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도 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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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도 봄이 옵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03.0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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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공주교도소에서 반가운 편지가 왔습니다. 1995년부터 만난 정 안드레아 형제의 편지입니다. 처음 서울구치소에서 만났습니다. 수의에 붙어있는 이름표가 빨간색이었습니다. 사형수(최고수)입니다. 언제 형이 집행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살았구나 한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감형이 되었습니다. 빨간색 이름표도 다른 보통의 수형자들처럼 바뀌었습니다. 무기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주교도소로 왔습니다. 공주교도소에서 고입검정고시를 치고 이어서 대입검정고시를 쳤습니다. 그리고 독학사 과정으로 두 개의 독학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컴퓨터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 있는 남부교도소에서 지내다가 과정을 마치고 본소인 공주교도소로 두 달 전에 돌아갔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 평화

베드로님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꽃피는 춘삼월 첫날 아침입니다. 새벽부터 내라는 비는 오전 9시가 넘은 지금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봄비인데 제법 내릴 것 같습니다. 산불이 나고 메마른 날씨에 꽃망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에게 꼭 필요한 때 내리는 봄비라 고마운 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기에 내리는 이 봄비를 반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어제 사동도우미가 베베모님의 선행이 실린 신문을 보라며 가져다주었습니다. 지난 신문이지만 사진에 포장마차와 베드로님의 모습이 이었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코로나19로 혹독한 겨울에 갈 곳을 잃은 노숙자들의 언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어묵과 국물을 제공하고 계시다는 기사가 신문을 읽고 있는 저에게도 그 따뜻함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 따뜻함이 베베모님의 마음이겠지요.

시국이 어려울 때 제일 힘든 사람이 바로 노숙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제공하던 밥집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 노숙자들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밤을 지내는 게 일상이 되었을 텐데 뜨끈한 어묵 국을 받아 든 노숙자들에게 베베모님이 얼마나 고마웠겠는지 이곳에 있는 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사에 군산교도소의 어느 수형자가 재난지원금을 민들레국수집에 따뜻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드렸다고 난 것을 보고 그 수형자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받지 못해 고마움이 더 컸습니다. 상품권으로 나온 재난지원금은 영치금으로 쓰지 못해 목사님이나 스님에게 보내는 수형자가 있는데 그렇게 고마운 마음을 드릴 수 있는 것도 복이지 싶습니다.

베드로님은 지난해에 필리핀 아이들을 만나실 수 없으셨는데 올해는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실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마도 하반기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봉재(관 직영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신참이라 시다를 보고 있는데 시답지 않은 재봉기술로 미싱사라고 위세를 떠는 직속 미싱사의 허세에 자존심을 죽이고 보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 자존심은 그보다 내가 재봉 경력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더 낫다는 것에 있는 것이지만 나는 그럴 생각도 없는데 자신의 밥그릇(자리)을 뺏길까 과한 허세를 부리는 그의 행동에서 유발되는 것이라 더 상하는 것이지요. 내가 그런 것에 반응을 하고 있어 마음 상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자신을 잘 다스리지 않고 상황에 휩쓸리면 사단이 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고 저 자신도 그랬던 경험이 있었으니 자신을 다독이며 위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순시기에 저에게 주어진 몫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미움을 품지 않도록 기도하면서요.

 기다리던 봄이 왔습니다. 피어날 봄꽃들이 코로나 일상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베베모님, 무엇보다 건강이 지켜져야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기도해 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평안하십시오.

2021년 3월 1일

안드레아 올림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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