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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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08.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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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운동과 마을 공동체 - 3
사진=한상봉

우리가 역사적 예수에게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물 중의 하나는 현대 서구의 종교와 문화를 지배하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경향을 따르는 해석자들은 가족을 포기하고 방랑하며 철저한 삶을 살았던 자유주의자 예수를 재구성한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가 당시 갈릴래아의 세포리스 등과 같은 도시에서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그리스의 견유주의 철학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예수는 개별적인 청중들에게 개별적인 가르침을 말한 개인적인 스승이었다. 그래서 이 개별적인 청중들이 예수의 개별적인 말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승하였다는 것이다.

마치 신비주의적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처럼, 예수는 개인에게 도래하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 개인주의적인 맥락에서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는 예수의 말을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단지 헬레니즘적인 유다인 사상가 필로의 작품들에서 하느님 나라의 의미를 찾는 것은 예수에게 있어 중심 주제인 하느님 나라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의 계약적이고 예언자적인 전승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주의적인 예수 해석은 갈릴래아와 유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형태인 가족과 마을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적인 상호 작용으로부터 예수를 분리시킨다. 이러한 경향은 어떻게 예수가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와 갈등에 참여하였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방랑하며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 가족을 포기하는 것을 옹호한 인물로 예수를 해석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복음서들의 예수를 무시하거나 거부한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는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의 팔레스티나에 존재했던 구체적인 상황과 특수한 정치, 경제, 종교적인 방식들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과 갈등에 참여하였다. 복음서들이 기술하는 예수는 가족들과 함께 활동하였고 마을 공동체들 안에서 일하였다. 따라서 역사적 맥락 안에서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현대 서구의 개인주의적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관계와 상황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켜야 한다.

역사적 예수에 관한 개인주의적 가설에 대한 중요한 반론은 당시 갈릴래아와 유다 사회 안에서 다수의 민중은 마을 공동체들과 가부장적인 가족들 안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고고학적인 연구는 요세푸스가 그의 저서 <생애> 235에서 당시 갈릴래아에 대략 200개의 마을이 존재했다는 언급을 확인한다.

예수가 살았던 기원후 1세기의 사회적 세계는 전-근대적인 농경사회적 지배체제였다. 억압 정치를 특성으로 가지는 고대 사회는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체제로서 소수의 전제 군주와 귀족 계급이 사회를 통치하였다. 이들은 도시의 지배 엘리트들이었는데, 다수인 평민들은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 일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예수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지도자들과 헤로데 가문의 통치자들,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 최고 의회 의원 등과 같은 유다 지도자들이 사회의 상층을 이루며,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상층부 아래에는 왕궁과 성전의 관리, 군인, 집사, 관료, 서기관, 도시 상인 등이 있었다.

고대 사회의 경제적 특성은 착취적이었다. 사회적 부의 원천은 시골 농부들의 생산물이었다. 그런데 농민들에 의한 이 생산물의 대부분은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도 않는 도시의 소수 지배 엘리트들과 부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이것은 농민에 대한 세금 징수와 농지에 대한 직접적인 소유, 소작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처럼 사회적 다수로서 부의 생산자인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 농부였다. 그들 중에는 작은 농지를 가진 농부, 소작인, 일용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육체노동자들 중에는 어부, 건설 노동자, 기술자, 광부, 하급 노예 등이 있었다. 사회 최하층으로는 집 없는 떠돌이, 거지, 눈먼 이, 귀먹은 이, 병자, 부정한 이들이 있었다.

이와 같이 예수 당시의 체제는 철저한 신분 사회이며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이 사회 체제에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는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과 부자의 차지였다. 인구의 9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피지배자들이고 가난한 이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을 시골 사람 계급(peasant class)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부분 농부들이고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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