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왜 깨달음은 한 발 늦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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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왜 깨달음은 한 발 늦게 오는가
  • 한상봉
  • 승인 2017.05.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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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장엄하다-2

직장을 옮긴 뒤로는, 어찌된 일인지 술이 무척 늘어 버린 것 같다. 이건 뭐 전에 있던 직장에 대한 아쉬움이나 새로운 자리에 대한 미숙함으로 인한 어설픈 심경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어찌된 영문인지 이래저래 술자리가 늘어났다는 것뿐인데, 예전처럼 숙취를 심하게 느끼거나 머리가 아프지 않다. 그러니까 이른바 주량이 늘어난 모양이다. 지난 사흘 동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리 새벽까지 술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늘상 술을 피해 살아온 20대요 30대였는데, 내겐 희한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이런 사태가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내겐 반가운 전조(前兆)처럼 여겨진다. 술 좋아하는 녀석들이 다 인간성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성 좋은 녀석 치고 술 싫어하는 녀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도 인간성 좋은 벗들의 반열에 끼고 싶은 것일까?

사는 게 죄라는 푸념

아, 나흘째 되는 오늘 밤은 제발 일찍 자야 하는데, 그래야 내일이 걱정스럽지 않을 텐데…… 벌써 새벽 2시 반이다. 물론 술 탓은 아니고, 이렁저렁 하루 낮을 보내고 나니, 일감이 밀려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밤이 깊으면, 그런대로 생각도 많아지는 것일까? 요즈음 내 입버릇이 무엇인가 하면, “사는 게 죄”라는 것이다. 매튜 폭스라는 생태 신학자는 오리지널 신(원죄) 대신에 오리지널 브래싱(원은총)에 주목해야 한다는데……

신앙 생활도 제대로 못하면서 신학을 한다는 게 첫 번째로 맘에 걸리는 가시 바늘이요, 불행한 인생들을 위하여 푼돈 한 번 제대로 쥐어 주지 못하면서 ‘복음적 가난’을 이야기하는 게 두 번째 비수요, 공부하고 사색할 시간도 없으면서 원고지를 메우는 게 세 번째 걸림돌이다. 내 삶을 꾸리고 있는 대부분이 이 모양이니, 당연히 사는 게 죄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줄곧 무언가 우리 삶을 구원으로 이끄는 힘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건 내 욕심일까, 아니면 하느님 욕심(?)일까?

부족하나마 삶의 공간을 채워 오면서 그나마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슬픔이야말로 인간을 정화시키고 구원으로 이끄는 가장 깊은 원천이라는 점이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슬픈 일이다. 슬픔은 안타깝고, 아쉽고, 억울하고, 가련하고, 불쌍하고, 상처입은 영혼에게서 나오며, 이 영혼의 파동에 접한 사람들은 연민과 동정심을 느낀다.

이 연민에서 출발한 투신은 하느님의 대자비하심에서 비롯되며, 그렇기 때문에 상처입은 영혼들에게, 가난한 영혼들에게 진정 기쁜 소식[福音]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초발심을 자아내게끔 만드는 슬픔에 대한 접촉이다. 내가 만난 한 여성은 몇 가지 어설픈(?) 기억에서 평생 잊지 못할 가장 깊고 끈질긴 인연의 고리를 발견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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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하나, 그 여자의 실낱 같은 희망의 한 끝자락

여중생 시절, 그녀는 평범했으며 여학생다운 고유의 발랄함과 부끄러움이 많았다. 시내 한가운데 있던 학교 앞에는 떡볶기집과 문방구가 주인처럼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고, 한 구석에는 어찌어찌 팔아 볼까 하여 들어선 몇 개의 좌판도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노인네가 껌이며 카라멜이며 몇 가지 액세서리를 무릎팍 앞쪽으로 한 줌 정도 깔아 놓고 팔았다. 행색이 남루한데다 가난에 찌든 몸이 더욱 오그라들어 있었던 탓일까? 그 노인은 소년처럼 아주 작아 보였다.

어느 날 그녀는 친구들과 온 시내를 쏘다니며 재잘거리다가 다시 학교 앞으로 되돌아왔다. 당연히 검정 구두는 거리의 먼지를 한껏 뒤집어쓰고 허옇게 눈을 뜨고 그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심통을 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평소에 눈길조차 두지 않았던, 그만큼 작고 초라했던 그 할아버지의 좌판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할아버지, 휴지 하나 주세요!”
일순간 그 노인의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노인은 흰색 휴대용 휴지를 건네 주며,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면, 빨간색(분홍색) 휴지도 들어온단다.”
그 동안 노인의 좌판에는 휴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참에 휴지라는 품목을 추가시켰는데, 아마도 여학생들인 탓에 분홍색 휴지를 더 좋아하리라 여긴 소박한 생각으로 모처럼의 손님에게 덧붙인 한마디였으리라.

그 소녀는 이 휴지로 구두의 먼지를 닦아 냈으며, 그 후로 그 노인네의 좌판을 다시 들렀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억은 실낱 같은 희망의 한 끝을 쥐고 산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을 잔잔히 흔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 노인은 다시 못 볼 불귀의 객이 되었을 텐데. 그 노인은 어린 시절 항상 그 자리에서 좌판을 했지만, 사실상 평생 한 번 만나고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단다. 이후 어른이 되어 어느 길모퉁이에서 만난 두 만남과 더불어……

기억 둘, 뙤약볕 아래의 응달, 그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슬픔

성균관대학교 입구에는 육교가 하나 있다. 그 여자의 두 번째 기억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 거리는 사방팔방이 온통 넘쳐나는 대학생들로 항상 북적거리는데, 인접해 있는 대학로와 마로니에공원은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넘쳐난다. 신세대들의 영양 좋고 때깔 고운 얼굴들이 나름대로 기대에 넘쳐 거리로 떠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성대 앞 이 육교에는 여름날 언제부턴가 열 일고여덟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앉아서 마늘찧기 몇 개를 팔고 있었다. 젊은 아이들치고는 병색이 있어 보였으며, 그 거리의 분위기에 영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그 거리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듯했다. 뙤약볕 아래서 응달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 장사가 잘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떤 사정이 이 아이들을 이리로 몰아갔을까? 하다못해 이 거리에 흔한 24시간 전문점이나 맥도날드 등지에서 서비스를 할 엄두도 못 내는 것은, 이들은 당당한 대학로에서 보잘것없는 중졸 또는 고퇴이기 때문일까? 밤이면 대학로를 목숨 걸고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중국집 배달하는 아이들처럼 숫기라도 있다면, 폭발하는 오기라도 있다면 덜 마음이 시큰할 텐데. “마늘찧기 사세요!……”라는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이 소리가 영혼에 와 닿는 사람들에겐 안타까운 심경을 증폭시킨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마늘찧기를 사들고 가면서도 내내 뒷머리가 땡겼다고 한다. 다음 번에 만났을 때는 머리핀을 팔고 있었는데, 그 이후론 이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생각을 할 때면 늘 마음이 아리다고 하는데.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 계속 장사는 할까? 어디서 할까? 아니면……’ 예수님은 누가 와서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를 가 주고, 누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밀라고 하셨다.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 내주라던 예수님의 말씀이 점점 부화 치밀게 만들고, 마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무력한 사람들, 포대기에 쌓인 아기와 같이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자책과 슬픔은 그대로 슬퍼해도 욕이 되지 않을까?

기억 셋, 왜 깨달음은 한 발 늦게 오는가

전철 입구에서 40대 중늙은이가 애를 먹고 있었다. 그분 역시 난장이처럼 쪼그라든 몸매였다. 그분은 전철 승차권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는데도, 연신 애를 먹으며 승차권을 그 구멍으로 들이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역무원이 “다른 데 넣으면 되잖아요!” 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뱉아 내었다. 그 사람은 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서 있었다. 승차권은 이미 여러 번의 실패를 입증하듯이, 몹시 구겨져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여자는 전철 승차권을 반듯이 펴서 대신 넣어 주었다. 그러나 승차권이 통과되었는데도 그 사람은 그냥 제자리에 서서 들어갈 줄을 몰랐다. 겨우 여자가 등을 떠밀어 받쳐 줌으로써 승강장 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그 남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멀쩡해 보였기에, 더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갈 길대로 전철에 올라타고서야, 그녀는 자신의 승차권과 그 사람의 구겨진 승차권을 바꿔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출구에서 그 남자는 다시 한 번 곤욕을 치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 좀더 영민하고 세심하게 배려해 주지 못했던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고

우리는 배운 게 없어도 사지만 멀쩡하다면, 얼마든지 세상의 불행한 인생들에게 손 내밀어 줄 수 있다. 거창하게 민주주의와 노동 해방을 외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늘진 세상에 그야말로 햇볕 한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자이다. 거창한 이념과 미래에 대한 엄청난 비전 때문에, 발끝에 밟혀 죽은 벌레 한 마리의 목숨을 무시하며 지내는 인생은 가련하다. 일부러 고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제 뜻과 무관하게 고통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질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안간힘 쓸 때, 우리는 이러한 삶이 주는 거룩함에 숙연해져야 한다.

착한 생령(生靈)이란 생령은 다 일찍 거두어 가시는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말 것이며, 오히려 부질없는 목숨을 연장시키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무작정 좋아라 해서도 안 된다. 때로는 살아서 고해(苦海)요, 죽어도 극락임을 깨달을 날이 올지 모르니, 살아 숨쉬는 순간만이라도 악업(惡業)을 쌓지 말고, 우리 인생의 동행자들을 두루 살피며 손잡고 살아갈 일이다.

미물 속에 마침내 온 우주가 그득하니, 미물들의 생로병사에 민감하고 연민 가득할 일이다. 이렇게 여기고 살아도 그리 만만치 않은 삶이 우리를 때때로 속여 넘길 것이다. 누구의 말대로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그저 다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되살려 내는 길밖에 달리 구원은 없을 것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늘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영영 구제받지 못할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각에 다시 묻자, 우리는 돌심장을 거둬 내고 살심장을 심고 있는지. 아니면 살심장을 거둬 내고 겹겹이 갑옷을 껴입고 있는지. 그런대로 한 세상을 무리없이 맞이하려면, 적당히 체면치레도 하고,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적당히 눈을 감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처세술을 아직도 믿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그럼 지금 나에게도 그렇게 묻는다. 답변을 주저하고 있다면, 나도 슬픈 중생이다.


[출처] <연민>, 삼인, 2000. 이 글은 제가 삽십대 중반 <공동선> 편집장 시절에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세월이 흘러도 마음과 생각의 갈피는 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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