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d test 맹검시험
상태바
blind test 맹검시험
  • 심명희
  • 승인 2016.12.04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명희 칼럼] 

노숙인 유씨가 성당에 간 날은 하필이면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였다. 성당 입구에 걸린 ‘예비자 모집’이라는 펼침막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잃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자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에서 머물 때 잠깐 종교를 생각했지만 왠지 예배당 보다는 성당에 마음이 끌렸다.

막상 성당 앞에까지 왔지만 죄 지은 사람처럼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용기를 내서 성큼 성당 안으로 발을 옮겼다. ‘마지막 기회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세례를 받자!’ 자신을 다그치면서 성당 뜰을 지나 계단을 한 발 한 발 올라간다. 드디어 사무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한상봉

조그맣게 나 있는 사무실의 창구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보인다. 긴장한 손으로 ‘똑똑똑’ 조심스럽게 창구의 유리문을 두드린다. 문이 반쯤 열리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고개를 숙여서 겸손하게 인사부터 했다. “저...” 용건을 말하려는 데 순간, ‘탁’ 창문이 닫히는 게 아닌가! 당황했다.

다시 ‘똑똑 똑’ 두드렸다. 그러자 빼꼼히 창이 열리더니 문 사이로 손이 쑥 나왔다. 손에는 푸른색 지폐가 들려있다. 천 원이다. ‘어? 이게 아닌데...’ 고개를 가로저으며 있는 힘을 다해서 외쳤다. “세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 원을 든 손이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창문이 다시 열린다. 이번에는 천 원 짜리 지폐 두 장, 자존심이 쎈 그의 성격상 이쯤 되면 화를 내고 그냥 돌아갔어야 맞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어디서 그런 인내심이 솟았는지 또 두드렸다. 그러나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찰차 한 대가 성당 안으로 들어왔고, 그는 순찰차에 실려서 지구대로 갔다.

노숙인, 이런 흉칙한 얼굴로 세례를...

그를 처음 만난 곳은 노숙인 자선병원이다. 오랜 노숙생활과 당뇨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후라 몸과 마음이 지친 중년의 심각한 중환자였다. 자연히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되자 병원의 잡일을 맡아 하기 시작했다. 재활용품을 모아서 팔더니 점점 사람이 달라졌다. 일자리를 얻으면 가족부터 찾겠다고 자활의 의욕을 보였는데 덜컥 뇌종양이 찾아왔다. 그것도 말기, 6개월이라는 시한부를 선고 받고 투병하는 동안 머릿속의 암 덩어리가 그의 얼굴을 바꿨다. 눈, 코, 입이 내려앉고 코는 주먹처럼 커져서 코끼리 같은 괴상한 모습이 되었다.

그 뒤로는 의욕을 잃고 매일 출근하던 병원도 발길을 끊고 무료 급식소에도 나오지 않았다. 동료 노숙인의 쪽방에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한 평 반의 쪽방. 그것도 남의 방에서 쓸쓸하게 누워있는 그에게 무슨 말인들 위로가 될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때 그에게 슬쩍 신앙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를 믿지 누굴 믿느냐?”고 단칼에 거절했는데, 이번엔 내가 권하자 “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순순히 받아들인다.

사진=한상봉

삶을 결산하고 회개해야 할 시간이 왔다고 확신했을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의 몸 상태가 최악이지만 하루 빨리 세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도 초인적인 의지로 일어나더니 빨리 성당에 가고 싶다고 나를 재촉했다. 표시는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고민했다. 노숙인, 그것도 이런 흉칙한 얼굴로 과연 성당에서 무사히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 마음에 상처나 입지 않을까? 사실 노숙인은 오랫동안 불안정한 생활이 몸에 익어서 규칙과 질서를 못 견딘다. 그래서 언제든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이탈하는 것이 그들의 생리다. 큰 배려와 이해로 감싸주지 않으면 함께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세례를 받을 성당을 혼자 끙끙대며 찾고 있는데 어느새 그가 혼자 성당을 찾아갔다! 지구대에서 돌아온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성당에 전화를 걸어 비난과 항의를 마구 퍼부었다. 효험(?)이 있었는지 유씨는 성당에서 특별 예비자로 받아들여졌다. 지구대로 끌려가는 수모를 치루고 얻은 소중한 선물이리라. 돌아가시기 3개월 전, 그는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얻었고 한 조각의 미련도 집착도 없는 가볍고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

편견과 선입견 을 버리고...블라인드 테스트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가 있다. 실험자의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실험자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고 깜깜한 상태에서 하는 실험방법이다. 내가 일하는 이곳에도 ‘블라인드 테스트’가 있다. 위치상 이곳은 국회의원, 유력 정치인, 인기 연예인, 유명인사, 대형 교회의 성직자들, 사회에서 VIP(매우 중요한 사람)라고 알려진 사람들 즉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고객들이 많은 곳이다. 동시에 환경미화원, 청소원, 주방 도우미, 중국동포 아주머니, 경비원, 편의점 알바생, 폐지 줍는 어르신, 노숙인까지... 특별한 대우는커녕 평소 투명인간 취급에 익숙해진 분들이 또한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다.

이 분들 속에서 나는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시험대 앞에 선다. 내 눈을 가리는 일, 즉 국회의원은 금배지를, 연예인과 유명인사는 얼굴을, 성직자는 로만칼라를, 수도자에게는 수도복을 벗기는 것이다. 오직 그들을 민낯과 생얼로만 대면하는 것, 그게 나의 ‘블라인드 테스트’다. 그러고 나서 ‘사람’이라는 똑같은 이름을 모두에게 붙여준다.

오로지 이 이름 하나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평등하게 똑같이 VIP 대접을 하는 시험, 그것이 이 일터에서의 ‘블라인드 테스트’다. 나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란 무엇일까? 유씨에게 내민 천 원 지폐 두 장과 순찰차의 의미다. 어쩌면 일상에서 만나는 세상의 유씨들 앞에서, 이 시험대 앞에 서도록 나는 매순간 초대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출처/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6.11~2017.1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