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만들어온 ‘박근혜 하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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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이 만들어온 ‘박근혜 하야가’
  • 유형선
  • 승인 2016.12.05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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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대전에 계신 제 어머님은 일흔이 넘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으로 저와 카톡도 하시고 텔레그램도 하십니다. 손녀들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리면 하트가 그려진 이모티콘으로 답신도 하십니다. 제가 몇 번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야기나 한국천주교 뉴스를 카톡으로 링크 걸어 보내드렸더니 천주교 신자된 도리로서 계속 접하고 싶으니 종종 보내달라는 당부말씀도 하셨습니다.

대수천 같은 썩은 집단

그런 어머님께서 지난 11월 6일 일요일 저녁에 저에게 카톡을 보내오셨습니다. ‘천주교와 박 율리아나 대통령, 김계춘 도미니코,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지도신부’로 시작하는 제법 긴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최순실 비선이 드러났지만 대통령을 갈아치운다고 우리나라에 덕 될 것이 없지 않는가? 그러니 천주교회 이름으로 탄핵이니 하야니 하는 말을 하지 말고 우리나라가 공산주의국가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글이었습니다.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는 웬만하면 하지 않으셨지만, 안중근 의사께서 천주교인임을 자랑스러워 하셨고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마음 깊이 존경하시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대수천의 주장을 저에게 보내신 겁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즉 ‘대수천’의 친일역사관과 빨갱이 마녀사냥에 대하여 한참 설명 드렸습니다.

“어머니, 제가 대전에 있었으면 이 카톡 글을 크게 인쇄해서 하나 하나 집어가며 뭐가 문제인지 설명 드리고 싶어요.“
"나야 그런 걸 모르니 너에게 보냈지. 길게 설명하면 이 애미 다 까먹으니까 짧게 알려줘 봐."
"그러니까요 어머니, 대전 유흥식 주교님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시잖아요. 오늘 성당 주보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하여 정의평화위원회 시국선언문 나왔어요."
"어! 나도 봤어"
"김계춘 신부가 이끄는 대수천은 정위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을 빨갱이로 보는 집단이에요. 그리고 어버이연합이라는 이상한 단체 뉴스에서 보셨지요?"
"아! 나도 본 것 같아. 이상한 주장하는 그 뭐시냐……"
"대수천이 바로 천주교 판 어버이연합이에요"
"알았어. 여기서 더 설명하면 이 애미 다 까먹으니까 거기까지만 설명해!"

"어머니. 무섭네요. 어머니처럼 고운 신앙 가지시려고 노력하는 어르신들을 대수천 같은 썩은 집단이 카톡으로 홀리려는 게 무서워요."
"나는 잘 모르지만, 이번에 한국 정치가 바뀌어야 해! 그 뭐냐, 삼성이니 대기업들이 최순실에게 엄청난 돈을 줬다며? 그 놈들도 벌 받아야지!"
"맞아요 어머니, 대수천 카톡 보내시는 분들에게도 이 이야기 꼭 해주세요. 여기 서울은 역사책에 나오는 4·19 때 같아요. 어제 광화문에서 20만 명이 평화시위 했어요. 다음 주에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촛불시위 보여주려고 광화문 데리고 나가려 해요."
"너도 나라 걱정 이야기 할 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애들 목도리 해서 따뜻하게 입혀서 데리고 나가고!"

사진=한상봉

박근혜 하야가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마쳤지만 한참을 서성이며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썩어가는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저들이 벌이는 짓이 너무나 역겨웠습니다. 지금 이런 정치문화를 바꾸지 못하면 제 아이들이 커나갈 미래의 대한민국이 도대체 어찌 될는지 진실로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얼굴이 노래져서 서성이는 것을 보고 초등학교 5학년 큰 딸이 저에게 다가와 아빠가 대전 할머니와 무슨 이야기 하신 거냐고 물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대전 할머니가 보내준 대수천 김계춘 신부의 글을 보여주며 한 문단 한 문단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전 할머니와의 대화 내용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다음 날, 큰 딸은 저희 부부를 놀래켰습니다. 학교에서 친구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는 의기투합하여 ‘박근혜 하야가’를 만들었답니다. 동요 ‘앞으로’를 ‘하야해 박근혜’로 개사하여 오선지 공책에 그려왔습니다.

하야해 하야해 하야해 박근~혜
국민이 하~야~하래 그러니 우기지~마
박근혜가 하~야~하면 국민을 다 만나겠네
온 국민 남녀노소 하야해라 하~면~은
그 소리 들리겠네 청와대까지
하야해 하야해 하야해 박근혜

11월 12일 토요일, 저희 가족은 광화문을 찾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촛불과 깔개와 핫팩과 비상식량을 준비했습니다. 서울역부터 시청까지 손을 잡고 걸으며 ‘박근혜 하야가’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100만 시민과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벌써 대림주간 입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촛불을 밝히는 기간입니다. 동시에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벌써 6차례나 전국에서 열렸습니다. 그 동안 박근혜 율리아나 자매님께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실 때 마다 전국민의 촛불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저희 가족도 다시 한번 광화문을 찾으려 합니다. 부디 그 전에 박근혜 율리아나 자매님께서 어서 퇴진하시고 엄정하게 수사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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