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하느님의 선물은 '일용할 양식'
상태바
[예수, 그 낯선 분] 하느님의 선물은 '일용할 양식'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3.27 0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수와 경제 - 8
Helena Cherkasova (b1962, Moscow, Russia)

<주님의 기도>(마태 6,9-13)는 마태오 복음서 5-7장의 산상설교 중에서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한 중앙에서 전체 산상설교의 핵심 내용을 잘 정리하고 요약하고 있는 것이 <주님의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시기 직전에 예수는 기도하는 사람의 기본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7-8) 곧 <주님의 기도>를 빈말로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

예수는 <주님의 기도>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의 구체적인 방식뿐 아니라 이 땅 위에서의 당신의 사명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예수가 의도한 복음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거듭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님의 기도>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방식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머지 창조 세계와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서 예수는 이제 “우리”와 관련하여 간구한다.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위한 간구이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는 인간의 배고픔과 기본적인 필요와 관련된다. 이것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광야의 생활을 연상케 한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매일 만나를 양식으로 주셨다.(탈출기 16장)

하느님의 선물인 양식을 이스라엘은 매일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고 그것을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주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아침까지 남겨둔 양식에서 구더기가 꾀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탈출 16,20). 이와 같이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충실해야한다고 가르친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자 말고 하늘에 쌓아야 한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은 하늘의 새를 먹이시고 들에 핀 나리꽃을 입히신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고 가르치고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한다.(마태 6,19-34) 이 산상설교의 문맥(context) 안에서 예수의 기도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당신의 창조 세계를 통하여 주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초대한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우리 인간이 양식을 창조하지 않았다. 인간의 모든 물질적 소유는 그것의 창조주, 소유주로부터 받은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에게 음식을 공급하신다. 그래서 매일의 양식을 선물로 받는 우리는 그것을 주시는 분을 신뢰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신께 바랍니다, 제때에 먹이를 주시기를. 당신께서 그들에게 주시면 그들은 모아들이고 당신 손을 벌리시면 그들은 좋은 것으로 배불립니다.“(시편 104,27-28)

“모든 눈이 당신께 바라고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때에 주십니다. 당신의 손을 벌리시어 모든 생물을 호의로 배불리십니다.“(시편 145,15-16)

따라서 매일의 양식을 기도하는 것은 매일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느님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필요 이상의 것을 쌓아 둔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지배받을 것이고 결국 하느님과 별개로 살게 된다. 그래서 이 기도는 우리 공동체의 정의와 공정, 곧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을 위한 기도이다. 즉 기본적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 공동체가 돌보기 위한 기도이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의 대안적인 공동체를 이룬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며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린다. 그리고 굶주린 이와 양식을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집에 맞아들이며 헐벗은 사람을 덮어 준다.(이사 58,6-7)

이와 같이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는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5-16)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는 우리의 생활 방식을 변화하도록 초대하는 깊은 사회-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의미를 가진다. 양식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그것은 우리가 나머지 창조 세계와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없는 가난한 이들과 우리의 양식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기도에서 우리가 발설하는 이 말들에 걸맞게 살도록 우리는 초대받고 있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