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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창파를 잠재우는 불심, 한용운[아시아 종교심성으로 읽는 요한 묵시록-9]

[오늘의 성경] 요한 묵시록 5,1-14

일곱 봉인으로 완전히 닫혀지고, 안팎으로 온전하게 쓰여진 생명과 역사의 책(두루마리)이, 하느님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획을 이제 당신 백성에게 들려주시고자 하지만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쳐볼 이가 세상엔 없다. 오로지 유다에서 난 '다윗의 뿌리' 만이 권력(일곱 뿔)을 충만히 갖고 계시고, 역사 속의 비밀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일곱 눈)을 가지셨기에 봉인을 떼실 수 있다(묵시 5.5-6). 

일곱 봉인을 떼실 어린양

그분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값을 치러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셔서 하느님께 바치셨기에"(5,9) 그런 자격을 얻으신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희생으로 모두가 한 왕국의 한 백성이 되게 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사제인 백성이 되도록 하셨다. 따라서 온 하느님 백성들과 천사들과 피조물들이 그분을 찬양한다(11- 13절).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집단인 교회는 마땅히 이 세상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하게 봉헌할 수 있을 때만이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그분의 계시를 전달하는 사명을 받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하셔서 당신 백성이 참혹한 운명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심판의 위협 아래서도 살아날 방도를 일러주고 싶어하신다. 그러나 당신께선 직접 그 일을 하지 않으시며, 언제나 인간의 구체적인 협조를 구한다. 여기서 어린양은 이 일을 위해서 사람으로 육화되신 분이며, 인간의 죄업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운명과 역사에 대한 이런 책임있는 태도야말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으실 만한 품성이다. 고해의 바다에서 고통받는 중생의 처지가 곧 어린양의 처지이며, 억울한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있는 목숨이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가 주춤거리는 사이에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죽임을 당하신다.

만해 한용운은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침략해 오던 시절에,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겨레의 운명 앞에서 전혀 흔들림 없이, 식민지 백성이 되어야 했던 우리 민중들과 더불어 고통을 달게 받았다. 또한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했던 만해는 그 당시 우리나라의 주류 종교였던 불교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이런 메시아적 사명이 이뤄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만해의 요청은 스스로 마음과 사상과 행동에서 일치된 삶을 끝내 살았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만해 한용운은 불교개혁 뿐 아니라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하여 체포당한 뒤 3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났다. 사진=당시 수형카드

조선 불교를 유신 합시다

만해 한용운은 1879년 충청남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한용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만해가 태어나기 3년 전에 맺어진 강화도 조약은 제국주의 침략으로 조선 봉건 왕조가 굴복한 첫걸음이자 동시에 이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첫걸음이었다. 그야말로 한 시대가 마감하고 민족의 생존이 위협받던 때였다.

만해는 이 격동기에 서당을 다니며 한학을 배우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빚어진 의병항쟁에 함께 나섰던 아버지와 형을 잃은 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머물며 불경과 근대학문을 공부했다. 특히 중국 계몽사상가 였던 양계초의 영향을 받아서 문명의 진보를 믿는 합리주의의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후 세계여행을 꿈꾸고 산에서 내려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온 뒤 출가하여, 1905년경에 백담사에서 김연곡 스님에게 봉완이란 계명을 받고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건봉사의 만화선사에게서 법을 이어받아 법명을 용운, 법호를 만해라 하였다.

승려가 되고서 불경공부와 참선에 정진하는 한편, 1908년에는 약 반 년 동안 일본 도쿄와 교토에서 사찰을 돌아보고,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 및 서양철학을 청강했으며, 급기야 1910년에 탈고하여 1913년에 출판된 「조선불교유신론」을 선보였다. 이 글은 불교의 개혁을 주장하는 열렬한 실천론이었다.

만해는 "금후의 세계는 진보를 그치지 않아서, 진정한 문명의 이상에 도달하지 않고는 그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한국 불교가 진보하는 인류 문명에 적합한지 먼저 묻는다. 만약 불교가 이에 맞지 않다면 아무리 위대한 불교인이 나오더라도 불교에 미래를 걸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불교라는 종교 자체가 아니라 무엇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종교의 본질은 인간 미래에 희망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런 희망이 없다면 인류는 구태여 진실하고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며, 게으르고 편한 것만을 좇아 순간의 만족만을 구하게 될 것이며, 세상은 반드시 지옥 같은 생활과 야만적 행위로 가득찰 것이라고 보았다.

평등주의를 실현하는 불교정신

만해는 불교의 가르침이 평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역설했다. 따라서 우리는 불평등한 현실을 뛰어넘어 얽매임 없는 진리의 눈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평등주의는 다만 개인과 개인, 인종과 인종, 나라와 나라 사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과 사물에까지 이뤄져야 하는 철저한 '차별 없음'이었다.

그러나 평등주의를 현실 사회에 적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불교의 안일한 소승적 태도였다. 만해는 불교가 참선과 고행에 의해 자기한 몸만 구원하려는 이기적인 종교로 알려져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부처님의 모든 설법이 중생을 구원하려는 자비심으로 가득차 있음을 강조한다. 해탈에 이르지 못한 병든 중생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을 때 그것을 곧 자기의 병으로 여긴 나머지, 자신의 해탈마저 거부하는 정신, 이러한 대승 정신이 곧 보살정신이요, 불교정신의 요체라고 믿었다.

따라서 만해는 염불당을 폐지하고 산중에 틀어박힌 절간을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세간으로 옮겨 현실 개혁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미신과 형식주의에 목이 졸려 있는 불교의 참 정신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요즘 참선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고요하게 가졌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처소를 고요하게 가지고 있다. 옛 사람들은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처소를 고요하게 가지면 염세가 되는 것뿐이며, 그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독선이 안 될 수 없다. 불교는 구세의 가르침이요 중생제도의 가르침인 터에, 부처님의 제자 된 사람으로서 염세와 독선에 빠져 있을 따름이라면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염불을 하는 것만으로, 이를테면 부처님께 아첨하는 것으로 서방정토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죄인이 법관에게 잘 보여서 벌을 면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해는 참 염불이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을 배우고, 그 행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만해는 승려라고 절에 앉아 참선과 독경만으로 지낼수는 없고 마땅히 제 먹을 것은 제 노동으로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놀고 먹기만 한다면, 그것은 곧 농사짓고 길쌈하는 이의 노력을 빼앗아 먹는 것이므로 경세제민(經世濟民: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함)에 걸림돌이 되고 모든 다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진=한상봉

산에서 내려와 대중에게로

만해는 양계초의 <방관자를 꾸짖는 글>이야 말로 조선 승려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1. 자기가 방관자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
2. 알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이기주의자
3. 늘 걱정하고 한숨을 짓되 아무런 실제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자
4. 자기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남을 비방하고 헐뜯어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자
5. 자기는 힘이 없다고 하면서 남이 일해줄 것만 기대하는 자
6. 때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방관자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자

이들은 인류를 해치는 도둑이요 세상의 원수라고 규탄했다. 그리고 조선 불교는 밖으로 권력과 금력에 굴복 야합하여 종교적 자주성을 잃어버렸으며, 안으로는 사찰 중심, 승려 중심으로 고립되었다고 꼬집었다.

"재래의 불교가 권력자와 합하여 망했으며, 부호와 합하여 망하였다. 원래 불교는 계급에 반항하여 평등의 진리를 휘날린 것이 아닌가. 이것이 권력과 합하여 그 생명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원래 불교는 소유욕을 거부하고 우주적 생명을 취함으로써 골자를 삼지 아니 하였는가. 부호와 합하여 안일과 탐욕에 빠져 그 생명의 태반을 잃었도다. 이제 불교가 진실로 진흥하고자 할진대 권력계급과의 관계를 끊고 민중의 신앙에 서야 할지며, 진실로 그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고자 할진대 재산을 탐하지 말고 이 재산으로써 민중을 위하여 법을 밝히고 도를 전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국 만해는 불교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권력과 금력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했으며, 그렇게 교리의 민중화, 경전의 민중화, 제도의 민중화, 재산의 민중화를 꾀했다. 만해의 슬로건은 '산간에서 가두로' '승려로서 대중에게로'였다. 중생들의 "번뇌 중에서 보리(진리, 법)를 얻고 생사 중에서 열반을 얻는" 것이 진정한 불교의 본래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유신론

이참에 마땅히 한국천주교유신론 역시 나와야 하리라. 한국 천주교회 역시 일제하에서 교회의 그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독부에 협조했으며, 신사참배도 허용하고, 태평양 전쟁 때에는 시국 강연회와 황군을 위한 미사와 무기헌납 운동을 벌였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공주의에 빠져 민중의 살림을 돌보지 않았으며, 1970년대에 와서야 사회개혁을 위해 나섰던 것이다.

또한 오늘날에도 성직자들의 질박한 생활과 세상에 대한 연민,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철저한 투신이 요청된다. 교회가 특권집단이 아니라 가엾은 중생들의 벗이 되어줄 때 비로소 기쁜소식의 전달자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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