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기도를 "생명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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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기도를 "생명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이어진다"
  • 신배경
  • 승인 2019.08.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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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이 만난 현장] 삼성해고 노동자 김용희 님을 위한 거리기도회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얼마 전 김용희 님을 위한 촛불문화제와 기도회가 있던 자리에서 수녀님 한 분을 만났다. 수도복을 입고 혼자 오신 수녀님이 반가워서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수녀님으로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에서 활동하신다고 하셨다. 며칠 뒤 성모승천대축일에 있었던 ‘김용희 님을 위한 생명평화미사’에서 다시 만났는데, 김용희 님을 위한 기도회 소식을 알려주셨다. 17일과 24일, 일단 두 번의 확정된 기도회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기도회가 예정된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둘러앉아 기도하기 좋을 만큼 모였다. 수녀님께서는 ‘파인텍 고공농성’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 때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님이 그렸던 그림 위에 김용희 님을 위한 내용을 추가해서 커다란 기도회 포스터를 만들어 오셨다. 준비해 오신 기도 안내지를 바라보며 이 시간을 위해 얼마나 정성스레 마음을 모아 준비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철탑을 향해 모여앉아 길 위에 놓인 상 위에 작은 십자가를 모시고, 김용희 님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다.

 

성가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로 시작된 기도회는 빅토르 하라의 <노동하는 이를 위한 기도>와 독서와 복음, 묵상,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자유기도, 주님의 기도, 마침성가 순서로 진행되었다. 17일의 복음(마태 19,13-15)에는 어린이가 등장한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청하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복음에 나오는 ‘어린이’에 대해 묵상할 때면 늘 어린이들과 함께 웃고 계시는 예수님을 그린 성화가 떠오르고는 했다. 길 위에서의 묵상이라 다르게 다가온 것일까. 어린이를 떠올리자 ‘돌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린이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다. 도움의 손길로 생명을 이어가는 여리고 약한 존재인 것이다.

비단 어린이 뿐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돌봄이 필요한, 돌봄을 기다리는 생명을 늘 마주한다. 거기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스스로를 돌보는 손길이 나아가 이웃을, 생명을 돌보는 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를 막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닌지.

헨리나웬은 <살며 춤추며>에서 ‘돌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참된 돌봄은 모호하지 않다.

참된 돌봄은 무관심을 배제한다.

돌봄은 냉담의 반대말이다.

“돌봄-care"은 슬피 운다는 뜻의

고트어 "kara(카라)“에서 왔다.

‘슬퍼하다, 슬픔을 겪다, 함께 울다.’가

돌봄의 기본 뜻이다.

기도회에 모인 이들, 이날 함께 자리하지 못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하며 마음으로 연대하는 모든 이들이 돌보는 사람들, 즉 '함께 우는 사람들'인 것이다. 헨리나웬은 같은 책(살며춤추며)에서 “인간의 고통에 깊숙이 들어가 자신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치유할 힘을 얻는다. 그런즉 누가 누구를 돌본다는 것은 무엇보다 함께 있음을 뜻한다.”라고 했다.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가끔은 이렇게 강남역에 와서 철탑을 바라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이 올라올 때가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가봐야지’ 마음먹는 순간은 ‘나, 여기에 살아있노라’고 손을 흔드는 김용희 님의 손이 떠오를 때다. ‘생명의 손짓’에 응답하고 응시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시인 안도현은 “개망초도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고 했다. 꽃이 그러한데 사람의 생명은 오죽하겠는가. 생명을 바라봐주는 눈길이 생명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믿는다.

다함께 수녀님의 기타 반주에 맞춰 “흔들리지 않게”를 부르고 김용희 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도회 말미에 수녀님께서 김용희 님이 내려오시는 날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기도회를 지속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작’이니 때로는 고정적으로 주관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누구라도 와서 자율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을 농성장 천막에 맡겨두고 가셨다.

상 위에 십자가만 올려놓으면 된다. 묵주가 있으면 묵주기도를, 아무 것도 없는 날에는 외우고 있는 기도문과 성가 한 곡으로도 충분하다. 정해진 토요일 오전 10시나 저녁 8시가 아니더라도 시간 될 때, 혹은 강남역을 지날 일이 생기면 들려서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철탑 위의 생명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시기를. 손을 흔드는 것 또한 생명을 돌보는 것이기에.

 

노동하는 이를 위한 기도
-
빅토르 하라_con Victor Jara

일어나라.
저 산맥을 바라보라.
바람과 태양과 물의 원천을,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그대,
네 영혼의 이랑에 씨를 뿌리는 그대여, 일어나라.
너의 두 손을 바라보아라.
너의 형제들에게 손을 내어 주고 함께 자라나라.
피로 뭉친 우리는 함께 나아가리니
오늘은 우리 미래를 만들어 가는 날
우리를 비참함 속에 가두는 손에서 해방시키시고,
정의와 평등의 왕국이 임하시며,
높은 산길에서 들꽃을 바람에 날리게 하듯 우리에게 불어오시며,
불같은 내 총의 총구를 깨끗이 해주시며,
마침내 당신이 이 땅에서 뜻을 이루시듯
우리에게 힘과 투쟁할 용기를 주소서.
일어서라. 너의 두 손을 보아라.
너의 형제들에게 손을 내어 주고 함께 자라나라.
피로 뭉친 우리는 함께 나아가리라.
지금도,
우리가 죽는 그 시간에도.
아멘.

 

삼성해고자 김용희 님을 위한 거리기도회 안내

 

<수녀님들과 함께하는 기도회> 

-장소: 강남역 8번 출구 앞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다음 일정: 8월 24일 오전 10시)

<향린교회 주최 2인 릴레이 기도회>

-평일 저녁 8시 (주말에는 참가자 자율)
-개인이나 단체 신청 가능합니다. (문의: 향린교회 페이스북)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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