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십자가 주위에 기적은 없었다
상태바
[성경공부] 십자가 주위에 기적은 없었다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1.23 1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르코와 요한의 복음서-5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깨닫는 순간부터 그분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것들을 다 가르치면서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가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주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신앙의 여정을 이끄신다. 그분은 당신의 운명을 향해 가시고, 제자들과 더불어 그 여정을 가시면서 그들을 신앙 공동체로 키우신다.

새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무리로 시작했다. 우리는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주님을 따랐고,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웃과 함께, 또한 그들을 위해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로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으나 영광의 순간, 변모의 순간도 있었으며 이러한 때에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는 것을 정말 기뻐하였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위대한 부활은 항상 개인적으로 혹은 공동체적으로 가장 큰 십자가를 자고난 뒤에 온다는 것을 서서히 발견하였다.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 불가피한 '고통'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그분의 마지막 십자가 처형으로 이끄신다. 그분은 이미 유다 지도자들에게 공격을 당한다든지, 소문을 들은 몇몇 사람들에게 거부를 당한다든지,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등 사소한 십자가를 여러 번 경험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고독과 소외된 곳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하고 그분만을 믿어야 하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자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당당하게 향하는 예수님을 묘사하면서 마르코는 자신의 공동체에게 그들도 고통받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난의 각 장면들은 스승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그 고통은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교훈이다.

마르코 복음 15장에서 예수는 어느때 보다 더 외롭다. 모든 인간적인 버팀목이 제거되었다.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받는 아들이라고 계속 믿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그분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제자들은 다 떠났다. 이제 그분은 혼자이다. 아버지께 받은 사랑의 기억에 의지하면서 믿음의 암흑 속에서 나아간다.

내적으로 그는 아버지의 인도를 받고있으며, 그의 사명을 완수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그를 사용하신다. 외적으로 그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군인들에게 끌려간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아버지의 뜻에 복종할 때 불가피하게 가야 할 곳을 모든이들이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려진다.

기적은 없었다

이제 기적은 없다. 고통이 일상적이듯이 이제 모든 것이 일상적이다. 하늘로부터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 죄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인간의 상황을 구원하는 육화된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갈바리의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육화 된 말씀만이 있다.

그분이 누구이시고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정말 메시아라면 기적을 행하고 자신을 구하라고 그분에게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답을 않으신다. 그분은 더 위로, 더 깊은 곳으로 당신을 이끄시는 아버지에게 귀를 기울이신다. 그분은 절망하는 것같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그분의 믿음은 부활의 희망이 된다. 그것을 아는 유일한 길은 아버지께 대한 믿음 속에서 승복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옛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은 마침내 마르코가 그의 복음서 처음에 말했던 분으로 인정된다. 한 로마 군인이, 아마도 비신자일, 십자가 앞에 서서 고백한다.

“이 분이야 말로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마르코 15,39).

모순으로 보이지만 주님에 대한 깊은 진리를 알아차리고 선포한 것은 제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고 가르침을 들었으나 예수와 그분의 사명으로부터 모두 도망쳤다. 열두 제자는 끝내 예수를 버렸다; 모든 복음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러나 마르코는 이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과 함께 고통을 당해야 하는 제자의 사명을 망각한 자신의 공동체에게 어려운 교훈을 가르친다.

십자가 밑에서 주님과 함께 서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연약한 여자들이었다. 그들만이 고통 중에 있는 그분과 함께 할 힘을 갖고 있다. 그들만이 참혹한 종말까지 볼 수 있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들만이 셋째날에 무덤에 가서 아름다운 부활의 진리를 발견했고 영광스러운 주님을 경험한다. 세상의 약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권능이 드러나고 그들을 통해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기쁜소식이 제일 먼저 선포되었다.

제자들이 예수를 버렸지만 그분은 달랐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은 단죄로 끝나지 않고 용서로 끝난다. 제자들이 비록 예수를 버렸지만 그분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믿음이 약하다고 꾸짖으신 다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당신의 사명을 그들에게 넘기신다. 주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고, 예수처럼 하느님 나라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나라의 시작을 경험할 것이다.

그래서 마르코는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공동체에 전한다. 정복당한 정복자로서의 그분의 승리에 찬 현존이 그들에게 남겨져있다. 그러나 그분의 현존은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분을 믿은 사람들만이 알아차린다.

그리고나면 그분만이 남는다.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