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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방이 필요하시답니다

2000년이나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께 방을 내어드릴 수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세상의 종말이 오는 때에 태어난 사람들 조차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에게 당신의 방을 내어달라고 청하신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함 께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그 분은 우리 동시대인들의 목소리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은 지금 가게 점원, 공장 노동자, 어린이들의 눈으로 바라보신다. 사무실 직원, 빈민촌 거주자들, 교외에 거주하는 주부들의 손길로 우리에게 무언가 주고 계신다. 군인들과 떠돌이의 발걸음으로 걷고 계시고, 안식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머물 곳을 찾고 계신다.

그래서 안식처나 먹을 것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시대에 예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 했던 일을 우리도 지금 할 수 있다. 나는 성탄절에 목동들이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린 게 아니라, 마구간 밖으로 나가서 그들이 머물 방을 찾아보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by brian kavanagh

그리스도의 친구들이 그분이 살아계시는 동안에 그 분께 해드린 모든 것을 우리 역시 할 수 있다. 베드로의 장모는 그분께 서둘러 음식을 마련하였는데, 복음서를 보면서 추측하건대, 그녀는 분명히 가진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낭비’라는 생각 없이 그분께 드렸을 것이다. 세리 마태오는 마을 사람 전부를 초대하여 그 분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을 것이다. 이때에 온 집안 이 즐거움으로 소란스러웠고, 이 때문에 엄격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멸시와 소외를 당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그분을 환대하였고, 그래서 예수님은 며칠 동안 그들 가운데 머물러 계시면서 걷고 먹고 주무셨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어머니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마르타와 마리아, 나자로와 맺은 우정이다. 그분은 이 사람들 안에서 한없는 환대를 발견했다. 

그 가련한 사람은 주님이시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나 어린이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먹을 것을 주고, 환대를 베푸는 것은 나자로나 마르타, 마리아가 그리스도에게 해 드린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련한 손님은 언제나 주님이시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 에게 해준 것”이라고 언급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믿음은 아주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여겨질지 도 모른다.

이 믿음을 확인시켜 줄 방법은 없다. 가난한 그 사람들 머리 둘레에 빛나는 후광이 있는 것도 아니다.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성인처럼 환시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엘리자베스가 나병환자를 제 침대에 눕혀놓고 나중에 다시 그를 돌보러 침대로 돌아갔을 때, 성인이 본 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이었다. 그 환자는 더 이상 일그 러진 나환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 전쟁으로 죽은 전투기 조종사의 사망 통지서를 본 적이 있다. 평범한 이야기 끝에 달 린 메시지 하나가 무언가를 모방한 듯 여겨졌다. 죽은 이 조종사를 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그의 부모 집을 방문하면 언제나 환영을 받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그 부모는 죽은 아들을 기억나게 할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의 친구들을 비롯한 이방인들을 계속해서 집에 받아들이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 그들의 믿음이 그 사람들을 따뜻하고 밝은 불길이 되게 하였다. 사람들은 집집이 낯선 불청객을 위해 ‘방’을 하나씩 더 준비해 두었다. 이 공간을 ‘이방인의 방’이라 불렀다. 이 사람들은 죽은 비행사의 부모처럼 그 방을 사용하는 이방인 안에서 그들이 사랑하던 이의 어떤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 니다.

안식처를 제공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해주어서가 아니다. 단순하고 놀라운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그 이방인이 바로 ‘그리스도’였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을 기억하는 것이 쉽다고 여긴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들이 모두 거룩하고 멋지며, 네온사인처럼 빛나는 그리스도를 그들이 모시고 다닌다면,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일은 아주 쉬워질지 모른다. 만약 성모 마리아가 요한 묵시록의 이야기처럼, 발밑에 달을 두고, 태양을 입었으며 머리에 12개의 별로 장식된 관을 쓰고 베들레헴에 나타났다면, 마을 사람들은 마리아에게 서로 방을 마련해 드리려고 싸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리아를 위해 마련한 하느님의 길이 아니었다. 그리스도 자신을 위한 길도 아니었다.

이제 그리스도는 땅을 걷고 있는 다양한 인간들 속에 숨어 계신다. 그리스도가 살아계실 때, 군중들이 그분에게 보여준 무시와 홀대를 보상해주었던 몇몇 사람을 복음서는 기억한다. 목자들도 그런 사람이었 다. 이들이 서둘러 구유로 달려온 행동은 나중에 스승을 등지고 달아날 사람들의 행동을 미리 갚아주고 있다.

현자들도 그러했다. 세상을 가로질러 온 그들의 여정은 그리스도께 가기 위해 그들의 일상에서 한 뼘도 움직이길 거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상할 것이다. 심지어 현자들이 가져 온 선물은 그 자체가 이 아기 예수가 앞으로 받을 고난에 대한 보상이요 보답이다. 그들은 그분이 쓰게 될 가시관을 보상하기 위해 왕의 상징인 황금을 가져왔다. 모욕과 침 뱉음을 보상하려고 찬양의 상징인 유향을 드렸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완화시켜드리려고 몰약을 드렸다.

그 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 입으셨지만 아무도 그 상처를 씻겨드리지 않았다. 십자가 발밑에 있던 여인들도 그랬다. 이 여인들은 곁에 서서 조롱하던 군중들의 무례함을 보상했다.

그리스도를 돕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그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이 아니다. 친구들과 낯선 이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섬김으로써 이 일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증명이 필요하다면 교회의 교리들로 입증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포도나무와 가지들, 성인들의 통공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를 위해 입증해 주셨고 그 누구도 그분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 그분은 걸인에게 내가 내어준 물 한 잔이 곧 그분께 해드린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평범하고 연약하며 일상적인 인간성 안에 숨어계시며, 그분를 향해 우리가 행하는 행동양식 위에 하늘문의 경첩을 달아 놓으셨다.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느냐?” “내가 남루하게 다닐 때 옷을 주었느냐?” “ 내가 병들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보러 왔느냐?”

그분은 겁에 질려 결코 그러한 일을 행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또 그분이 돌아가시고 2000년이나 지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씀하실 것이다. 너희가 사는 동안 알게 된 나의 형제 들 중에 가장 미소한 이들에게 이러한 일들을 행했다면 그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이런저런 선행을 행하도록 재촉하면서 ‘의무’라고 선동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를 돕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마르타와 마리아가 편안히 앉아서 그리스도를 환대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베드로의 장모가 의무라는 생각에 주일까지 보관해 두려고 마음먹었던 닭을 잡아 그분께 마지 못해 대접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녀는 기쁘게 그 일을 행했다. 아마 갖고만 있었다면 10 마리 닭이라도 대접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께 대접해 드렸던 방식이라면 우리도 분명하게 여전히 그 방법대로 그분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

인간을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곁에 머물러 있고, 우리를 만나러 오고, 우리와 시간을 나누고 있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기억나게 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곧 첫 성탄 때 그랬던 것과 똑같이 그분을 위해 방을 찾아주길 청하고 있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출처_ <Work of Mercy>, Fritz Eichenberg, Orbis, 1992. 번역_ 유수선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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