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신자라고 모두 그분께 속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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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신자라고 모두 그분께 속한 것은 아니다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2.28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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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에서 보았던 대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다. 바로 전 장(章)들에서 다룬 것과 같이 그분은 생명의 빵이고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한 성령의 원천이시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선포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12)

여기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인지 공개적으로 말씀하시고 요한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과 그분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관계를 조성하는데 이용한다. 요한은 이런 종교 지도자들이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모든 복음서 저자들처럼 요한도 불신앙과 불승낙이 어떻게 십자가로 그분을 이끌어 갔는지를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한다. 이 장에서 예수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선포는 그분 자신과 바리사이파 사이에 논쟁을 일으킨다.

사진출처=bloodandchampagne.com

이 논쟁은 다음 장(章)에서도 계속된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실뿐 아니라 그것을 보여 주는 표징을 주신다.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셔서 그의 어둠을 물리치고 그에게 빛을 주신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식일에 소경을 고치셨으므로 바리사이들은 화가 난다.

요한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신앙에 대한 비유형식으로 서술한다. 소경이 예수님에게 왔고 그는 치유되었다. 그는 다시 보게 되어 매우 기뻐하였으나 다른이들은 그의 삶에 새로운 빛을 가져다 준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어둠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소경이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그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주님으로 섬긴다.

한 차원에서 요한은 그의 공동체에게 예수께서 그들의 삶에 가져다 준 빛 안에서 즐거워하면 사람들이 그들을 박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면서 어둠의 힘에 항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에서 요한은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라는 것을 복음서 독자에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자존심을 내세워 우리 자신만으로 스스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면 우리도 바리사이들과 같이 쉽사리 어둠 속에 머물 수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너무도 확신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복음서가 계속됨에 따라 각각의 장(章)은 바로 전장(章)을 바탕으로 쓰여진다. 각각의 장(章)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주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제 10장에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맡겨진 사람들 하나하나를 다 아시는 “착한 목자”라고 자신을 묘사하신다. 고용된 사람들과는 달리 목자는 위험이 닥쳐올 때 도망가지 않고 양떼를 위하여 자기목숨을 내어놓는다. 그분은 푸른 목장으로 양떼를 이끌어 가시어 필요한 것을 모두 그들에게 주신다. 그 대가로 양떼들은 목자를 알고 사랑한다.

요한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간의 관계를 전적인 헌신과 상호 인정이라는 모습으로 설명한다. 분명히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알고 사랑하신다. 분명히 지상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생명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게 하신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착한 양 인 것은 아니다! 요한은 양들이 각기 개인적으로 목자를 알아보고 그가 그들을 위해 해준 것에 감사해 한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목자와 양떼 사이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서로를 알고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회 안에서도 늘 이와 같은가? 우리가 정말 정직하게 우리 본당신자들 모두가 예수님을 그들의 목자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저 그분을 좋은 목자라고 말하지 않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들의 삶 속에서 그분의 이끄심을 경험하였을까? 요한이 여기에서 지적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그분이 우리와 맺는 관계와 똑 같이 아주 개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양떼라는 사실만으로 그분의 양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요한 복음서에 나타난 다른 모습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상호성에 대하여 더 생생하게 강조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 15,5)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생명을 주기 위하여 아주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긴밀한 관계를 모색하고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가지라고 해서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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