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예수는 광신적인 믿음을 배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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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예수는 광신적인 믿음을 배격한다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2.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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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와 요한의 복음서-7
Master of the catholic king, the marriage at cana, 149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예수님의 첫 번째 징표는 가나의 기적이며 우리는 요한의 형식적 유대교에 대한 생각을 읽는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과 일치를 위한 혼인식에 초대되었다. 전통종교 행사에 술이 떨어져 마리아가 예수님께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요한 2,3)고 말한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여인”이라고 부르신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은 그녀가 창세기에 나오는 여인, 묵시록의 여인, 요한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여인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여인은 하느님 앞에서는 인간다움의 상징이다. 즉 하느님의 주도에 순응하고 응답하며 생명을 가져옴을 상징한다.

이 이야기에서 인간은 예수님을 향하여 종교의 내용이 없다고, 종교 안에 삶의 의미가 없고 존재의 기쁨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처음에 예수님은 아직 당신이 무슨일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여인은 구원의 시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하인에게 예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하라고 말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에게 예수님께 향하며 그가 시키는 대로하라고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포도주를 원하고, 세상과 값싼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일상적인 단조로움이 아닌 좀 더 나은 무엇을 맛보기를 원한다.

의식적인 종교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는 무능력함은 유대인들의 순결예식에 쓰여지는 빈 항아리로 상징되었다. 우리도 하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한다면 그분은 옛 종교의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대신할 무엇인가를 준다. 그분은 물 대신 포도주를 주신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값싼 포도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분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관계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 머리를 빙빙 돌게 한다! 그것은 우리를 기쁨으로 취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최고의 포도주를 엄청나게 많이 마신 것 같다!

요한 복음서 대부분은 값싼 광신적인 믿음을 배격한다. 잘 운영되는 교회와 듣기 쉬운 설교는 처음에는 솔깃할 수 있으나 그런 것들은 우리 내면 깊이 있는 영적 갈증을 참으로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공허하고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는 듯한 것들은 결국 고여 있는 물과 같이 무미 건조하게 느껴진다.

다음 장면이 이를 확인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고 파는 것의 상징인 (요한에게는) 성전으로 당당히 걸어가신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적인 마음의 평화를 사고 파는 상인을, 다윗과 솔로몬으로 하여금 하느님 성전을 짓게한 그런 열정으로 그들을 휘저어 놓고 쫓아내신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에게 이런 “시민 불복종” 행위에 대한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라고 할 때 그분은 강력히 항의하면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라고 대답하신다. 그분은 건물들에 중점을 둔 종교를, 그분의 몸, 그분의 백성에 초점을 맞춘 그런 차원으로 옮기셨다.

요한이 부활만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요한 복음은 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에 씌여졌다.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다주의의 잿더미에서부터 일어난다는 사실도 암시한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여기 나오는 것들을 포함하여 상징들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징주의는 매우 풍요롭다.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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