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불, 성의 선함을 거부하는 순결은 얼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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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불, 성의 선함을 거부하는 순결은 얼음과 같다.
  • 한상봉
  • 승인 2017.01.0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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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하이저의 <거룩한 갈망> 강독-5

“아마도 이기심을 깨뜨리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방법은 우리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단순한 행위일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함으로써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어떻게 느끼시는지 알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주어진다. 그것은 이타심, 기쁨, 환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이 나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실제가 되기를 바라는 갈망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성적 에너지의 다양한 측면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우리 인간들이 신들로부터 오는 광기에 의해 생명의 불이 붙었으며, 이 에너지는 모든 사랑, 증오, 창조, 기쁨 그리고 슬픔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성은 영적인 삶의 중심에 위치한다.

롤하이저는 <거룩환 갈망>에서 건강한 성은 우리를 이타심과 기쁨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지만, 건강치 못한 성은 이기심과 불행을 끌어모으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행복한가 불행한가는 건강한 성생활을 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성은 워낙 강력한 불이므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방향으로 성을 이끌어가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성은 벅찬 사랑, 생명 그리고 축복을 만드는 힘이 되지만, 동시에 최악의 증오, 죽음, 엄청난 파괴를 가져오는 힘이 되기도 한다.

성(sexuality)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에워싸는 에너지이다. 한편으로 성은 생명의 원리 그 자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랑, 친교, 공동체, 우정, 가족, 애정, 전체성, 정점, 창조, 자기영속화, 비도덕성, 기쁨, 환희, 유머 그리고 자기초월을 이끄는 동력이다.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성은 우리존재가 혼자 있는 것에 끊임없이 대항하는 우리 안의 에너지이다.

생식능력(genetality)은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더 큰 실제인 성의 한 일부에 불과하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생식력은 특정화되고, 신체적인 완성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보통 우리가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과의 육체적 만남 때에 사용하는 우리의 거대한 에로틱 에너지 안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에너지들의 매우 특별한 어떤 통합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꽤 오랫동안 성에 관한 부정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생식력의 생명을 주는 영성을 참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독신제는 지나치게 영적인 이상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 성관계를 맺는 것은 분명히 성의 전체적인 실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하느님이 이 지구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이고 영원의 이승에서 사람들이 진정한 친밀감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실제로 어떤 신학자들은 성관계를 천국의 영원한 생명의 전조라고 보며 많은 전통적 신비가들은 하느님과 창조물과 우리들 사이의 궁극적인 합일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성적인 만남의 모습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대중문화는 성을 오로지 성관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비극적인 축소이다. 성은 보다 포괄적인 에너지이며 따라서 우리가 사랑, 공동체, 친교, 가족, 우정, 애정, 창조, 기쁨, 환희, 유머 그리고 자기초월을 삶 속에서 이루어갈 때 우리는 성적으로 건강한 것이다. 사람은 성관계를 많이 가질 수 있으면서도 사랑, 공동체, 우정 등이 부족할 수 있으며, 어떤 이들은 독신이지만 이런 것들을 풍부하게 가질 수 있다.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에로스(eros)라는 말을 전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에로스(eros)의 의미는 여섯 개의 상호침투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는 실체를 의미했다: 에로스는 루덴스(ludens, 사랑의 유희, 놀림, 유머); 에로틱 어트렉션(erotic attraction, 성적인 매력과 성관계를 맺고자하는 욕구); 마니아(mania, 사로잡힘, 사랑에 빠짐, 로맨스); 프라그마(pragma, 가정생활, 집 그리고 공동체에 관한 분별있는 운영); 필리아(philia), 그리고 아가페(agape, 이타주의, 무사무욕, 희생) 등 여섯 가지 차원이 서로 연결되는 말이다. 우리와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의 한 차원이 나머지 모든 차원들을 다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진=한상봉

성은 일치와 생명 가져오는 거룩한 힘이다

성은 아름답고, 선하고 엄청나게 강력하며, 거룩한 에너지로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우리를 초월해있는 일치와 완성을 향하여 움직이는, 제어할 수 없는 충동으로 변화된 성을 우리존재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서 경험하고 있다. 성은 또한 기념하고 축하하려는, 환희를 주고받으려는,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약동이다. 그 동산에서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벌거벗을 수 있으며, 걱정하지 않고 일하며 달빛 아래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것이다.

성의 충만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한 젊은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면서 기쁨에 넘쳐있을 때,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그의 이기심이 단지 아이의 행복만 보는 순수한 즐거움에 밀려날 때의 모습.

∙어떤 예술가가 오랜 사투 끝에 방금 완성한 작품을 보면서 만족할 때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은 아무것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의 모습.

∙어떤 젊은이가 자신은 춥고 젖었지만, 방금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하고 부두 위에 서 있을 때의 모습.

∙어떤 사람이 모든 것을 잊은 채 고개를 젖혀가며 박장대소하는 모습.

∙한 나이 많은 수녀가 수년간 자신을 희생하는 봉사를 통해 얻은 연민에서 우러나오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얼굴 가득히 띄고 있는 모습.

∙한 공동체가 무덤가에 둘러서서 비극과 화해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삶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

∙거의 오십 년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한 노부부가 서로에게 편안해지고 이제는 조용히 한 사발의 스프를 나누어 먹고, 상대방이 그냥 거기 있음에 만족해하는 모습.

∙어떤 사람이 섬김, 사랑, 우정, 창조, 기쁨의 순간에 자신을 초월하는 무엇인가에 너무나 사로 잡혀서 다른 사람과의 거리가 극복되는 때의 모습.

∙세상을 창조하신 후 또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내려다보면서 “정말 좋다. 이것은 나에게 기쁨을 준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모습. 이런 모습들이 바로 성의 성숙한 모습들이다.

성은 단순히 연인을 구하거나 친구를 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을 주고 그것을 축복함으로써 서로 떨어져있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숙한 성이란 자신을 공동체, 우정, 가족, 봉사, 창조, 유머, 기쁨 그리고 순교에 내어놓음으로써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이 세상에 생명을 가져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에 관한 양보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적 원칙들

a. 성은 신성한 것이다. 성은 영혼을 성사로 만들고, 하느님의 육체적인 손길이 우리를 만지도록 해 줄 것이다. 반대로, 성의 특성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성은 영혼을 분열시키며 괴팍하고 사악한 것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성은 자체가 지니고 있는 내적인 역동성으로 두 사람을(다른 어떤 것도 대신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열어주고 생명을 주고, 자비로우며 축복을 나누는 성인들로 변화시킨다. 성의 불꽃은 너무나 강력하고 귀중하며 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아주 가깝다. 그리고 너무나 신적인 것이므로, 생명을 주거나 빼앗아 버릴 수 있다. 그것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될 수 없으며, 성사가 되거나 파괴적인 행동이 될 뿐이다.

b.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성은 그 본성상 결혼, 출산 그리고 계약에 의한 헌신과 연계되어야 한다. 성은 전적으로 주기, 전적으로 신뢰하기 그리고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요구한다. 영혼의 나눔이 본성적으로 친밀한 것처럼 성에도 무조건성이 내재되어 있다.

c. 성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에너지이다. 충실하게 성의 본성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혼을 했건, 독신을 선택했든 간에 성화의 길로 나아간다.

d. 그리스도인에게 성은 항상 건전한 순결의 보호를 요구한다. 순결하다는 것은 성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순결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경외감을 갖고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경험함으로써 모든 것과 우리 자신들은 점점 더 통합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 그들의 도덕적, 심리적, 정서적, 심미적 성적 경계를 침범하지 않을 때 우리는 순결하다. 순결은 존중, 경외 그리고 인내이다. 순결의 열매는 통합, 감사 그리고 즐거움이다. 순결의 부재는 조바심, 불경 그리고 침해이다. 이러한 것들의 결과는 영혼의 분열, 증오 그리고 냉소이다.

강력하고 거룩한 불, 성적인 불은 단순히 어느 날 우리들의 기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에 의해 훈련되고 제재 받아야 한다. 수세기 동안 전해져 온 지혜와 직관들은 우리가 성의 불 앞에서 어떤 존경심과 거룩한 외경심을 가져야 하며, 거룩한 불 앞에서 우리 모두 신을 벗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성과 같은 강력한 힘에는 어떤 금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성의 선함을 거부하는 순결은 얼음과 같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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