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거룩한 바보'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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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거룩한 바보'로 살기
  • 도로시 데이
  • 승인 2016.05.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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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대한 우리들의 사랑을 보여야 할 유일한 길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길이다. “당신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만큼 하느님을 사랑한다.”

사랑은 자발적 가난을 의미하며, 이것은 자아를 벗는 것, 자아를 부정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또한 자발적 가난은 다른 이들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온갖 안락과 사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도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어야 한다. 다른 이들이 필수품이 없어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편안함을 즐기기를 거부할 것이다.

이러한 결단들은, 아무리 살아내기 어렵다 해도, 우리가 아무리 자주 실패하고 또다시 시작하기를 되풀이한다 해도, 피터 모린이 지난 수년간 우리에게 주려고 노력해왔던 비전과 장기적인 안목의 부분들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비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진실과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비록 그 비전을 우리가 온전히 살아 낼 수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

완전함에 관한 가르침과 같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도 속에서 그 비전을 목표로 삼는다. 비록 실행에 있어서 우리가 실패를 되풀이한다 해도.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가난은 우리가 직업에 관하여 양심성찰을 함으로써 발생할 것이 다. 만일 일들이 공동선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그 일들을 포기할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 간구한다. 직업이 거처, 식량, 의복과 관련이 있는가? 직업이 애덕활동과 연결되는가? 노바스코시아의 톰킨스 신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애덕활동이라는 범주 안에 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양심을 이렇게 성찰한다면 머지 않아 손으로 하는 노동, 겸손한 일을 찾아 하게 될 것이고 우리 주님과 복된 어머니처럼 변화 되어 갈 것이다.

가난은 피터가 말했듯이 지역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차, 커피, 코코아, 자몽, 파인애플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자라지 않는 것들을 먹지 않는 것이다. 지난겨울 어느 날 우리는 부로컬리를 샀다. 그런데 상표를 보니 아리조나 혹은 텍사스에 있는 농업기업의 상표인데, 우리는 그곳 농장에서 남자,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이 거의 매일 화씨 125도에 달하는 한 낮의 살인적인 열기를 피하기 위하여 새벽 두 시경에 광산의 광부들이 앞이마에 올려놓는 램프를 달고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집이 없는 이주자들이고 이들은 전 미국에 수백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에게는 “여관에 쉴 수 있는 방”이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조건 아래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먹지 말아야 한다. 또한 흡연이 단지 건강을 해치는 습관이어서가 아니라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고 농부를 구호대상으로 만들며, 여성들과 아이들이 들판에서 일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담배를 피지 말아야 한다.

가난은 옷을 최소한으로 가지며 또한 그 옷들이 적절한 노동조건 아래에서 적절한 임금과 노동시간에 만들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 노동조합 표시는 바로 이런 것을 보증해주고 있다. 모직 공장의 조건을 고려해 볼 때에, 자기가 직접 양을 키우고 앙골라 염소와 토끼들을 기르고 실을 잣고 직조하여 자신의 이불과 양말과 겉옷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

많은 사람들이 도처에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실업 대책으로 또한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한 방법이 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직업들을 그만두기 시작한다면 고용상의 혼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중심으로 변화되는 삶이 그런 상황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러운 거리들을 바라보고 우리 빈민가의 폐허 같은 집들,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들을 볼 때에, 또한 전국적인 주택사업의 필요성, 철거해야 할 건물들의 철거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와 세계를 위한 식량, 의복, 거처 마련에 많은 고용이 창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난은 고무산업에 비참한 노동조건이 만연되어 있음을 보고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은 석탄광산과 강철공장의 나쁜 근로조건들이 있기 때문에 기차를 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은 철도회사의 소위 정중한 뇌물인 성직자 예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철도는 도둑질과 착취로 건설되었다. 물론 역마차들도 있다. 그리고 마차사용을 중단한지가 겨우 한 세기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걸어서 순례를 하곤 했고 성인들도 그랬다. 그들은 유럽의 한 끝에서 다른 한 쪽 끝인 러시아까지 걸었다.

Classic Catholic Worker artwork by Ade Bethune

우리에겐 성인들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시작하자 곧 중국시민이 되었던 벨지움의 사제 메우스 신부는 수천 마일을 걸어다녔다. 그는 미국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기꺼이 즐겁게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은총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전을 새기고 각성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소수의 사도들이 나오기 시작할 때까지 우리는 다수의 회심도, 또한 사회정의나 평화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성인들이 필요하다. 하느님, 우리에게 성인을 주십시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성인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자신의 결함조차 보지 못한다. 상식은 우리에게 말한다. “왜 빈민가에 사는가? 모범주택에 사는 것이 실제로 더 싸다. 난방과 온수, 연보라 혹은 핑크빛의 목욕통과 화장실 등. 우리는 생활을 더 잘 운영할 수 있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고 묵상하고 공부할 수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줄 돈도 더 늘어난다.”

그렇다, 이렇게 생 각하는 것은 상식의 불빛으로 보면 사실이다. 그러나 정의의 태양이 번쩍이며 타오르는 열기에 비추어보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 우리는 현대문명의 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될 것이지만, 더 많은 사랑을 얻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들이 될 필요가 있다. 석탄을 톤으로 사는 대신 들통으로 사야 한다 해도 무엇이 문제인가? 가난 속에서 기뻐하자,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가난하셨기 때문이 다.

가난한 이들과 기꺼이 함께 살자,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특별히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비참한 이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까지도, 우리는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어리석게 여겨질 때까지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더러움 때문에, 사생활의 결핍, 열기와 냉기, 빈약한 음식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기뻐하자.

우리가 손노동에 지쳐서 “증기기관차를 가질 수 있는데도, 석탄을 삽으로 퍼서 불을 지피는 기차를 그대로 쓰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하고 생각할 때에, 혹은 기계로 하면 더 좋을 수 있는데 웬 바느질인가, 너무나 싸게 빵을 살 수 있는데도 힘들게 빵을 굽는 것 은 쓸데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에 우리 빈민가의 훌륭한 손 노동은 무시당하고 가게의 허울만 번지르르한 물건들, 옷들, 빵들로 대체되어 버린다.

가난과 손노동, 이들은 함께 간다. 이 둘은 영의 무기이며 매우 실용적이기도 하다. 세탁기가 없어 옷을 빨기를 거부하는 여인, 청소기가 없어 집 청소를 거부하는 여인, 재봉틀이 없다고 바느질하기를 거부하는 여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기계의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는 그 유용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아직도 손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너무나 많이 있어서, 일을 늘이는 것은 쓸데 없는 짓이다. 그것은 일 자체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노동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난과 손노동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알지 못한다면 그건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그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믿음, 희망 그리고 애덕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도로시 데이, 2003년 5월)

이 글은 1954년10월 <가톨릭일꾼> 신문에 실렸던 글을 <참사람되어>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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