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모린] 환대의 집: 주교들을 민중에게로, 민중을 주교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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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모린] 환대의 집: 주교들을 민중에게로, 민중을 주교에게로
  • 피터모린
  • 승인 2019.08.1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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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모린의 "easy essay" - 미국의 주교들께 환대의 집 설치를 탄원함

가난하면서
구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사회는 거지를
행려자니 노숙자니 하며
등을 떠민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하느님의 사자라 불렀다.

그러니까 당신이
행려자나 노숙자로 불린다 해도
실은 하느님의 사자인 것이다.

하느님의 사자로서
당신은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을
제공받아야 한다.
그것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슬람교 스승들은
하느님께서 빈자에 대한 환대를 명하신다고 말하며,
이슬람교 국가들에서는
지금도 빈자에 대한 환대가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국가들에서는
환대의 의무가
가르쳐지지도 수행되지도 않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잠자리가 필요한 당신이
부자들의 집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부자들의 집에는
손님방들이 있지만
그 방들은 정작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방들이 정작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은
그들이 더 이상
하느님의 사자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빈자 환대를
자신의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을 시립 합숙소에 보내면서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거기서는 시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환대를 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털터리들에게
시가 베푸는 환대는
환대가 아니다.
납세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실업자는
시립 합숙소에 보내져서는 안 된다.
가톨릭 실업자는
가톨릭의 환대의 집에서
환대를 받아야 한다.

가톨릭의 환대의 집은
유럽에서는
호스피스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유럽에서는
콘스탄티노플 시대 이래
호스피스가 있었다.

호스피스는 무료 여관이며,
호텔은 유료 여관이다.
그리고 유료 여관 곧 호텔은
쌔고 쌘 데 반해
무료 여관 곧 호스피스는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환대는,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이제 이상으로 받들어야 한다.

우리는 환대의 집이 필요하다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섬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는 환대의 집이 필요하다

주교들을 민중에게 데려가고
민중을 주교들에게 데려오기 위해
우리는 환대의 집이 필요하다

교회 제도 안에서 전승된 자선의 기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환대의 집이 필요하다

이상이 실현되었을 때
그 모습이 어떨지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환대의 집이 필요하다

가톨릭운동을 통해
가톨릭교회 안에
사회 정의를 들여오기 위해
우리는 환대의 집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톨릭 백과사전에서 읽고 있다
그리스도교 초창기에는
호스피스가
병자, 빈민, 고아, 노인, 나그네 등
온갖 빈자들의 의지처였다고.

원래 호스피스는
주교의 감독을 받았다.
주교는 사제들에게 지시해
이들 자선 시설의 영적, 세속적 문제들을
보살피게 했다.

436년 무렵에 개최된
이른바 카르타고 공의회의
제14조는
주교들에게
교회 부속으로
호스피스를 설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당시보다 더 많이는 아니더라도
그만큼은 환대의 집이 필요하다.

본당에는 사제들을 위한 집
교육을 위한 집
여가 활동을 위한 집들이 있지만,
환대의 집은 없다.

보쉬에가 말하듯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맏이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은
먼저 대접받아야 한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손님을 맞을 방이 있어서
본당의 빈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할 수 있다.

그래도 거처를 찾지 못한
교구의 빈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교구에서도 집을 마련해야 한다.

교구의 빈자들에게는
교구의 환대의 집에서
가구, 의복,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교구에는 예배소뿐만 아니라
거처도 필요하다.
리버풀의 새 성당에는
성당(Dome)뿐만 아니라
구빈원(Home)도 들어설 것이다.

가톨릭 환대의 집은
무직 신자들을 위한
무료 여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사제 양성 기관 겸
직업 훈련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코르베 신부의 제안이다.

그것들은 가톨릭 신자들의
독서실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멕솔리 신부의 제안이다.

그것들은 가톨릭을 가르치는
학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코넬리어스 헤이스의 제안이다.

그것들은 원탁토론실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피터 모린의 제안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들은
가톨릭 사상이 가톨릭 운동과 결합되는
가톨릭 운동의 집일 수 있어야 한다.

 

피터 모린
가톨릭일꾼 공동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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