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씨, 뜨거운 날 뜨거운 목숨이 철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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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씨, 뜨거운 날 뜨거운 목숨이 철탑에 있었다
  • 신배경 기자
  • 승인 2019.08.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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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이 만난 현장] 강남역 철탑 고공 농성 -삼성해고 노동자 김용희
사진=신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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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내는 하루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흔해빠진 일상이 누군가에게 미안해지는 날이 있다.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 소식이 삼켜지지 않고 목 언저리에 얹혀 의식하게 되는 날이 있다. 강남역 사거리 한복판의 철탑위에서 곡기를 끊고 한 여름의 더위와 습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사람. 뜨거운 날의 뜨거운 목숨이 그랬다.

소식을 듣고도 틈을 내기 어렵다는 핑계로 “내 일”을 하느라 “내일”로 미루기를 여러 번. 늦은 장마에 빗줄기가 거세었던 7월의 마지막 날 저녁 강남역으로 향했다. 철탑 위에서 쏟아지는 비를 감내하고 있을 “김용희”라는 생면부지의 이름이 자석처럼 나를 끌었다.

차량 많고 사람 많기로 유명한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도착하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다 가게 되는 현장이건만, 갈 때 마다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았지만 ‘아는 얼굴’인 누군가가 연대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사진=신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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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사거리 폐쇄회로(CCTV) 철탑.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올려다 보아야 하는 꼭대기에 김용희 씨가 있다. 대로변을 달리는 차량의 훤한 불빛이 철탑 주위를 휘감은 어둠과 대조적이다. 하늘에서는 비가 철탑을 적시고, 땅에서는 차량의 소음과 진동이 철탑을 울린다. 철탑이라고 하기에는 위태로워 보인다. 시선이 철탑에 닿을 때면 숨이 막힐 듯, 바라보는 것이 힘겹다.

김용희 씨는 1990년대 삼성에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됐다. 경남지역 노조설립 준비위원장에 추대된 지 한 달 쯤 되었을 때, 길을 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청년들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해 20일간 중환자실에 있었다고 한다. 그 뒤 회사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지만, 나중에 조작에 가담했던 여직원의 양심선언에 의해 “조작”임이 밝혀졌고, 1992년 해고 노동자로 투쟁할 때는 경찰이 아내를 성폭행 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이어진, 미루어 짐작초차 어려운 고난의 여정이 김용희 씨를 철탑위로 오르게 한 것이다. 처절하고 참담한 이 생명의 무게를 과연 저 철탑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물과 소금까지 끊고 버티고, 버티었던가. 김용희 씨는 55일간 단식을 이어갔다. 김용희 씨와 연대하는 시민 단체와 많은 사람들의 권유로 지난 7월27일 금식을 중단했는데, 이미 김용후 씨의 몸무게는 30킬로그램이나 줄어든 상태였다. 

 

사진=신배경

한 여름 내리쬐는 태양을, 장마비와 습기를 굶주린 맨 몸으로 감당했다. 왜였을까. 김용희 씨 투쟁 소식을 접한 지인이 “극한 투쟁은 극한 불통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귀 기울이는 대상이 있어야 언어가 태어나고, 언어가 태어나야 소통이 시작된다. 소통할 수 없는 벽을 향한 몸부림. 그 몸부림을 “우리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 강남역. 416합창단의 연대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란색 우비를 입고 노래하는 유가족들의 노래는 음률이 실린 목소리라기보다는 “상처입은 치유자”의 에너지였다. 연대란 무엇일까. 함께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416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연대의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단상이 스쳤다.

 

사진=신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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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씨 고공농성 연대 촛불문화제에 한국민예총, 한국민족춤협회, 한국작가회의, 416합창단이 참여했고, 문화제에 이어 향린교회가 주관하는 기도회가 있었다. 길 위에 ‘작은 상’ 하나, ‘십자가’ 하나가 전부였다. 기도회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비가 그쳤고, 욥기를 읽고, 성가를 부르며 마음을 모은 시간이었다. <주님 나의 길에서>라는 제목의 성가는 최민순 신부님의 노랫말에 느린 중모리의 곡이었는데, 성가 제목 아래에 “기도하는 마음으로”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기도하러 모인 사람들. 굳건한 성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철탑을 바라보며 참담함을 느낀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구약의 여호수아기 6장에 나오는 예리코 성이 떠올랐다.

예리코는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굳게 닫힌 채, 나오는 자도 없고 들어가는 자도 없었다.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예리코와 그 임금과 힘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 너희 군사들은 모두 저 성읍 둘레를 하루에 한 번 돌아라. 그렇게 엿새 동안 하는데, 사제 일곱 명이 저마다 숫양 뿔 나팔을 하나씩 들고 궤 앞에 서라. 이렛날에는 사제들이 뿔 나팔을 부는 가운데 저 성읍을 일곱 번 돌아라. 숫양 뿔 소리가 길게 울려 그 나팔 소리를 듣게 되거든, 온 백성은 큰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때에 백성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올라가거라.”(여호 6,1-5)

사제들이 뿔 나팔을 부니 백성이 함성을 질렀다. 백성은 뿔 나팔 소리를 듣자마자 큰 함성을 질렀다. 그때에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은 저마다 성읍을 향하여 곧장 앞으로 올라가서 그 성읍을 함락하였다. (여호 6,20)

성 주변을 돌았고, 온 백성이 함성을 질렀을 뿐이다. 무력으로 성을 함락시킨 것이 아니다. 성벽이 무너져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인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 연대가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빗줄기가 거세어 우산을 뚫고 온 몸을 적셨다. 귓가를 때리는 빗소리가, 정수리의 차가움이, 신발에 고인 물이, 지금껏 느껴왔던 느낌이 아니다. 철탑 위의 산목숨이 떠오른다. 난 무엇을 해야 하나.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는 기도다. 때로는 철탑 아래에서, 어느 날은 일터에서,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연대가 기도라는 생각이 든다. 기도할 시간이다. 뿔 나팔 소리를 기다리며 귀 기울일 시간이다.

*향린 교회에서 준비한 기도회 자료집에 첨부된 김용희 씨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공유한다.

[20년째 투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1년 삼성에 노조설립을 하다가 해고당했을 때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때는 해고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집도 괜찮게 살 때였다. 그런데 이미 내가 다녀가기 전 부 터 삼성에서 아버지를 찾아가 회유하고 협박하는 등 괴롭혔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고 행방불명 됐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리고 아내는 그런 (성폭행 미수) 일을 당한 후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 이게 다 삼성에 노조 설립하려다가 생긴 일이다. 이게 한이 돼서 그만두지 못한다. 명예회복과 복직을 이루는 날까지 농성을 이어갈 것이다.”

[무리한 방식으로 농성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투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투쟁을 하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철탑에 오른 사람을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마저 가로막으려 사람을 납치해 감금하고 폭행한 삼성을 비판해야 한다.”

<삼성해고 노동자 김용희 님을 위한 기도회 안내>
-김용희 님이 내려올 때까지
시간; 매일 저녁 8시30분
장소; 강남역 8번 출구 고공농성 현장
주관; 향린 교회 각 신도회

[주말일정]
8월3일 토요일 오후4시
8월4일 일요일 오전11시 현장 연합예배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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