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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료프의 <즈베니고로드의 구세주>: 그리스도 바라보기러시아 이콘 묵상-4

1. 예수 얼굴의 변천사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의 얼굴은 아주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미술사>(이진숙, 2007)에 따르면, 389년경 제작된 부조에서 예수님은 20대의 젊은 청년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상의 악을 물리친 젊은 예수님은 사탄을 밟고 있으며, 양옆에는 그리스도교를 세계종교로 만드는데 공헌한 사도 바오로와 베드로가 서 있다. 520년경 제작된 라벤나 교회의 모자이크에서는 제자들에게 빵의 기적을 보여주는 예수님이 수염이 없는 젊은 목동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마침내 6세기 말에 들어서면 예수 그리스도의 도상이 성경의 내용과 상관없이 근엄한 모습으로 굳어진다. 로마의 성 코스마와 다미안 성당의 중앙에 있는 예수상은 세상을 지배하는 위엄있는 ‘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예수님은 빛나는 금빛 도포를 걸치고 하느님 말씀이 담긴 두루마리를 들고 천상의 구름 속에 있다. 10세기경에 이르면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 그리스도)라는 도상이 등장한다. 교회 건물 꼭대기에서 신자들을 내려다보는 예수님의 얼굴은 이제 세상의 지배자답게 근엄하고 권위적인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비잔틴 미술과 중세미술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에 등장하는 그리스도는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근엄한 표정으로 왼손에 보석 장식이 된 복음서를 들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강복을 하고 있는데, 굽혀진 세 손가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펴진 두 손가락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한다. 이는 전능하신 구세주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하늘에서부터 땅끝까지 펼쳐져 세상 모든 민족이 그 은총을 누리고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

중세인들은 끊임없는 전쟁과 질병, 가난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종말이 머지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심판의 날에 예수님이 세상의 불의를 벌하고 의인을 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은 심판자로서 분노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러시아 이콘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페오판 그렉의 <세계의 왕 그리스도>(1378년)이다. 결국 예수님의 모습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과 인간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헨리 나웬은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하느님과 인류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예수님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헨리 나웬은 “예수님은 하느님과 형제 인간에게 가는 입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1430)가 그린 <우리의 구세주>(1410년경)에 그려진 예수님의 표정에는 온화함이 깃들어 있다. 이 이콘은 즈베니고로드에 있는 어느 교회를 위해 그린 일련의 이콘 가운데 하나인데,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2. 구세주, 평화를 주시는 분

루블료프의 <우리의 구세주>는 그리스도의 얼굴과 꿰뚫어보는 눈의 그 아름다움은 선명하게 남아있지만, 다른 부분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머리와 이마의 일부는 지워졌고, 턱과 가슴에 칠한 물감에는 금이 갔다. 아랫입술 밑에서 짙은 겉옷 위로 검은 줄이 가고, 어깨에 걸친 망토와 겉옷도 여러 군데 손상되었다. 나머지 몸체는 완전히 퇴색되었다. 이 정경을 보고 헨리 나웬은 “우리 세상의 폐허를 통해서, 슬프지만 무척 아름다운 얼굴이 우리를 바라본다.”고 고백했다.

이 이콘은 즈베니고로드의 예수승천대성당 근처의 어느 헛간에서 1918년에 발견되었다. 러시아혁명이 성공한지 1년 뒤였다. 그림복원가 바실리 키르코프는 헛간으로 난 뚜껑 하나를 들쳤다가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루블료프가 그린 구세주의 얼굴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참혹한 환경에서 발견된 이콘이기에 러시아 사람들이 ‘평화를 주시는 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사람들은 그분이 지난 6세기 동안 숨어 계시면서 러시아를 돌보고 계셨다고 믿었다. 친절하고 지적인 눈을 지닌 이 신성한 얼굴은 갈수록 폭력이 심해가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깊이를 전해준다. 헨리 나웬은 이 이콘이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이라고 안타까워하며 구세주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전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3. 구세주의 시선

<우리의 구세주>의 그리스도는 어깨와 가슴을 약간 옆으로 틀고 있지만, 얼굴은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돌아서신 모습이다. 그 모습은 마치 예수님께서 앞으로 가시다가 우리를 보시고, 고개를 돌려 우리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다. 헨리 나웬은 여기서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눈길을 떠올린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 두 번째로 닭이 울었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루카 22,61)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이 자기의 가장 깊은 존재를 꿰뚫어 보시는 것을 보셨고, 자신의 나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22,62) 그 눈물은 참회의 눈물이고, 그분이 돌아가신 연후에 찾아올 사랑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다.

이를 두고 이진숙은 <러시아미술사>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예수님의] 이 눈빛은 죄를 심판하는 심판자의 것이 아니다. 하찮은 존재들의 아픔, 어리석음과 탐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깊은 연민의 눈빛이다.”

4. 구세주의 색채

이번엔 색채다. 그리스와 러시아 이콘에서 그리스도는 붉은 겉옷을 청색 망토로 감싸고 있다. 성모님은 청색 겉옷을 붉은 베일이 감싸고 있다. 붉은 색은 신성을, 청색은 인간성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지만 인간성으로 감싸고 있으며, 성모님은 성령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구세주> 이콘의 담청색 망토는 하느님의 인간적 얼굴을 더욱 또렷이 보게 해 준다. 그 얼굴에는 비잔틴식 엄격함의 자취가 없다. 예술사가 라자레프는 이 구세주의 얼굴에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온유함이 감돈다.”고 했다.

5. 구세주의 온유함

대부분의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이콘은 그리스 이콘이든 러시아 이콘이든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상당한 두려움을 자아낸다. 이런 이콘들은 찬란한 하느님의 엄위를 강조한다. 그래서 이콘을 바라보는 우리의 합당한 자세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하찮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루블료프의 그리스도는 뭔가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왕좌에서 내려와 우리 어깨를 툭 치시면서 당신을 쳐다보라고 초대하는 것 같다. 예수님의 잘 생기고 개방적인 얼굴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을 자아낸다. 의심하는 토마에게도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루카 24,39) 하시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우리와 얼굴을 맞대고 꿰뚫어보시는 그분의 눈은 시편 저자의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제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당신께서는 헤아리시고
당신께는 저의 모든 길이 익숙합니다.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이미 당신께서는 모두 아십니다.
...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시편 1,1-4.7)

이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를 돌보시는 분의 사랑어린 보살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6. 하느님의 얼굴

우리는 이제 하느님을 보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 예수님을 본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높이 멀리 계시지 않는다. 그분을 똑바로 쳐다본다고 꾸중하지 않는 분이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은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요한 14,8-9)

“하느님의 영원한 신비를 꿰뚫어 본 바로 그 눈이 또한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남녀의 가장 은밀한 존재도 들여다보았다. 그 분은 시몬, 안드레아, 야고보, 필립보, 나타나엘, 그리고 세리를 보고 그들을 제자가 되라고 불렀다. 그 눈은 마리아 막달레나, 나임의 과부, 절름발이, 문둥병자, 굶주린 군중을 보았고, 그리고 그들을 낫게 하셨다. 그 눈은 부자 청년의 슬픔을 보았고, 호수에서 제자들의 공포를, 십자가 밑에 계신 당신 어머니의 외로움을, 그리고 무덤에서 여인들의 슬픔을 보았다. 그분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더럽혀진 성전과 믿음이 없는 예루살렘을 보았다.

그 눈은 또한 믿음도 보았다. 지붕을 통해 중풍 들린 친구를 내려 보낸 남자의 믿음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청한 가나안 부인의 믿음을, 중풍 들린 하인을 둔 백인대장의 믿음을, 그리고 크게 괴로워하며 자비를 달라고 외치는 장님 바르톨로메오의 믿음을, 그리고 당신의 옷자락을 건드린 하혈병 걸린 부인의 믿음을 보았다.”

그분은 세상이 인간의 죄로 박살난 것을 보시고 연민을 느끼셨다. 하느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 눈이 하느님 백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요한 11,36 참조) 하느님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며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 눈에는 언제나 또 어디에나 있는 인간의 슬픔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눈물의 바다’가 담겨 있다. 이게 “루블료프의 그리스도의 눈이 지닌 비밀”이라고 헨리 나웬은 말한다.

[참고]
<러시아 미술사>(이진숙, 민음인, 2007)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주헌, 학고재, 2006)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헨리 나웬, 분도출판사, 1989)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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