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귀를 기울이기: 영적인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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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귀를 기울이기: 영적인 훈련
  • 헨리 나웬
  • 승인 2016.12.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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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길-5
사진=한상봉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하고 예수는 외친다, “...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마르꼬 10,23). 그리고 우리에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오 16,24).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인 삶의 훈련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훈련이 없는 영적인 삶은 가능하지 않다. 훈련은 제자됨에 있어 필수적인 측면이다. 영적인 훈련을 실천하게 되면 하느님의 작고 부드러운 소리에 우리가 더 깨어 있게 된다. 예언자 엘리야는 하느님을 거센 바람이나 지진 혹은 화염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작은 소리(열왕기상 19,9-13 참조) 속에서 만났다. 영적인 훈련을 실천하면서, 우리는 그 작은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그것을 들을 때 기꺼이 응답하고자 한다.

걱정으로 가득찬 우리 삶에 대해 이렇게 살펴보면서, 우리는 보통 내적 외적으로 너무나 많은 소음에 둘러싸여 있어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야기 할 때에도 그분의 말씀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기가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우리는 자주 귀머거리가 되고 하느님이 언제 우리를 부르는지 알 수 없으며 어느 방향으로 부르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삶은 부조리한 것이 되어간다. “부조리한(absurd)”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라틴어 surdus를 보는데, 이 말의 뜻은 “귀먹은”이라는 뜻이다.

영적인 삶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은 끊임없이 말씀하나 우리는 거의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귀기울이는 것을 배울 때에, 우리의 삶은 복종적인, 순명하는 삶으로 변화된다.

“복종적(obedient)"이란 단어는 라틴어 audire에서 오는데 그 뜻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영적인 훈련은 불합리한 어리석은 삶에서 복종하는 삶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위하여, 시끄러운 걱정거리들로 가득찬 삶에서 자유로운 내적인 공간이 있고 그 안에서 우리의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의 안내를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삶으로 옮겨가기 위하여 필요하다.

예수의 삶은 복종의 삶이었다. 그분은 항상 아버지께 귀 기울이고 항상 그분의 소리에 주의를 하며 항상 그분의 지도에 깨어 있었다. 예수는 ”귀를 온통 열어 놓고“있었다. 그것이 참다운 기도이다. 하느님께 온통 열려 있는 것. 모든 기도의 핵심은 참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하느님의 현존 속에 복종하며 서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며>에서

* 이 글은 1998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 올비스에서 출판된 <Henri Nouwen>(Robert A. Jonas 구성)을 부분적으로 옮긴 것입니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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