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2일, 참여연대에서 기획한 <톡톡! 참토크> 마지막 주자인 이승연 작가의 <손절사회> 북토크에 다녀왔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운영위원인 주은경 선생의 강력한 초대 덕분이었다. 책을 급히 주문해서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참석했다. 이승연 작가는 98년생으로 사회학 연구자, 번역노동자, 교지 편집장, 번역가라는 다양한 이력이 있다.
책을 받고 놀란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표지 디자인이다. 제목이 말하듯 글씨가 다 끊어져 있다. 부제는‘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라는 긴 제목으로 논문을 연상케 한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380페이지 중에서 30페이지가 각주와 참고도서이다. 이승연 작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치열한 연구자라는 감이 왔다.
<손절사회>는 어느 질문자의 말처럼, 잘 다져진 두부처럼 밀도 있고 촘촘하게 쓴 탄탄한 글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이승연 작가의 외모는 내가 상상한 것과 달리 연약하며 대학생같이 앳되었다. 마이크 목소리는 빠르고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쓴 동기와 책에서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들을 담담하고 거침없이 펼쳐나갔다. 이 책은 ‘손절’이 문화가 된 사회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까, 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양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나는 ‘손절’이란 말이 낯설다. 오히려 절교나 결별, 의절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손절사회>는 손익계산을 따져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관계를 자발적으로 단절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 책의 대상은 이삼십대, 특히 여성이라고 한다. 작가가 우려하는 것은, 손절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타인을 ‘감정적 득실’에 따라 평가하며 손절이라는 행위를 통해 관계를 ‘최적화’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혼란스럽고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일단 나와 같은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이라고 말하는 세대의 말과 언어, 행동을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니 이해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서른 넘은 딸이 있어서 되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소위 ‘꼰대’는 되지 않으려고.
이 책은 ‘외로움’에서 출발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노인은 노인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노인들은 빈둥지 증후군을 경험하는 세대고 자녀들의 독립, 결혼, 배우자와의 사별로 외로움을 앓고 있다. 청년들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직장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스펙을 쌓느라,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외로움을 호소한다. 특히 요즘 청년들의 외로움은 어떤 상황이나 외부의 조건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고통받는 게 두려워서 ‘자발적’으로 손절함으로써 오는 외로움이다.
손절이 문제되는 것은 이게 ‘문화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승연 작가가 가장 심각하게 문제 제기하는 것은 ‘치료요법문화’와 ‘치유문화’이다. 이것은 자신을 ‘유해함’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시도다. 예를 들어 MBTI, 캐슬 culture, 사주팔자, 타투, AI와의 사랑, 명상과 같은, 치료문화요법으로 ‘무해함’을 추구하여,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상처나 고통으로부터 해방과 치유를 얻고자 하는 흐름이다.
작가는 ‘너 자신을 돌보라’든가, 자기계발을 종용하는 건강주의, 영혼의 건강주의를 경계한다. 얼핏 들으면 ‘자기관리 잘하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게 잘 사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자기의 영육 건강을 관리하면서 나에게 고통을 주거나 그렇게 관리하지 못하는 타인을 ‘대상화’하는 것이 우려되는 점이라고 한다. 또 이 모든 것들이 ‘소비주의’와 연결된다는 것도 문제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 다이어트, 마사지 케어를 하고, 외적 조건이 완벽한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결혼 시장’에 뛰어들고, 돌봄을 잘하기 위해 엄청난 육아 비용을 소비한다.
자기에게 유해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표현하고, 고통을 의료적으로 ‘병’으로 진단받아야만 안심하는 경향 등은 가학적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 문화는 우리를 공동체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며, 연대와 협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외롭다고 호소하면서 자기가 고통받지 않으려고 손절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의료화나 치유 문화로 학대할 게 아니라, 두려움을 털어내고 연대와 경청의 공동체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20대 후반인 작가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60대인 나도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말한 것 중 어떤 것은 공감하고, 어떤 것은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되지 않는 몸짓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승연 작가의 <손절사회>가 주는 유의미는 작가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이 사회가 손절이 아닌, 경청과 연대와 공동체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 방향성과 시선에 희망을 두고, 낯설지만 이렇게 놀라운 책을 쓴 이승연 작가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덧) 워낙 내용이 많고 내가 이해하기 에는 생소한 부분도 많아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에게도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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