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도 권력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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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도 권력이 작동한다
  • 유형선
  • 승인 2016.11.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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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제 작은 딸 수린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친구 A와 친해질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일 년 전, 수린이와 친구 A는 같은 유치원을 다니며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요즘, A는 더 이상 제 작은 딸과 친구로 지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쎈 친구 5명이 무리를 지어 놀이터를 장악하고 거칠게 놉니다. 말도 거칠고 행동도 거칩니다. 마치 놀이터의 주인 행세를 합니다. 유치원 때 처럼 부드럽고 착하고 사이좋게 노는 놀이 방식에는 더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끼리끼리의 패거리 문화가 훨씬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느껴진 겁니다.

그러나 제 딸 수린이는 예전처럼 A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놀이터에서 A와 A 친구들 주변을 서성입니다. 그러나 A는 단호합니다. 수린이를 친구로 받아 줄 수 없다는 일종의 접근금지 명령을 친구들에게 내립니다. 놀이터에서 A는 ‘배척’이란 이름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수린이는 A와 어울리고 싶어서 사실 여러 작전을 펼쳤습니다. 일단 A 친구 무리가 늘 터를 잡고 있는 놀이터에서 며칠동안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그러나 A 친구 무리는 수린이를 놀이에 끼워 주지 않았습니다.

수린이는 엄마를 활용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갔습니다. 어른 앞에서 접근금지 명령이 통할 리 없습니다. A가 슬쩍 주눅 든 사이에 수린이는 A 친구들과 몇 번 어울렸습니다.

이번에는 수린이가 엄마에게 빵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엄마, 붕어빵 좀 사오세요!”
나이 마흔이 넘은 엄마는 기꺼이 딸의 친교활동을 위해 ‘빵셔틀’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진=한상봉

그러나 다음 날, 결국 아내는 폭발했습니다. 수린이가 엄마에게 용돈 이천원을 얻었습니다. 알고 보니 수린이는 A에게 천원을 쥐어 주었고, 천원을 받은 A는 잠시, 아주 잠시 수린이가 놀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A는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수린이에게 이야기 합니다. 수린이가 집에 있는 엄마에게 뛰어들어와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A와 A 친구들은 모두 놀이터에서 사라졌습니다. 수린이를 속인 겁니다. 수린이는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린이는 펑펑 울면서도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A와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돈으로 친구를 사귀는 행동은 나쁜 일이라고 아내가 강하게 이야기 해도 수린이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퇴근한 저에게 아내가 요 며칠 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당신이 수린이와 이야기 좀 해보세요.”
저는 큰 숨 한번 내 쉬고 수린이를 제 무릎에 앉혔습니다.
“수린이는 A랑 친하게 지내고 싶구나?”
말 없이 고개만 끄덕입니다.

“수린아! 봄이 오면 꽃이 피지? 지난 봄에 수린이가 아침에 눈을 뜨면 늘 창문 앞으로 달려가 창문 너머 목련을 보며 언제 꽃이 피려나 매일 기다렸지?”
숙였던 고개를 들고 저를 바라봅니다. 수린이 눈망울에 지난 봄 피었던 목련이 다시 피어납니다.

“만약에 말이지, 만약에…… 수린이가 목련이 빨리 피기를 바란다고 피지도 않은 목련 꽃망울의 꽃잎을 억지로 손으로 벌리면 꽃이 예쁘게 피어날 수 있을까? 아마 꽃이 피기도 전에 죽어 버리지 않겠어?”
우두둑 목련 꽃잎이 떨어집니다.

“또 말이지, 나비가 되기 전에 애벌레는 고치가 되어야 하지? 만약에 빨리 나비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고치를 손으로 벌리면 예쁜 나비가 태어날 수 있을까?”

대답하지 못하는 수린이 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A는 아직 수린이와 친구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 친구를 기다려 줄 있겠어?”

수린이가 대답합니다.
“A와 유치원 다닐 때는 정말 재미있게 놀았어요. 저는 A와 다시 재미있게 놀고 싶어요.”
“그래, 아빠도 수린이가 친구 A와 다시 좋은 친구가 되길 바래. 다만 A는 예전처럼 수린이와 좋은 친구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된 거야. 기다릴 수 있어야 해.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고치가 스스로 벌어져 나비가 날아오르길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야. 수린이는 A를 기다려 줄 수 있겠어?”

저는 수린이를 꼬옥 안아 주었습니다. 짧은 탄성이 작은 딸 입에서 나더니 이내 몸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 나갑니다.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수린이는 열감기를 앓았고 며칠 약을 먹었습니다. 물론, 다시는A 친구 주변을 서성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꽃망울과 나비 고치의 비유가 충분치 않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상의 나래 속에서는 결국 꽃도 피고 나비도 날아오르지만, 현실에서 수린이와 A가 다시 유치원때의 관계로 회복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아이를 진공 밀실에서 키울 수는 없을 겁니다. 유치원생들 놀이문화처럼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관계가 어느 날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따돌림과 배척의 권력질서로 변질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초등학교 5, 6학년이나 중학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들이 배척과 따돌림의 패거리 문화를 보여주었다는 데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지난 주, 아내가 학교 담임선생님과 정기적인 학부모 면담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수린이 담임선생님께 놀이터에서 A와 수린이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아내 이야기를 경청하시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답니다.

“아마도 한 학년 한 학년 올라 갈때 마다 더욱강한 문화적 충격을 느끼실 겁니다. 예전에 중학교 때나 있을 법한 일들이 요즘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발생하고 있습니다. 학교 전체적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교육을 강화하겠습니다. 아직은 초등학생 저학년이니 교육이 먹힙니다. 이런 말씀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친구 관계는 따돌림이나 돈의 논리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입니다. 잘못된 문화가 퍼져 나갈 때 조용히 덮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빵셔틀과 돈의 놀이터 권력문화가 지금의 대한민국 어른들 사회를 보고 흉내내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로 산다는 것에 책임이 얼마나 큰지 배우는 요즈음 입니다. 굽은 곳을 곧게 펴는 노력을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다음 주에는 광화문 광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 합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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