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씨 위해, 교회 문 닫고 거리에서 주일예배 하는 향린교회 연합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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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씨 위해, 교회 문 닫고 거리에서 주일예배 하는 향린교회 연합예배
  • 신배경 기자
  • 승인 2019.08.0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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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이 만난 현장]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님을 위한 향린공동체 연합예배 참관기

뒤늦게 찾아온 장마가 물러가고 본격적인 불볕이다. 볕이 너무 뜨거워서 성당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강남역으로 향했다. 날이 선선했다면 떠오르지 않았으려나. 아침부터 숨 막히는 햇볕이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을 떠올리게 했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고 싶었지만, 몸이 아닌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8월 4일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을 위한 향린 공동체 연합예배가 있었다. 처음에 예배 소식을 들었을 때는 참석하게 되리라고 생각 못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조만간 어쩌면 이 자리에 미사 제대가 차려질 지도 모르고, 그때 미사에 참석하리라 생각했다. 다음 주 부터 몇 분의 수녀님들이 동참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미사 소식은 아직이다.

광화문에서처럼 늘 미리 준비된 제대를 만나고, 신부님들이 계신 현장에 그동안 익숙해진 탓일까? 고통 받고, 소외 당한 이웃의 손을 잡으러 가기 전에 제대가 차려지길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지 않은가. 물과 소금까지 끊었던 목숨 앞에서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주일에 교회 문을 닫고 거리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 

향린교회, 강남향린, 들꽃향린, 섬돌향린 4개의 개신교 공동체는 김용희 님과 함께 하기 위해 지난 일요일 교회 문을 닫고 신도들이 거리로 나왔다. 온 공동체의 참여로 이루어진 거리의 예배. 아는 얼굴 하나 없는 낯선 공동체였지만, 신도들 사이에 앉아 함께 기도 드렸다. 지난 주 거리 기도회에서 마주친 몇 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처음 보는 분들이었지만, 낯설음에서 오는 불편함 보다는 연대와 공감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였다. 김용희 님을 위해 같은 지향으로 한 분이신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우리가 왜 하느님의 자녀인지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용희 님의 소식을 듣고 향린교회에서 가장 먼저 달려와 매일 저녁 기도회를 진행하고, 전체 공동체가 거리로 나와 연합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김용희 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나보다 생각 했는데, 향린 교회 김희헌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나의 '오해'였다.

“저 역시 김용희 님이 투쟁해 온 지난 24년 동안의 외로운 삶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최근 신문 기사와 본인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나중에 읽고 나서야 비로소, 삼성으로부터 얼마나 부당한 일을 겪어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노동자 탄압의 종합세트’라 할 만한 모든 일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탑에 올라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들어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미안합니다.”(향린 교회 김희헌 목사)

김용희 님의 사연을 잘 알고 있어서, 어떠한 인연이 있어서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고통 중에 있는 영혼의 울부짖음을 들었고, 들었기 때문에 달려온 것이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철탑을 오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목숨의 귀함을 아는 누군가는 달려왔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달려와서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물어보며 귀 기울이는데서 연대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것이 예수를 만난 이들의 자세이자, 교회의 자세가 아닐까.

 

사진=신배경
사진=신배경

예배 중간에 김용희 님과 전화연결이 있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평온한 상태여서 놀라웠다.

김용희 님의 사연을 접하며 가장 가슴에 걸렸던 이야기를 본인이 직접 꺼내셨다. 행방불명되신 그분 아버지 이야기였다. 

“저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기도해 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자리도 아버지의 기도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아버지는 아침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목회자가 되길 바라셨지만, 저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법을 공부했습니다.”(김용희 님)

아버지는 김용희 님이 복직 투쟁을 하던 때 삼성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던 도중 어느 날 유언장을 남겨놓고 사라지셨다고 한다.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를 치를 수가 없어서 현재 행방불명인 상태로 남았다. 그때 아버지가 58세 되시던 해였는데, 본인은 지금 아버지의 나이를 지나 60세라고 했다. 60세가 정년이기에 이번 철탑에 오르며, 한 달을 기한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한 달만 버티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하였으나, 매일 저녁 달려와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움직였고, 특히 거리 예배를 지켜보며 끝까지 살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향린 공동체에서 매일 나오셔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특히 오늘 (8월4일) 예배모습을 보면서 끝까지 살기로 했습니다. 향린 공동체 분들 덕분에 다시 살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김용님)

기도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다. 성경을 통해, 교부들의 가르침과 성인들의 수많은 증언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기도는 “미루지 않는 사랑”이다.

예배 후에 김경호 목사님과 홍승권 의사선생님이 119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서 김용희 님을 만났다. 폭염 속의 장기간 금식으로 근육과 지방이 소실된 상태라 지금 당장 땅으로 내려와도 정상적으로 회복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저혈당 쇼크가 우려되는 위험한 상태이다.

신도들은 십자가를 앞에 들고 삼성 본관 둘레를 돌며 행진을 했다. 경찰이 배치되었으나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삼성 본관을 돌며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머릿속으로 잠깐 두렵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금방 사라졌다, 함께였기에. 삼성 본관을 도는 동안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읊조렸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1요한 4,18)

 

사진=신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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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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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배경

 

[김용희 님은 그동안 그 누구의 지원 없이 “혼자” 투쟁해 왔다고 합니다. 지난 2018년 본인이 직접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렸으나 당시 청원 동의자가 8명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김용희 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대의 의미로 청와대 게시판 글을 첨부합니다.]

 

무노조 삼성재벌 추악한 만행을 막아주세요

-김용희

<청원내용>

국민여러분 무노조 삼성공화국의 노동탄압을 막아주십시오

저는 82년 삼성항공(삼성테크인: 한화에매각) 창원1공장에 입사하여 84년 노사협의회 활동을 시작으로 사측은 노골적으로 잦은 부서변동 배치와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또한 동료들을 내세워 갈등을 부추기며 퇴근후 미행 감시등 도저히 회사에 다닐수가 없어 고민끝에 사원아파트에서 극약을 마시고 마산 삼성병원에서 3일만에 의식을 찾아 계속적인 진료를 받고 10일만에 출근을 하여 회사의 구조적인 모순과 근로조건 개선을 사명으로 여기고 노사협의회 활동을 열심히 해나갔었습니다.

회사는 그럴수록 동료들에게 전라도 한놈을 못 당하냐며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온갖 갖은 방법으로 노사협의회 출마와 당선 방해를서슴치 않았으나 매번 압도적으로 당선되어 90년 8월엔 삼성그룹 경남지역 노조설립 준비위원장에 추대되어 노동조합 설립을 힘차게 준비 중에 있었는데 그해 11월 하00 과장이 관계사 협력기술개발 현장을 답사하자 하여 공장장 차량과 운전기사가 대동한 차를 하 과장과 타고 나섰다가 대구 호텔방에 7일동안 감금당했습니다.

노조설립준비 포기를 강요받고 종용받았으나 뜻을 포기하지 않자 염00부장이 하 과장과 호텔방에서 교대하여 또 다시 전라도 대흥사 주변 모텔에 감금하고 7일동안 노조 설립준비 포기와 목포의 부모님 자택을 찾아가 자식을 설득하라 회유하였으나 아버지는 자식의 의중을 알고 더는 말리지 않아 15일만에 회사에 돌아가 전사원에게 납치 공갈 협박 회유를 폭로하였습니다.

그러다 91년 3월 1일 조0영(20세)이란 생산직 여사원이 상담 요청을 하여 부장을 포함한 6명의 사원과 성관계를 가졌다며 이름과 성관계 가졌던 일자와 장소를 자필로 적어주며 염00 부장만 노사협의회 차원에서 처벌해 달라하여 그렇게 하겠다 약속하고 왜 염00 부장만 처벌을 원하냐 물었더니 하계휴양소 장소를 사전답사 한다 하여 따라나섰다가 입사후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사협의회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고 있던 중 3월 29일 오전 11시 창원 한국노총지부에서 노조설립 총회를 비밀리에 개최하기로 하고 10시경 외출증을 받아 회사를 나서려다 사복경찰관에게 강제 연행되어 창원경찰서 내 선거사무실에 8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늦은 밤에 경찰관이 조사할게 있다하면서 조0영 여사원 성추행 혐의로 입건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곧장 조0영을 무고죄로 고소하고 다음날 풀려났는데 회사는 연행 당일 사내 게시판에 해고를 공고하여 출근을 가로막고 불가피 출근투쟁과 해고자 복직투쟁을 병행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해고되어 3개월쯤 아버지는(당시58세) 사측의 갖은 공갈에 힘들어하시다가 차마 자식을 가슴에 묻을수 없다며 유서 한장 써놓으시고 집을 나가 지금까지 행방불명되어 뼈 한조각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인사과 전00 대리 부인이 만나자 하여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경남도청소속 경찰관에게 창원시 장복산 기슭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던 중 야간방범 순찰 경찰관에게 적발되어 악마의 소굴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다음날 가해자 경찰 직속상관이 찾아와 천만 원에 합의하고 사건을 없던 걸로 무마하자 하였으나 거부하고 구속시켰습니다.(부산일보1면기사)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무노조 삼성의 악마와 싸워보기로 했습니다. 해고무효확인 소송 중이라 법원의 판단에 기대도 해보았습니다. 그때 변호사가 현재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조0영이 직접 자필로 작성하여 성추행 사실이 아니다라는 공증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아 소송에서 패소하고 문재인 변호사 사무장이 저에게 술을 사주면서 사과하고 공증서를 저에게 돌려주며 대법원에 항소하고 공증서를 제출하면 100% 승소할 수 있으니 직접 하라 했습니다

하여 대법원에 항소하고 결심공판이 15일 남았는데 삼성비서실과 사측 임원이 찾아와 대법원 항소 취하서를 작성해주면 계열사에 1년만 근무하다 원직에 복직시켜 주겠다 하여 취하 하고 삼성물산 러시아 스몰롄스키 건설현장으로 발령내어 계속해서 노조포기 각서를 강요하다 안 되자 손과 발을 포승줄로 5시간 동안 묶어놓고 본인의 007가방을 부수고 일체의 서류를 갈취해가고 간첩으로 러시아 대사관에 고발하여 공안담당 부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무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습니다.

사건 이후 사측은 자기들의 음모를 감추기 위해 한달에 한번씩 부서 전환배치와 국내 입국을 막기위해 싱가포르 건설현장으로 5년간 국외 근무하라 하여 저는 무조건 국내송환요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던중 10일쯤 지나 삼성물산 부사장이 단식투쟁 중인 저를 찾아와 송환 일자를 약속하고 단식을 중단 국내에 들어와 원직복직이 되리라 믿었는데 사측은 해고통지도 없이 출근을 막고 법대로 하라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혼자서 서울로 올라와 삼성그룹본사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고 단식투쟁을 하다가 두 번이나 구속되었습니다. 1차 구속 사유는 공무상비밀표시무효죄 (사면복권) 2차 구속사유는 공갈죄입니다. 해고기간의 임금을 요구했는데 공갈죄가 성립되는 삼성자본의 권력 앞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습니다. 한국기독교 인권회관에서 48일째 단식중 전.현직 민주노총위원장 단0호 이0호 두분이 찾아와 단식을 종결하면 노총차원에서 해결해주겠다, 하여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다음날 진해휴양소에 들어가 복식을 하러 내려갔는데 진해터널 입구에서 경찰에게 연행되어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10일 있다가 서울구치소로 수감되어 더 이상 삼성 악마와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울 의왕구치소에 입감하자 마자 마른 오징어와 땅콩을 먹게되면 단식중이었으니까 창자가 뒤틀리고 꼬여서 죽을거라 확신하고 밤새 먹었으나 결국 몸만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2차 구속때는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무기력증과 불면증 인격장애로 20년 넘게 복직 싸움을 하다가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광화문 촛불 집회가 시작되자 한번도 빠짐없이 박근혜 탄핵 요구와 공동범 이재용 구속을 요구하며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다 이재용이 구속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자 청와대앞에서 노숙 단식투쟁을 시작으로 119일이란 국내 최장 단식투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국민의당 안철수대표가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약속하여 단식을 풀고 기다렸으나 국민의당이 분당되고 통합하는 과정에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와중에 국정농단공범 삼성전자 이재용이 석방되어 또 다시 이재용 자택 앞 땅바닥에 비닐 한 장을 깔고 침낭을 이불삼아 하루종일 컵라면과 건빵으로 연명하며 20일째 노숙투쟁 중에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노동3권은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기본권입니다. 무노조 삼성과 싸울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언론은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광고수입 때문에 삼성문제를 기사화 할 수 없답니다.

아내는 사고 이후 천식으로 평생을 고생하고 있고 큰아들은 보름이 멀다하고 입에 거품을 물며 사지를 뒤틀리며 쓰러지는 간질병 장애자입니다. 둘째 아들은 결혼 2년만에 이혼하고 지금은 제 아내와 큰형과 아들 셋이서 한집에 살고 있으며, 저는 월 20만원 얼음짱 같은 달세방에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키180 센티미터에 체중 80kg 몸무게로 단식 투쟁 들어갔다가 119일 단식투쟁 끝마칠때 51kg로 줄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죽는 고통보다 괴롭습니다.

국민여러분이 나서준다면 용기내어 이재용 집 앞에서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하겠습니다.
그리고 외치고 싶습니다 이게 나라냐!!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올림 010-0000-0000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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