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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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 거에요?”
  • 유형선
  • 승인 2017.03.0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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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작은 딸 수린이는 남자친구 A가 있습니다. 같은 유치원을 다닐 때 남자친구 A가 수린이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수린이는 ‘청혼을 이렇게 쑥스럽게 하는 남자는 처음이야!’라고 생각하며 승낙했답니다. 그 날부터 둘은 늘 붙어 다녔습니다. 3월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수린이는 남자친구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환해집니다.
“아빠, 저는 스무 살이 되면 A랑 결혼할 거에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벌써 2년째 들으니 이제는 웃음만 나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있던 일은 다시 한번 제 가슴을 철렁철렁 흔들어 댔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안방에서 저 혼자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칼 싸움 하는 무협영화였는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끌어안고 키스를 하며 쓰러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두 주인공이 멜랑꼴리하게 키스를 하며 풀숲에 쓰러지더니 이내 카메라는 흘러가는 강물만 비추었습니다. 이 순간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새 제 옆에서 작은 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로 이 요상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적정한 선에서 카메라는 강물만 잡아주었지만, 어쨌든 일순간 제가 좀 당황을 했습니다. 

“남자 여자 뽀뽀하는 장면 나오니까 수린이 좀 이상하지?”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작은딸의 반응을 보려고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딸 대답이 저를 한방에 쓰러뜨렸습니다. 

“아! 제 남자친구도 저렇게 뽀뽀해 주면 좋겠어요.”

제가 정색을 하며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수린이 남자친구는 어떻게 뽀뽀해 주는데?”

수린이는 제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대며 작게 ‘쪽’ 소리를 내는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수린이는 나중에 A랑 결혼할 거야?”
“네! 저는 A랑 결혼 할 거에요. 그런데 아빠! 제가 몇 살이 되면 A랑 결혼할 수 있어요?”
“그건 말이지…… 열여덟 살이 되면 결혼 할 수 있어. 그리고 스무 살이 되면 부모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지.”
“아빠! 저는 스무 살이 되면 A랑 결혼할 거에요.”

제 가슴 속이 하얗게 타 들어 갑니다. 자녀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절대로 안되겠지만, 멜랑꼴리한 뽀뽀를 꿈꾸며 스무 살이 되면 결혼을 하겠다는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아빠 마음입니다. 하얗게 타 들어가는 게 이상한 일만도 아닐 겁니다.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다독였습니다. 

“아빠는 수린이가 어떤 신랑감을 데려와도 좋아요. 수린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무조건 수린이 편이에요. 다만 아빠랑 한 가지만 약속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뭐에요?”
“결혼식은 꼭 성당에서 하는 거에요. 하느님 앞에서 신부님이 주례를 서는 혼인미사로 하기에요. 아빠랑 엄마도 성당에서 결혼했어요. 아빠는 아빠 딸들이 성당에서 결혼식 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혼인 서약 했으면 좋겠어요.”

작은 딸 눈동자가 잠시 멈춥니다. 짧고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빠!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 거에요?”
“그건 말이지……”

수린이를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볼과 볼을 대고 ‘음’ 소리를 내며 비볐습니다. 
“하느님은 수린이랑 아빠랑 꼬옥 끌어안을 때 우리 사이에 계시는 거에요.”

수린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저를 바라 봅니다. 

“수린이랑 아빠랑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있으면, 수린이는 아빠 눈망울 속에서 수린이를 다시 볼 수 있지요? 아빠도 수린이 눈을 보고 있으면 수린이 눈망울에 비친 아빠를 볼 수 있어요. 서로의 눈망울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수린이 얼굴에서 하느님을 보는 거고 수린이는 아빠 얼굴에서 하느님을 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빠 눈에 비친 제 모습이 하느님이라는 거에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하느님을 꼬옥 안아야 해요!”

다시 한번 수린이를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저도 알 수 없는 불안이 물러가고 편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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