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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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 한상봉
  • 승인 2018.05.1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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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이콘 묵상-1

아이콘과 이콘

이콘(icon)은 영어의 아이콘처럼 우리에게 컴퓨터 관련 용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디자인이 예쁜 조그만 그림을 클릭하면 곧바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 아이콘의 특징은 ‘휴지통’ 아이콘이 실제 휴지통을 잘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호이며, 원하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고리 같은 것이다. 중세미술에서도 이콘은 예수와 성모,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형상을 뜻한다. 아이콘 때문에 컴맹이라도 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이콘 덕분에 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중세 민중들도 교리와 성인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하느님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 미술사>(민음인, 2007)에서 이진숙은 “컴퓨터의 아이콘이 프로그램의 방대한 수학적 논리를 감성적으로 상징하는 것처럼, 중세인들에게 이콘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육화된 감성적 상징’이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컴퓨터 아이콘을 ‘그림’이라고 여기지 않듯이, 중세인들도 이콘을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콘은 하느님의 세계가 드러난 것이므로 감상의 대상인 예술 작품이 아니라 기도와 숭배의 대상이었다.

 

동방정교와 이콘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주헌, 학고재, 2006)에서는 러시아가 동방정교(Eastern Othodoxy)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교회와 예배의식이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 건국신화를 담은 <원초연대기>에 따르면, 키예프 러시아의 공후 블라디미르는 986년 러시아 땅에 종교를 전하려는 주변 국가들의 사절단을 접견하고, 각 종교의 본거지에 사신을 파견했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좌절하고, 유대교는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겪은 거친 운명 때문에 거부되고, 가톨릭교회는 미사에서 별다른 감흥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방정교의 예배의식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사절단은 예배 중에 자신들이 “천국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 광휘와 아름다움에 놀라서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의 예배의식은 다른 민족의 예배의식보다 더 아름답다.”고 보고했다. 이 말에 감동한 블라디미르는 988년 세례를 받고 동방정교를 국교로 선언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에는 어느 마을이든 교회와 농부의 오두막, 귀족의 저택과 차르의 궁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이콘이 서너 점씩 걸려 있었다. ‘크라스느이 우골’(아름다운 모서리)이라 불리는 집 안의 동편은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고, 그 자리엔 어김없이 이콘과 촛대가 놓여있다. 러시아인들은 황제든 농부든 누구나 이콘 앞에서 기도했다. 소소한 일상부터 국가적 사안까지 그들은 기적이 일어나 자신들이 보호받기를 청했다.

이콘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대해 책임이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대해 책임이 있다.”(헨리 나웬)

헨리 나웬은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분도출판사, 1989)에서 네 가지 이콘을 소개하며, 이콘 보는 법을 찬찬히 일러준다. 헨리 나웬은 “정신 바짝 차리고 응시하라.”고 한다. 서방교회의 영성에 밑돌을 놓은 성 베네딕도는 먼저 “들으라”고 권하지만, 동방교회의 교부들은 ‘응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콘을 응시한다는 것, 이콘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콘은 영원을 내다보는 창문과 같기 때문이다.

“이콘은 우리의 감각에 즉시 와 닿지 않는다. 우리의 감정을 흥분시키거나, 황홀하게 하거나 선동하지 않지도,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뭔가 경직되어 있고 생명력이 없고 도식적이고 따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콘은 첫눈에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참을성 있게 기도하면서 그 앞에 오래 머문 뒤에야 비로소 서서히 우리에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참고]
<러시아 미술사>(이진숙, 민음인, 2007)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주헌, 학고재, 2006)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헨리 나웬, 분도출판사, 1989)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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