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첫 번째 사랑의 집으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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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첫 번째 사랑의 집으로 돌아가다
  • 가톨릭일꾼
  • 승인 2016.11.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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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길-3]
사진=한상봉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들은 구약과 신약에 자주 등장한다. 시편의 노래들은 하느님의 집에 살고, 하느님의 날개아래 피난처를 구하며,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보호 받고 싶은 염원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자리, 하느님의 놀라운 장막, 하느님의 굳건한 피난처를 찬미한다. 아마도 “하느님의 집에 머무는 것”이라는 표현은 영감 가득한 기도 속에 표현된 모든 갈망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를 "우리들 사이에 그분의 천막을 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요한 1,14)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요한사가는 예수가 그의 형제인 안드레아를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초대한다고(요한 1,38. 39) 말할 뿐만 아니라, 예수가 차츰 어떻게 자신을 새로운 성전(요한 2,19)이며 새로운 피난처(마태오 11,28)로 드러내는지 보여준다. 이 사실은 예수가 자신을 새로운 집으로 표현하고 있는 고별사에서 가장 충만하게 나타난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말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요한 15,4).

하느님의 충만함으로, 그분 안에 머물고 있는 예수가 우리의 집이 되었다. 우리 안에 집을 만듦으로써 예수는 우리가 우리의 집을 그분 안에 짓도록 허락한다.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와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분은 자신이 하느님과 맺는 친밀한 관계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도록 해 준다. 그분을 우리 안에 머물기로 즐겨 선택함으로써, 우리 역시 그분 안에 머물도록 초대받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육화의 신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인 삶에서 훈련이 무슨 의미인가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본래 속하는 집으로 돌아가는 점차적인 과정이며 그곳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소리는 “첫번째 사랑”의 소리이다. 요한 사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Ⅰ요한4,19). 이 첫번째 사랑은 우리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친밀한 자리를 내어준다.

첫번째 사랑은 말한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너를 사랑할 수 있기 전에­ 혹은 네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오래 전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너는 네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 훨씬 전부터 혹은 다른 이들이 너를 받아들이기 훨씬 전부터 받아들여지고 있다. 너는 네가 안전을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거나 다른 이들이 너에게 안전을 줄 수 있게 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안전했다.”

집이란 그 첫번째 사랑이 머물고 우리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자리이다... 기도는 하느님 안에 우리집을 만드는 가장 구체적인 길이다.

-헨리 나웬의 <생명의 징표들>에서
 

* 이 글은 1998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 올비스에서 출판된 <Henri Nouwen>(Robert A. Jonas 구성)을 부분적으로 옮긴 것입니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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