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모린] 조용한 혁명, 가톨릭일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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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모린] 조용한 혁명, 가톨릭일꾼운동
  • 존 코글리
  • 승인 2019.07.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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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모린의 "easy essay" -서문

 

신문에서 운동으로 확대된 '가톨릭일꾼' 

5월 1일이면 <가톨릭일꾼>은 생일을 맞는다. 이 유명한 1페니짜리 신문은 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노동절에 유니언 광장에서 무료로 배포되었다. 그날은 미국 교회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곧 신문에서 운동으로 확대된 <가톨릭일꾼>을 통해 가톨릭의 막대한 잠재에너지가 방출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 에너지 중 일부는 의심할 여지없이 유토피아적 명분과 세상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 무모한 계획들에 이끌리고 있다. 그런 일은 젊은 이상주의가 개입되어 있을 때는 불가피하다. 젊은 이상주의라면  가톨릭일꾼에도 늘 떠나지 않았던 것이긴 하다. 규칙도, 규제도, 회원도, 위원회도, 기본재산도 없이 존재했던, 그리고 조직의 기술과 세속적인 경고가 담긴 충고들을 애써 거부했던 가톨릭일꾼'은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된 진지하게 기획된 대다수의 여타 운동들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현실적인 계산으로 보더라도, ‘가톨릭일꾼'은 효율성과 진정한 검약의 모범적 사례로 꼽혀야 한다. ‘가톨릭일꾼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해냈다.

가톨릭일꾼은 굶주린 이들을 먹여주고, 헐벗은 이들을 입혀주고, 집 없는 이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등 실제로 25년 동안 매일 매시간 그 일을 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게 한다는 계획도 세웠는데, 이 분야에서도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복음 정신을 회복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복음의 단순 소박한 진면목을 증언할 계획도 세웠는데, 이 분야에서 가톨릭일꾼이 세운 기록을 따를 상대가 없다. ‘가톨릭일꾼은 '학자'와 'ㄴ동자'를 결합할 계획도 세웠다. 이 계획도 상당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The Lord's Supper" by Fritz Eichenberg
"The Lord's Supper" by Fritz Eichenberg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애매함이 강점일수도

처음부터 가톨릭일꾼은 평화주의를 지향했다. 이는 이 신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주목을 덜 받은 점이었는데, 그렇게 된 것은 1933년에는 모두가 평화주의자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가톨릭일꾼의 확고한 태도가 처음으로 시험을 당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고서야 평화주의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1940년 까지, 평화주의는 가톨릭일꾼의 계획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항목이 되었으며, 오늘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톨릭일꾼은 전시와 평화시를 모두 견뎌내고 살아남았으며 지금까지 근 30년 동안 교회 내부에서도 볼 수 있는 대외 강경론과 맹목적 애국심에 맞서 비판을 그치지 않고 있다.

그 후 오랫동안, 전쟁의 도덕성을 둘러싼 진지한 사유는 어느 것이나 가톨릭일꾼의 고집스런 무저항주의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 나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해 이 신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 신문이 말하는 것은 대개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애매하며, 심지어는 감상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이 약점들이야말로 가톨릭일꾼의 커다란 강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견해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오히려 나와 같은 비평화주의자들이 경솔하게 폭력을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초기에, 가톨릭일꾼은 사람들을 땅으로 되돌려 농경 본위의 경제 체제와 생활방식을 회복한다는 구상을 폈다. 수년에 걸쳐서 여러 집단과 개인들이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영웅적인, 그리고 때로는 돈키호테 같은 노력을 기울였다. 몇 곳에는 실제로 농경 공산체가 설립되었다. 그 중 어느 하나도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가 그토록 열렬하게 주창한 공동체의 모범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농경주의 이상에 따라 사는 데 대해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요구하는 것이 없는 운동

가톨릭일꾼은 대중 없이 일하는 듯하면서도, 자신이 계획한 것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신문의 희망이 대단히 소박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라야 거의 없었기 때문인가. 도로시 데이는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리지외의 데레사가 말한 '작은 길의 영성'을 무던히도 강조했다. 이 운동이 보여주는 넘치는 생명력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가톨릭일꾼은 대단한 어떤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신에 대한 선전 활동에도 결코 연연해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기꺼이, 그리고 심지어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포기하면, 그런 태도가 오히려 이런 것들을 얻어주었다.

이 신문이 위대한 그리스도교 신학을 배고픈 이를 먹이고 앓는 이를 간호하는 등의 소박한 말로 번역한다고 해서 신학의 위신이 실추되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그 호소력을 드높였다. 가톨릭일꾼에 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신학에 문외한이었지만 결국에 가서는 아우구스티노, 토마스, 보나벤투라 등 성인들에게 흠뻑 빠져든다. 결코 권력을 지향하지 않는 이 운동이 영향력 있는 가톨릭인들에게 미국 교회의 그 어떤 세력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존 코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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