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뿐 아니라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상태바
그리스도의 영광뿐 아니라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6.12.27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르코와 요한의 복음서-1

마르코와 요한은 복음사가였는데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들에게 주님에 대해 아주 다른 그림을 그리게 했다. 마르코의 복음서는 신약성서에 있는 네 복음서 중 가장 일찍 쓰여졌다. 아마도 A.D. 65년에서 70년 사이에 쓰여진 것 같다. 요한에 의한 복음서는 1세기 말경에 쓰여진 것으로 가장 늦게 쓰여진 것 같다. 현대 학자들에 의하면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도 부활하시기 전에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 자기 식으로 예수의 제자됨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비록 이 두 복음서가 그리스도에 관해 아주 다른 신학적 견해를 제시하나, 이 두 복음서는 모두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쓰여졌고 초기 교회에 다 받아 들여졌다. 초기 교회는 그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옳고 다른 것이 틀리다고 말하지 않았다. 각 복음서는 자기식대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경험하도록 이끌었다.

이 두 가지 복음서는 최초의 제자들과 예수와의 관계에서 성립되었고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것을 더 온전히 이해하도록 이끌었다. 교회는 다른 견해들에 대해 열려있었고 처음 시작부터 다른 강조들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었다.

마르코의 도전: 고통의 신비에 들어가기

저자 마르코는 루가가 사도행전에서 그리고 바오로가 서간문에서 언급한 요한 마르코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초기의 다른 그리스도교 저자들에 의하면 이 복음서는 로마에서 쓰여졌고, 이 복음사가는 베드로가 설교하는 것도 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사도들의 설교와 매우 비슷하게 예수를 그리고 있으나 아주 분명한 의도를 갖고 복음을 제시한다.

마르코는 아마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 로마의 대 박해(A.D. 64년) 직후에 쓴 것 같다. 그때까지, 로마의 개종한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경험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고, 그들은 사도들의 손으로 몸과 마음이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경이로운 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자됨에 불림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뿐만 아니라 고통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마르코 복음서의 청중은 예수와 로마의 순교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통의 신비에 들어가야 했다. 마르코 복음서의 목적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분이 또한 고통 받는 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는 예수의 구원 방식이 어둠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친다.

마르코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메시아의 비밀” 이라고 종종 불리는 것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복음서 서두에서 마르코는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며(마르코 1,1) 메시아인 예수에 관한 기쁜소식을 선포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복음서 전반부에서는 예수께서 당신이 누구인지 알리지 말라고 경고했던 사악한 영들 이외에는 아무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베드로와 열두 제자가 제 8장에서 그분이 메시아임을 깨달았을 때, 예수는 다시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마르코 8,27-30). 복음서 후반부 전체를 통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 중 아무도 메시아가 수난과 죽음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마르코 8,31-33, 9,30-31; 10,32-34). 드디어 예수께서 체포되었을 때 그들은 도망갔다(마르코 14,50-52).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힌 후에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

그의 복음서에서 내내 마르코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비록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나, 많은 선한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었고, 실제로는 이 세상의 사악한 사람들만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제기하는 위협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고 상기시킨다. 마르코는 또한 그들이 비록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다 하더라도 열두 제자처럼 그들이 직접 고통의 신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 고백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래서 “메시아의 비밀”은 예수의 주님 되심과 그분의 구원 방법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마르코는 이 방법을 사용해 우리를 포함하는 그의 독자에게 가르친다.

마르코의 예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로 이끄는 그분의 길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분이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시라고 선포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다른 말로,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라고 너무 빨리, 혹은 너무 쉽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