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혁명을 위한 장엄한 투신
상태바
복음은 혁명을 위한 장엄한 투신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08.01 0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자렛과 예수 - 3
사진=한상봉

루카 4,16-30에서 예수는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말한다.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예수는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루카 4,18-19) 하기 위하여 왔다.

기원후 1세기 당시 잡혀간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암시는 분명히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사는 이들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더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의의 희생이 되는 모든 이가 이들 안에 포함된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우선적으로 가난한 이들이다.

복음은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한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를 의미한다. 그리고 복음은 인간의 영적인 조건뿐 아니라 육체적인 안녕을 위한 관심을 포함한다. 실제로 예수는 병자들과 신체 불구자들을 고쳐주었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함께 아파하기를 실천하였으며, 배고픈 이들을 먹였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였다. 그는 가난, 질병, 인간적인 부서짐을 돌본다. 따라서 복음은 정의를 위한 장엄한 투신이다.

인간의 영적인, 신체적인, 사회적인 차원에 관심을 가지는 총체적 복음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사회 변혁을 위한 토대이다. 이 총체적 복음이 예수의 사명이었다면 그것은 또한 그를 뒤따르는 이들 모두의 사명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규모로 그를 축소시킨다면, 그것은 그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약자들인 가난하고 주변으로 내몰린 이들, 여성, 어린이, 신체 불구자와 병자, 더러운 영이 들린 이들에 대한 기본 태도에 있다. 하느님 나라의 시작은 사회적 약자들에는 기쁜 소식, 곧 복음이었다.(루카 4,18-22; 마태 11,2-6; 루카 7,18-35) 복음은 그들의 사회적 배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받아들이신다는 위로와 그분이 이제 역사하신다는 확신을 의미한다. 예수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끝장내고 그들을 공동체 안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행동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정의를 가져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선언하였다.(루카 4,16-20)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느님 정의의 통치가 이제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마르 1,14-15; 마태 4,17)

그래서 산상 설교에서 예수는 하느님 정의의 요구를 그 무엇보다도 앞세우도록 말한다.(마태 6,33) 예수는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병자를 치유하며 배고픈 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더러운 영이 들린 이들을 깨끗하게 하며 배제와 억압의 지배 체제에 도전하였다. 이러한 예수의 정의 실현 운동은 비폭력적 특성을 가진다.(마태 5,38-42: 12,15-21; 이사 42,1-4)

예수가 선포한 기쁜 소식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이다. 하느님 나라는 현존하는 세계 질서를 뒤엎는 것이고 정의가 실재가 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의미한다. 예수가 선포한 비전은 이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먼저 당신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실천되고, 나아가 그들의 영향을 통해 더 넓은 사회 안에서 실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와 관련하여 배타적으로 사후(死後)의 삶에 집중하는 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의 삶에서 기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축소하게 된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도전하는 것이다. 예수의 복음은 가난하고 변두리로 내몰린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불의에 도전하며 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세속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는 단지 인간의 영혼을 돌보신 것이 아니라 항상 전인적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돌본다. 이와 같이 복음의 예수는 세상의 변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진정한 사회 변혁은 변화된 인간에 의해 가능하다. 즉 변혁적인 하느님 나라를 선도하는 모든 민족의 제자들(마태 28,19)인 변화된 인간에 의해 세상의 변혁이 가능하다.

예수의 제자들은 단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복음이 되도록 초대받았다. 이 복음은 총체적인 복음으로서 개인들의 개별적인 구원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사회 혁명을 의미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