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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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07.27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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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과 예수 - 2
베드로의 처갓집에 있었던 가파르나움의 회당

루카 4,16-30의 본문은 본격적인 공적 활동을 시작한 예수가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한 이야기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시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루카 4,16-17).

이사야서 본문을 읽은 후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루카 4,20-21). 이 장면은 예수 시대, 곧 기원후 1세기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행하여진 안식일 예식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예수는 먼저 성경 본문을 히브리어로 읽고 곧 이어 아람어로 번역하며 가르쳤던 것이다. 당시 팔레스티나 유다인들의 공통된 언어는 아람어였다. 즉 아람어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사용하였던 언어이다. 물론 당시 팔레스티나에서는 지역이나 사람들에 따라 그리스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루카 4장에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유다인들의 회당 예식에서 히브리어 성경은 아람어로 번역하고 설명되어졌으며, 이로부터 오랫동안 이 아람어 번역과 해석이 구두 전승으로 전해졌다.

사실 아람어는 알렉산더 대왕 원정 이전의 수세기 동안 고대 근동의 공용어였다. 특히 제2성전 시대 팔레스티나의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아람어는 일상적 구어였다. 히브리어가 더 이상 구어의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시기에 아람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다인들을 위하여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에 따라 나오게 된 것이 아람어 주석 성경인 타르굼이다. 

타르굼이란 원래 “번역”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팔레스티나 혹은 바빌로니아의 유다인들이 회당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놓은 성경을 가리킨다. 이 타르굼은 그리스어 칠십인 역 성경과 함께 그리스도교 이전에 생겨난 대표적인 번역 성경이다.

이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가 읽은 이사야서(61,1-2; 58,6)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 본문을 통하여 예수는 주님의 은혜로운 해, 곧 희년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말한다. 이 이사야서의 본문은 레위 25,8-22의 희년에 관한 규정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은혜는 희년법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서 예수는 모든 종이 자유롭게 되고, 빚이 탕감되며, 눈먼 이가 다시 보고, 감옥에 갇힌 이가 석방되는 희년을 선포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예수의 희년 선포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가진 것을 공정하고 나누며, 가난, 배고픔, 억압, 탐욕과 폭력에 대항해서 일하도록 초대한다. 즉 예수는 희년이 요구하는 바를 실제로 실천하도록 부르신다. 따라서 희년의 실천은 예수님을 뒤따르는 그리스도인의 과제이다.

그리고 루카 4,18-19은 신약 성경에서 생태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본문들 중의 하나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생태 정의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희년의 가르침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해방과 치유는 창조 세계에 대한 돌봄에 상응한다. 여기에 예수의 희년 선포가 가지는 통합적 정의의 차원이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예수의 기쁜 소식은 땅과 모든 나머지 창조 세계를 위한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물질적인 부를 나누기를 거부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대함을 거절하는 이들에게는 예수의 희년 선포가 나쁜 소식이 될 것이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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