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곰탕과 싱싱한 깍두기를 내밀며…“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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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곰탕과 싱싱한 깍두기를 내밀며…“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 심명희
  • 승인 2017.03.0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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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희 칼럼]

그가 웃으면 빠진 앞니 두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치과 선생님이 브릿지 해주겠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유인즉 거울을 볼 때마다 빠진 앞니 앞에서 스스로에게 맹세 한다고 했다. “너 또 술 마시면 개다!”

그의 빠진 앞니 두 개를 볼 때마다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의 ‘홀로코스트 타워’가 생각났다. 차디찬 콘크리트 벽과 캄캄한 어둠에 갇힌 인간, 실존의 극한에 서 있는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상징물. 그것처럼 빠진 앞니 두 개의 존재는 술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치열한 노력과 투쟁이 담긴 자신만의 랜드마크 같은 것이었다.

그가 죽었다. “아저씨가 돌아가셨어요!” 그가 가끔 들러서 박카스도 얻어 마시고 박스도 얻어 가는 시장 안 약국의 김약사가 지난 밤에 그가 죽었다고 알려 왔다. 한 평 반의 쪽방에서 목을 맨 한 노숙인의 죽음이었다.

눈을 감으면 13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생생하다. 행려환자로 노숙인 자선병원에 약을 타러 왔던 첫날 인상은 호쾌한 육십대의 순박한 아저씨였다. 허풍과 유머, 애교, 낙천적 무한긍정으로 무장한 매력만점의 이 사나이는 우중충하고 우울하고 어두운 자선병원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외치는 그의 아침인사를 들으면 기운이 절로 나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마리아~ 마리아~” 귀에 꽂은 보청기와 상대방의 입모양으로만 소통이 가능한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는 우렁차다 못해 소음, 굉음이다.

아침마다 병원 현관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일어나서 내 어깨를 얼싸안고 내 이름을 힘차고 씩씩하게 불러 주었을 때 처음엔 무척 당황했다. 이 노숙인의 격렬한 포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어느 날 내가 몸살로 약제실의 의자에 축 늘어져 있자 대뜸 이렇게 하면 금방 낫는다며 목, 어깨, 등에 안마를 시작했다. 중대한 사명을 위임 받은 신탁인양 진지하고 온 힘을 다해 안마에 몰입하는 그의 정성에 압도 당해 거의 무차별 폭행(?)에 가까운 안마를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받아야했다. 이제 제발 다 나았다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그를 안심시켜서야 비로소 고문(?)은 끝났다. “마리아, 아프면 안돼!” 천진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당부하면서.

사진출처=pixabay.com

50년 전 귀머거리 소년은 전북 정읍의 시골집을 도망쳤다. 계모의 학대와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서였다. 서울역 근처를 헤매다 취직한 곳이 중국음식점이었다. 귀가 들리지 않아서 시키는 일을 잘 못 알아듣고 실수를 연발했다. 그럴 때마다 병신이라고 주먹질 발길질 매질이 쏟아졌다. 그래도 소년은 꿈을 꾸었다. 주방에서 나오는 뜨거운 짜장면의 고소한 냄새와 까만 비주얼, 혀에 착착 감기는 기름지고 구수한 맛에 반했다. 짜장면을 만드는 기술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청각 장애에 읽고 쓸 줄 모르는 무식꾼이라고 당한 멸시, 냉대, 배신, 폭행, 사기는 그를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만들었다. 한 번 술을 입에 대면 식음을 전폐하고 일주일,한달을 마시다가 결국 행려자로 노숙인 병원에 실려왔는데, 대부분의 노숙인이 그렇듯이 그도 여기가 인생의 종점이 되었다.

마침내 그의 날이 왔다. 꿈을 이루었다. 짜장면을 만드는 요리사가 되었다. 병원의 지하실에 있는 주방을 그에게 내어 주고 한 달에 한 번 점심으로 그가 만든 짜장면을 먹기로 했는데 그의 자활을 위한 시도였다.

“마리아, 내 짜장면 먹어봐!” 그는 한 달 전부터 자신이 중국음식점을 개업이나 한 것처럼 들떴다. 그날, 반팔 러닝에 반바지, 이마를 수건으로 질끈 묶은 채 땀을 흘리며 불앞에서 프라이팬과 씨름을 하며 밀가루 반죽을 내리치는 모습은 과거의 한과 설움, 절망, 슬픔, 외로움을 짜장면으로 승화시키는 장엄한 예식이었다. “짜장면은 토종 흑돼지라야 맛있어.” 자신이 만든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열성 팬들 앞에서 요리비결이 ‘흑돼지’임을 강조하는 이 기특한 주방장에게 모두들 엄지 손가락 척! 으로 응원했다.

술은 물귀신처럼 그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일어나서 걸어가고 있으면 술이란 놈은 슬그머니 찾아와 그를 넘어뜨렸다. 자선병원에서 그의 모습이 하루라도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갈 곳 없고 의지할 데 없는 그에게 병원은 집, 친구, 직장, 가족,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그가 오늘 이곳에 없다는 사실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블랙홀에 빠졌다는 것, 블랙홀은 ‘술’이다.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내면 지린내 땀내 시궁창 냄새로 함께 비몽사몽인 채 길바닥에 누워있다. 누구에게 맞은 건지 넘어진 건지 옥수수 알처럼 야무지게 박힌 잘 생긴 앞니 두 개도 그렇게 잃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맹세하고 후회하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듯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미워하고 타박했다. 왜 그렇게 의지가 그렇게 약하냐고. 십수년 동안 그가 넘어지고 일어섰던 숫자만큼 그를 향한 실망과 희망도 그렇게 반복되었다.

‘회자정리’라던가. 자선병원의 주인이 바뀌자 우리도 헤어졌다. 나도 그도 집과 가족을 잃은 셈이다. 그는 폐지를 수집해서 돈을 모으면 짜장면 가게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병원을 떠나는 날, 그는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용돈을 내 손에 꼬옥 쥐어 주었다. 천 원짜리 열 장, 만 원이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겨울 날씨다. 이른 아침 신촌 로터리를 지나는데 곰탕집 옆 골목 안에 노숙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연탄재에 남은 온기를 꼭 껴안고 몸을 녹인다.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팔천 원을 주고 노숙인에게 곰탕을 갖다 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다행히도 흔쾌히 부탁을 들어준다. 뜨거운 곰탕과 싱싱한 깍두기를 담은 쟁반을 노숙인 앞에 내밀었다. 그가 얼굴을 들고 힐끔 쳐다보며 웃는데 그의 입으로 먼저 눈이 갔다. 앞니 두 개가 없다. 돈을 달라는 그의 눈빛을 읽고 만 원을 내밀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출처/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7.2~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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