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람 예수, 나자렛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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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 예수, 나자렛에서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6.07.1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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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과 예수 - 1
지금은 도시로 성장한 나자렛, 그러나 예전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한상봉

역사의 예수는 예루살렘의 예수, 베들레헴의 예수가 아니라 '나자렛의 예수'로 불린다. 신약 성경에서 그는 “나자렛 출신”(마태 21,11; 요한 1,45; 사도 10,38) 혹은 “나자렛 사람”(마르 1,24; 10,47; 14,67; 16,6; 요한 18,5.7; 19,19; 사도 2,22)이라고 불린다. 예수는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나자렛에서 보냈고 공적인 활동을 거기에서 시작하였다.

요세푸스의 <유다 전쟁사> 3권 35이하에는 갈릴래아 전체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상부지역과 하부지역으로 나뉘어진 갈릴래아는 페니키아와 시리아에 둘러싸여 있었다. 서쪽 경계는 프톨레마이스와 카르멜 지역이고, 남쪽 경계는 사마리아와 스키토폴리스 지역으로부터 요르단 강까지이다. 동쪽 경계는 히푸스, 가다라, 가울라니티스이고, 북쪽 경계는 티로 지역까지이다. 이 좁은 갈릴래아 지역은 강력한 이방민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어떤 침략에도 저항하였다. 왜냐하면 주민들이 어린 시절부터 전쟁에 단련되어 있었고 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갈릴래아는 땅이 비옥하고 목초도 풍부하여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랐다. 그래서 게으른 이들도 농사를 지으려 하였다. 모든 땅이 경작되었다. 갈릴래아의 면적은 페래아보다 작았지만 자원이 풍부하였다. 땅은 경작되어 농작물을 생산하였다.”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34km, 갈릴래아 호숫가에 위치한 티베리아스에서 서남쪽으로 약 30km, 카나에서 서쪽으로 약 7km 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나자렛은 해발 약 375m에 위치한 산 위의 고을로서(루카 4,29), 사방이 산들로 둘러싸인 지대가 높은 분지에 자리 잡은 산골 마을이다.

나자렛이라는 지명은 구약성경이나 고대 유다 문헌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즉 예수님 이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조그마한 촌락이 나자렛이었다.

사실 우리는 나자렛이라는 이름의 의미와 기원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히브리어로 “노츠리”라고 불린다. 그리스도교적 전승에 따르면, 이 용어는 이사 11,1인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에서 새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인 “네체르”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에 따르면 새싹은 예수를 가리킨다.

루카 1,26-38에 따르면, 나자렛에 살고 있던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이 예고된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루카 1,26-27). 요셉과 마리아는 원래 나자렛에서 살았는데,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따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에 갔다가 거기서 아기 예수를 낳았으며(마태 2,1-12; 루카 2,1-20), 이집트 피신 후(마태 2,13-15)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가 그를 키웠다(마태 2,23; 루카 2,39-40.51-52). 마태 2,23에 따르면,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는 나자렛 회당에서 가르쳤는데(루카 4,16-30), 고향 사람들로부터 불신과 배척을 받기도 하였다(마르 6,1-6).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루카 4,28-29). 요한 1,46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해질 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사실 자연 환경은 사람의 삶과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상, 종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역사의 예수를 이해하는데도 그가 살았던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자렛은 시골이었고 예수는 시골 사람이었다. 예수는 당시 역사의 구체적인 현장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불의를 관찰하고 경험하였다. 이러한 체험은 그를 사회 정의를 위해 투신하는 사회적 예언자의 삶을 살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생태적 체험은 생태 정의를 위한 전망의 밑거름이 된다.

예수는 나자렛의 자연 세계 안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태양, 비, 바람, 나무, 그늘, 철새, 참새, 무화과 나무, 포도 나무, 올리브 나무, 집짐승, 들짐승 등을 통해 나자렛의 비옥한 땅과 생물 다양성을 관찰하고 경험하였다. 이 창조 세계의 체험을 통해 예수는 생태학 지혜를 키웠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과 인간을 새롭게 만나고, 피조물의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을 배웠다. 그의 생태적 관점과 표현 방식은 특히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그의 비유 말씀에서 탁월하게 드러난다. 이와 같이 갈릴래아의 민중에게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소통하는 예수의 지혜는 이러한 사회적, 생태적 체험에 기초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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