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찬노숙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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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찬노숙 예수
  • 한상봉
  • 승인 2016.05.09 11: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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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사랑> 리북, 한상봉 지음-3

밤늦은 시각,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가 그를 만났다. 그가 내게 담뱃불을 빌리지 않았다면, 그는 그저 행려자의 한 사람으로 얼핏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게 “아저씨, 담뱃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고, 나는 지나쳐 가던 길을 멈추고 그에게 라이터 불을 댕겨 주었다. “고맙소.” 그가 한 말이었다. 내가 잠깐 그의 눈빛을 스치는 동안에, 같이 가던 동료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십여 미터를 걷다가 친구가 말했다. “우리 저 사람하고 같이 차 한 잔 하고 가는 게 어때?”

그는 길바닥에 앉아 떡볶이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우리가 그에게로 다시 돌아섰을 때, 그는 이제 막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이런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이어서, 나는 더듬거리며 “차 한 잔 하고 가시죠...” 하고 말을 건넸다. 그는 순간 망설이다가 “좋소.” 하였다. 우리가 어느 지하 카페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그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차 한 잔을 나누려던 것이었는데, 그는 “술 안 될까요?” 하였다. 우린 지하 카페에서 그에게 칵테일을 시켜 주었고, 그는 단숨에 들이키고는 맥주를 더 마시고 싶어 했다.

나는 그가 그날 무슨 말을 하였는지 기억할 수 없다. 나는 그저 그 사람에게 술을 그만 할 것과 삶을 포기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등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 같다. 단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래서 가슴 한쪽에 그래도 묵직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뿐이다. 내가 젊어서 즐겨 불렀던 「너를 부르마」였다. 지금은 구겨진 얼굴이지만 김지하의 시에 붙인 노래였다.

음 너를 부르마
음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사랑이라 하마
아무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 쉬는 공기여
시궁창에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새삼스레 네 이름을 부르마
내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부르마
자유여 민주여 내 사랑이여

서글픈 노릇이다. 딱한 마음이다. 못내 안쓰러웠다. 그래도 웬만하면 잘들 지내고 있는데 모두가 안녕하신지, 묻는 것 같았다. 그는 사뭇 눈매가 강한 듯 하였지만,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 그가 상대방을 꾸짖듯 말할 때마다 나는 ‘부끄럼’ 많은 소년이 되거나 자책감에 생채기를 내었다. 저이는 나보다 진실했다. 저이는 나의 옹졸함과 턱없는 선심을 야유하는 것 같았다. 제 삶에 진실로 직면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름·답·다.

문 닫을 시간이 지났다는 카페 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한사코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주인의 손을 잡고 연거푸 고맙다고, 안녕히 계시라고, 복 받으시라고 말하곤 돌아섰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였지만 물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친구는 그에게 그림을 한 장 줄 수 없냐고 물었다. 그의 종이백에는 ‘달마 대사’ 그림 두 점이 돌돌 말린 채 담겨 있었다. 이미 많이 구겨져 있었으나, 달마 대사의 그림은 훌륭했다. 내 친구는 그 그림을 한동안 책상 유리판 밑에 곱게 깔아 두었다. 헤어지기에 앞서 친구는 말없이 그 사람을 꼭 껴안아 주었다. 우리가 돌아서서 가는 동안, 그는 내내 카페 입구에 서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쳤지만, 쓰러지지 않는 수행자 같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를 잊을 만할 때쯤 친구가 그의 안부를 전해 왔다. 가끔씩 그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오늘밤은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사동에 갔다가 다시 그 사람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젠 아예 큼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폼이 아예 짐을 챙겨서 집을 나온 모양이라고 했다. 아예 노숙露宿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라고 했다. 좌판에서 찐 계란을 들고 나와 뒤돌아서서 껍질을 까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연도 인연인 셈이다. 친구는 그가 우리보다 더 건강하다고, 더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더욱 부끄러웠다. ‘안전함’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온 날이 나를 겉보기와 다르게 비겁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생에 대한 혁명을 꿈꾸는 사람과 주어진 형편을 추스르는 데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한 생애의 끝에서 다른 경지를 갖고 다음 생애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상봉

가난뱅이가 세운 교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앞두고 발표한 교황칙서 「자비의 얼굴」 첫 구절이다. 교종은 지난 3월 13일 희년을 선포하면서 하느님의 거룩한 본성이 곧 자비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격으로 드러낸 것 또한 ‘하느님의 자비’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보여 준 지난 2년간의 행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형제들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자못 강경한 발언까지 나왔겠는가. 그만큼 교종이 바라본 세상의 참상은 가난한 이들에게 ‘무자비’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람페두사의 난민들을 비롯한 이들의 고통은 경제 독재와 무자비한 정치권력에서 비롯되었다. 이 희생자들에게 하느님은 없었다. 자비의 희년이란 그들에게 하느님을 돌려주자는 데서 나왔다. 연약한 이들에 대한 권력의 무자비와 무관심이 한국 사회에서는 ‘박근혜 현상’을 낳았다. 최근 JTBC에서 방영한 ‘썰전’에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방대’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국민의 안전을 방치하는 대통령’이란 뜻이다. 자신의 안전에만 몰두하는 권력을 둔 한국 사회는 그만큼 불행하다. 이 마당에 예수가 정치, 경제 권력이 멸시하던 ‘노숙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교회의 건강상 오히려 좋은 일이다. 예수 역시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머리 둘 곳조차 없었다(마태 8,20; 루카 9,58). 그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설교를 하였고, 즉석에서 빵을 모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으며, 잔칫집에서 얻어먹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먹보요 술고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가 언제나 푸짐하게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대체로 굶고 대체로 거르고 대체로 위장을 비워 두셨기에, 먹을 음식이 생기면 침만 발라도 밥이 목구멍에 넘어갈 정도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허기가 반찬이다. 언제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약이 없기에 한 번 먹되 양껏 먹었을 것이다. 부자들은 먹고 싶을 때 먹고 골라서 먹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끼니때 마다 먹을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구했으며 주는 대로 먹는다.

물론 예수는 돈도 없었다. 당연히 세금조차 제 돈으로 낼 수 없었다. 복음서에 성전세를 둘러싼 예수 이야기가 나온다(마태 17,24-27). 세금장이들이 성전세 문제를 걸고 들어왔을 때, 예수가 따로 베드로에게 물었다.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인두세를 누구한테서 받아 내느냐? 자기 자녀들한테서 받느냐? 남한테서 받느냐?” 당연히 ‘남’한테서 받아 낸다고 베드로가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는 “그렇다면 자녀들은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하느님의 성전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세금을 치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는 다툼을 피하기 위해 한 걸음 양보하여 세금을 냈다. 어디서? 복음서에선 낚시한 물고기의 입에서 은전을 꺼내 주었다고 전한다. 그는 결코 돈을 휴대하지도 않았으며, 있다면 여유 있는 여인네들이 내어 놓은 보조금에 의존했을 따름이다. “...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가 8,1-3).

예수가 잡히던 날 밤에도 그들 일행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는데, 이런 보잘것없는 사람이 기실 메시아였다는 것, 하느님의 아드님이었다는 것을 믿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노숙 생활을 하며 갈릴래아의 호숫가와 성읍들 그리고 유다 땅을 두루 돌아다녔던 가난뱅이들이 교회를 세웠다. 그러니 예수가 평소에 하시던 말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은 진실이다.

가난한 이가 가난한 이를 돕는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광화문 천막에 모이는 사람은 정부 각료들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위 성직자도 아니다. 참혹한 죽음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안산 단원고 아이들처럼 가난한 갑남을녀들이다. 가난한 사제들이다. 이처럼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이 세상 사람들을 온통 사랑하신다는데, 나름대로 갖춰 입은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방법이 왜 없을까?

예수는 한 율법학자가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보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고 칭찬했다(마르 12,33-34). 그러니 교회당의 격식과 전례보다 더 아름다운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가난한 이웃이 우리를 구원한다. 날마다 경전을 읽으며 주일마다 교양 있는 강론을 듣고 예배하느라 자선할 여유가 없는 사람은 도리어 구원의 걸림돌인 경우가 많다.

초기 교회 교부들은 한결같이 재화의 공공성과 분배를 촉구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주교관 옆에 구빈원을 설치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는 “그대가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대가 베푸는 것은 그대의 것이 아니라, 그대와 그대의 동료와 종복이 함께 공유해야 할 그대 주인(하느님)의 것이다. 그러기에 그대는 그대의 혈족인 사람들의 재난에서 각별히 겸손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재화는 하느님께서 만인을 위해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교회 전통은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을 도울 때는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본래 하느님의 소유인 재화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 바실리오 교부는 루카 복음을 읽으며 이렇게 강론했다.

“어떤 사람이 남의 옷가지를 훔치면 우리는 그를 도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발가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줄 수 있음에도 마다하는 사람도 똑같이 불러야 옳지 않는가? 찬장에 들어 있는 빵은 굶주린 사람의 몫이다. 입지 않고 옷장 안에 걸어 놓은 외투는 외투가 필요한 사람의 것이다. 신장에서 곰팡이 슬고 있는 신발은 신발이 없는 사람의 것이다. 여러분이 욕심 부려 쌓아 놓은 돈은 가난한 사람의 것이다.”

여기선 공동의 재화를 혼자서 독점하는 것이 곧 ‘범죄’라고 가르친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자신의 물자를 나누지 않는 것, 이것이 강도질이다. 내가 하는 말에 놀랄지 모른다. 하지만 놀라지 말라. 내가 하는 말은 성경이 증언하고 있나니, 성경은 비단 남의 재산을 갈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대의 재산을 남들과 나누지 않는 것 역시 강도질이요 탐욕이요 도둑질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암브로시오 교부는 나봇의 포도원(1열왕 21장)을 다룬 해설서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대는 벽을 포장할지언정 헐벗은 사람은 모른 체한다. 저들이 발가벗은 채 그대의 집 앞에서 울부짖어도 그대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발가벗은 사람이 울부짖건만, 그대는 마룻바닥을 어떤 대리석으로 포장할까를 궁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필요해도 손에 넣을 길이 없다. 인간은 빵을 구걸하건만, 그대의 말은 황금 재갈을 물어뜯느라 이를 바득거린다. 남들은 먹을 것조차 없어도 그대는 호화로운 장신구를 치렁거리며 우쭐댄다. 아 부자여, 그대는 얼마나 끔찍한 판결을 벌어들이려는 것인가? 사람들은 굶주리는데 그대는 곳간을 닫는다. 사람들은 흐느끼는데 그대는 반지를 돌리고만 있다. 수많은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힘이 있으면서 의지가 없는 그대, 불행한 인간이여! 그대의 반지에 박힌 보석 값이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도 남으련만.”

이 설교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가난한 이들은 다른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구원받을 특권을 누린다. 그러니 그들은 당연 행복하다.

ⓒ한상봉

자비의 희년, 이천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 희년’은 신명기법전에서 제정한 희년법을 계승한 것이다. 만사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평등한 제자리로 돌려 형제적 관계를 구조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제안이요 장치다. 그리고 여기엔 당연히 약자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수고한 사람과 땅과 짐승이 휴식을 취하고, 억눌려 살던 노예들이 자유를 얻으며, 빼앗긴 땅을 도로 되찾고, 약자들이 기쁨을 얻게 된다.

이 희년법은 당연히 예수의 복음 선포에서도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란 지상에서 희년을 선포하고 그대로 사는 세상이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대로만 산다면, 만인이 기뻐하며 노루처럼 껑충껑충 뛸 것이다. 만인이 만인에게 가족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이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에 의해 시작된 가톨릭일꾼운동에서 ‘환대의 집’이란 이름으로 계승되었다. ‘환대의 집’은 교부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소외된 이들을 맞아들이고, 갇힌 이들을 방문하며,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고, 집 없는 이들에게 방을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이 집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 고아, 노인, 여행자, 순례자 그 밖의 곤궁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이 집은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안식처이면서 독서실과 직업 훈련을 제공하고, 기도와 토론과 공부를 하는 곳이다. 누구나 환영하는 이 집에선 항상 커피가 난로에서 끓고 있었고, 있는 재료를 아무거나 넣고 끓이는 ‘잡탕 찌개’가 굶주린 사람들을 기다려 주었다.

도로시 데이는 기증받은 물건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어느 날 멋쟁이 여자가 내놓고 간 다이아몬드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는 감동적이다. 도로시 데이는 이 다이아몬드를 늘 이곳으로 식사하러 오던 노파에게 주었는데, 이를 보고 어느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이 반지를 금은방에 가져다 팔았으면 그 노파의 일 년 집세를 내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라며 투덜거렸다. 도로시는 노파 역시 인격을 가진 사람이므로 반지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팔아서 일 년치 방값을 낼 수도 있고, 바하마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그 멋쟁이 부인처럼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다닐 수도 있다고 했다. 도로시가 그 직원에게 되물었다. “하느님께서 부자들만 즐기라고 다이아몬드를 창조하셨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멋진 말인가. 찾아오는 낯선 누구라도 고귀한 인격으로 대접하려는 태도야말로 밥 한 그릇 보다 더욱 값지다.

정말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예수처럼’ 환대한다면, 그네들 안에 깃든 성령을 발견하는 눈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환대의 집은 이처럼 교회의 고위성직자들에게는 ‘가난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사람다운 존엄성을 되찾게 해 주며,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위해 일할 공간을 제공해 준다. 이 얼마나 은총 가득한 성소인가? 사실상 자비의 희년은 따로 없다. 자비의 희년은 예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실 때 이미 시작되었고, 자비의 ‘특별’희년은 그 사건을 기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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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2016-05-10 09:12:04
감사합니다...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일깨워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