 금액이 사회보다는 열 배는 더 될 것입니다. 지난번에 법무부로부터 교정대상 자애상을 받았습니다. 상금이 오백만 원입니다만 세금을 제하고 삼백구십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상금을 경북북부교도소의 돈이 거의 없는 재소자 형제들 백삼십 명에게 삼만 원씩 나눠드렸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이런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그 돈을 더 어려운 이웃들과 나눈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도시락꾸러미를 나누며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손님들에게 도시락꾸러미를 나누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면 오전 10시쯤 준비가 끝납니다. 손님들도 10시쯤이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손님들이 줄을 서지 않습니다. 차례로 줄을 선 경우에는 무조건 꼴찌부터 나누기 시작합니다. 줄을 서지 않으니 자연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됩니다. 그러면서 손님들은 자유롭게 어묵과 어묵국물로 얼어있던 속을 달랩니다. 대부분 오전 11시에 나누는 도시락을 받아가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한 손님들을 위해 오후 4시까지 봉사자들이 기다리면서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나눠드립니다. 어느 누구도 늦게 왔기 때문에 도시락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손님들 중에는 자폐 장애가 있는 이십 대의 아들과 함께 도시락을 가지러 오는 엄마와 아들 손님이 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 늦게 왔습니다. 아들이 간혹 발작을 하는 바람에 늦었다고 합니다. 도시락을 챙겨드렸습니다. 마침 그때 후원자 자매님이 달걀과 쌀을 가지고 방문했습니다. 급히 물건을 내려놓고는 바쁘다면서 서둘러 떠났습니다. 엄마와 아들 손님도 떠났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원자 자매님이 급하게 다시 왔습니다. 엄마와 아들 손님에게 조그만 도움이나마 주고 싶다고 합니다. 아직 멀리 가지 못했으니까 급히 저쪽으로 따라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후원자 자매님이 뛰어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지갑을 다 털어서 주고 왔답니다.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면서 떠났습니다. 후원자 자매님이 떠난 후에 엄마와 아들이 민들레국수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돈을 삼십만 원을 내어놓습니다. 자기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모자라지 않게 도움을 받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이미 떠났고 찾을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럼 민들레국수집에서 좋은 일에 써 달라고 합니다.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삼십만 원을 받아서 아들에게 과자를 사 주라고 오만 원을 드렸더니 받습니다.

사발면 두 상자를 들고 온 할아버지

할아버지 손님(81세)이 그동안 도시락꾸러미를 받으면서 모아둔 사발면 두 상자를 들고 오셨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나이가 많으셔서 도시락만으로도 하루 먹는 것이 충분하답니다. 사발면은 더 배고픈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욕심이 거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욕심 많은 부자처럼 축적할 줄을 모릅니다. 제발 더 드시라고 강권을 해도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면서 양보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코로나19로 난리가 나기 전에는 민들레국수집에는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 사이에는 언제든지 두세 번 와서 드셔도 됩니다. 몇 번을 밥과 반찬을 더 드셔도 좋습니다. 제발 좀 더 드시라고 애원을 하다시피 사정해도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하루 온종일 손수레를 끌고 골판지도 줍고 

상만 씨는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는 아내를 돌보다가 돈 한 푼 모아놓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고 난 후에는 보증금 없이 월 15만원을 내고 여인숙에서 삽니다. 여인숙 주인이 많이 깎아 준 것입니다. 예순이 넘은 몸이라 막노동판에서 일거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 내내 돈을 모아도 방세 내기도 부족합니다. 처음에 민들레국수집에 오셨을 때는 얼마나 미안해 하던지요. 당신보다 더 배고픈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뺏어먹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손수레를 끌고 고물을 줍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손수레를 끌고 골판지도 줍고 병도 줍습니다. 하루에 칠팔천 원을 번다고 합니다. “상만씨, 주인이 없을 때 슬쩍 돈 되는 물건도 집어넣고 그래야 돈을 벌지요.” “남의 것에 손을 대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것이 나아요.” 정색을 하면서 말합니다. 여인숙 옆방에 사는 사람들이 굶고 있으면 함께 민들레국수집에 옵니다. 그리고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 주는 모습을 봅니다.

민들레국수집에는 후원을 하더라도 소득공제를 받기 위한 영수증을 발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도와줍니다. 어느 날 쌀과 과일을 배달 오신 분이 말합니다. 어떤 멋진 여자 분께서 민들레국수집에 배달해 달라고 부탁하셨답니다. 한사코 이름도 알려주지 않으시고 배달을 부탁했답니다. 배달 오신 분이 말합니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 하십니다.

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사람

아마 십년 전의 어느 여름 날 이야기입니다. 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동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에 가서 10만원을 직접 드리고 왔다. 실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민들레국수집은 큰 힘이 되었다. 무료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여느 식당 밥과 달랐다. 가정에서 먹는 느낌이었다.” 트위터에 올라온 글입니다.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손님들 중에는 조금만 도와드리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더 신경을 써서 대접해 드립니다.

그런데 참 희한합니다. 제가 신경 써서 대접해 드린 분들 중에는 나중에 인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대했던 분들이 제 얼굴을 붉히게 만듭니다. 한 번도 따뜻한 눈길마저 주지도 않았던 분들인데도 어느 날 찾아와서 인사합니다. 트위터에 올라 온 글처럼 말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찾아와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점잖게 생긴 분입니다. 누군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봉투를 내밀면서 “제가 가장 어려울 때 따뜻하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엉겁결에 봉투를 받았습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만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생선회를 대접받았습니다

우리 VIP 손님인 영두씨가 받는 것을 포기했던 임금을 다행스럽게 받게 되었다면서 십분의 일인 이십만 원은 당신보다 어려운 사람들 몫이라면서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이라면서 들어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저와 민들레 식구들에게 한 턱 내고 싶다면서 횟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처음으로 우리 VIP손님께 생선회를 대접받았습니다. 영두씨는 막노동을 해서 벌면 십분의 일은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 몫이라면서 한 해에 몇 차례는 민들레국수집에 나눠줍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있는 화수 자유 시장은 옛날에는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장 안에 가게가 있는 분들도 장사가 안 되어서 큰길에 좌판을 펴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생선을 사고, 채소를 사면 덤을 얼마나 많이 주시는지 가격을 알지 못합니다. 생선을 선물로 주실 때도 좋은 것만 주십니다. 김장할 때쯤이면 담아놓으신 젓갈을 아낌없이 선물해 주십니다. 내년에도 젓갈을 담아서 주신다고 합니다. 채소도 팔 수 있는 것인데도 아낌없이 나눠주십니다. 가난한데도 얼마나 마음들이 넓은 분인지 놀랍습니다. 흥남상회 아주머니와 김포야채 아저씨는 배추나 상추가 비싸면 제가 사러 가도 팔지 않습니다. 싸고 맛있는 것만 골라서 듬뿍 주십니다. 그러면서도 당신 살기가 어려워서 도와주지 못한다고 미안하다 합니다. 그러니 부자가 되기는 틀렸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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