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님, 이제야 당신 이름을 알았네요
상태바
김용희 님, 이제야 당신 이름을 알았네요
  • 신배경 기자
  • 승인 2019.08.16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톨릭일꾼이 만난 현장] 삼성해고자 김용희 님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거리미사가 있는 날.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빗줄기가 가늘어 다행이었다. 하루 유동인구가 서울에서 가장 많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역으로 향하는 길. 문득,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 김용희 님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철탑 위에 곡기를 끊은 사람이 있다.’라는 소식이 먼저였고, 이름과 사연은 서서히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 그가 걸어온 길을 알게 된다는 것. ‘알게 됨’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다. 시인의 표현처럼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들여다본 이상, 더 이상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 이 여름을 나기가 어렵고 불편하다.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어딜 가든 쾌적한 에어컨 바람이, 습관처럼 아이스커피를 찾는 나의 손이, 나의 일상이 편치 않은 여름이다. 한 생명이 위태롭다. 생명의 빛이 다시 타오르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인 날이 마침 광복절이었다.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빛을 되찾은 날’인 광복절 74주년이자 성모승천대축일.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주관으로 강남역 사거리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을 위한 생명평화미사가 있었다.

비 내리는 강남역에 한 분, 두 분 도착하시는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을 바라보며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 뜨거움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저기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따로 만나 밥 한 끼 나눈 적은 없지만 길에서 늘 함께하는 얼굴들. 우산을 들고 걸어오는 모습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도의 발걸음”이었다. 우산을 들고 모였지만, 미사 시작 전 모두 우산을 접을 수 있었다. 거리미사에서 늘 체험하는 기적 같은 현실이다.

철탑 위를 올려다보니 김용희 님은 공간이 비좁아 다리를 펴지 못하시기에 두 다리를 밖으로 꺼내어 겨우 걸터앉아 계셨다. 빌딩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차량의 소음 때문에 잠깐 지나가는 시간도 불편한 강남역 사거리 한 복판 위의 철탑.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한 수녀님께서 나눠주신 미사지의 상단에 “한 뼘 철탑 위 삼성 해고 노동자를 위한 생명평화미사”라는 문구가 씌어있었다. 생명의 길을 위해, 평화의 길을 위해 길거리의 제대를 향해 모인 이들. 한 마음, 하나의 지향, 김용희 님을 위해 예수회 박상훈 신부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강론은 예수회 김정대 신부님이 해주셨는데, '악의 평범성'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미사 후에도 내내 가슴에 머물러 떠올랐다.

“획일화에 길들여진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거나 가치를 따르지 않고, 외부에서 요구하는 대로 순응하며 삶을 살고, 외부의 가치를 따릅니다. 이런 경직된 문화 안에서 특별히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구조적인 악을 거부하기보다는 순응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의심하지 않으며 권력에 종속된 사람들이 “악의 평범성”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주체적 사유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찾아낸 자신의 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친 이들의 목소리가 결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한편,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 소리 내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그가 속한 집단의 성숙함의 척도가 아닐까. 김용희 님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람이다.

김용희 님과 전화 연결이 있었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소리는 육신의 한계를 이미 넘어선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힘이 있는 차분함이었다.

<김용희 님과 전화 연결>

“제가 이렇게 앉아서 인사드리게 되서 죄송합니다. 제가 많은 것이 부족하고 미약한데, 이렇게 삼성해고 노동자를 위해서 이 귀한 자리 마련해 주셔서 너무나 은혜롭고 감사하구요, 정말 이 땅에 정의와 평등을 위해서 이렇게 실천적으로 행동하고 계시는 신부님, 수녀님, 정말 고맙습니다. 어두운 장막에서 한 줄기 빛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러한 심정입니다. 좌절과 분노에서 떨쳐 일어나서 더 열심히 투쟁해서 이 땅에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그 확고한 신념을 꼭 실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좌절과 분노에서 떨쳐 일어나겠다는 말씀이 가슴을 울렸다. 얼마 전까지 죽기를 결심했던 생명이 또 다른 생명들이 나눈 빛을 받아들이겠노라는 선언이다. 생을 이어가겠다는 귀한 결심인 것이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김용희 님이 철탑 위에서 핸드폰의 불빛을 켜서 흔드셨다. ‘나, 여기에 살아있노라고’ 흔드는 손의 기력이 다하기 전에, 하루 빨리 ‘땅 위에서’ 서로의 온기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김용희 님의 빛을 되찾기를 기다린다.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사진=최원
사진=최원

 

[삼성해고자 김용희 님을 위한 거리기도회 안내]

<수녀님들과 함께하는 기도회>
-
장소: 강남역 8번 출구 앞 
-일정: 8월17일, 8월 24일 오전 10시

●<향린교회 주최 2인 릴레이 기도회>
-매일 저녁 8시 (주말에는 참가자 자율)
-개인이나 단체 신청 가능합니다. (문의: 향린교회 페이스북)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