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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와의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

[심명희 칼럼]

“좋은 아침입니다. 약사님!”

종윤씨가 아침인사를 우렁차게 건넨다. 편의점표 김밥 한 줄과 커피우유가 오늘도 그의 아침식사. 새벽 5시에 일어나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병원에 도착하면 7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진공청소기와 물걸레로 약제실 바닥을 청소한다. 스물아홉. 대학을 졸업한지 3년, 지금까지 취업을 위해 쓴 이력서만 해도 알바까지 합치면 100여 장이 넘는다.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이 알바도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취향과 재능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얻은 이 자리를 지키려면 경쟁력 있는 차별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알바 첫 날, 약창고 뒤편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가까이 가보니까 덩치가 산만한 청년이 쭈그리고 앉아서 한 손엔 김밥, 한 손에는 커피우유를 들고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는구나 짐작했다. 보기에 안쓰러워 내 자리를 내어주고 여기 앉아 편하게 먹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자릿값입니다!” 그는 아침마다 편의점에서 사온 캔커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피 같은 알바비인데 이런 헛돈 쓰지 말라고 내쳐도 소용이 없다. 여느 커피와는 다른 맛, 미안하고 먹먹하고 뭉클하고 뜨거운 맛이다.

혼신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그를 보고 과장은 익히 들었던 훈계를 시작한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해. 공장에서는 일할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인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되지 대학졸업장이 무슨 소용이 있어?” 과장의 말대로 그도 눈높이를 낮춰서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건설현장 일용직, 고깃집 서빙, 편의점과 마트, 짜장면 배달, 대한민국의 알바는 다 해본 자칭 ‘알바왕’이다.
 

by Floris


결국 시급 3,000원 짜리

자격증이 3개나 있고 지금도 학원에서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이력서를 쓰고 있지만 서른을 앞두고 취업은 낙관과 비관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이 병원에 오기 전 경기도에 있는 택배회사에서 시급 5,000원의 알바를 했다. 지방출신이라서 대학 다닐 때 학교 근처의 보증금 삼백만 원에 월 삼십만 원의 옥탑에서 살았는데,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고향의 부모님에게 손 내밀 염치가 없어서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싼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월세 이십오만 원의 지하방이라 서울에서는 꿈도 못 꾸는 방값이라고 횡재 했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웬걸, 택배회사는 경기도의 저쪽 반대편 끝, 극과 극의 위치를 오가면서 출퇴근 시간과 거리를 계산 해보니 시급 3,000원 짜리 알바를 하는 셈이다. 게다가 40kg 이상의 짐을 등허리가 휘도록 새벽부터 밤 9시까지 정리하다 보면 꿈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이대로 영영 짐짝만 옮기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과 공포가 덮친다.

아들 직장을 걱정하는 부모님에게는 인턴 사원으로 취직을 해서 일을 배우는 중이라고 둘러댔지만 이곳에서 온 몸으로 무지막지한 무게와 싸우는 일은 지옥의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야 하는 이유는 긴 터널을 뚫고 나오는 힘, 나락이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떨어졌다가도 다시 한 걸음 올라와 이전보다 더 성숙해지는 아름다움, 젊음이라는 특권을 가졌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렇게 꿀 알바도 끝나고

작년 가을, 우연히 병원의 홈페이지에서 알바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어깨가 부서지도록 종일 짐과 싸우는 이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택배 알바를 탈출했다.

“이런 일은 꿀 알바에요!.”

무슨 일이든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한다. 알바의 능력과 한계를 넘는 부당하고 무리한 업무도 거절도 불만도 표시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모두들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나는 왠지 그 모습이 짠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병원에서 유니폼, 흰색 가운을 입는다. 의사, 간호사, 약사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다 위생상의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최저 시급을 받는 알바다. 겉만 보면 표식이 없다. 그가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경기도의 지하 단칸방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 거리를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며 와야 한다는 사실, 즉 가난한 청년 노동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유니폼으로 ‘화장’을 했기 때문에 그는 ‘평범한 청년’일 뿐이고, 그렇게 ‘가난’을 삭제 했기에 우리는 바로 곁에 ‘가난한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종윤 씨의 ‘꿀 알바’도 끝났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니까 그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어제 ‘짤렸다.’고 한다. 어제 새벽에도 그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나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우유, 그리고 캔커피를 하나 샀을 것이다. 그리고 씩씩하게 출근했을 것이다. 해고라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오직 이 꿀 알바를 정식으로 취업할 때까지만 계속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김군은 내일부터 나오지마!” 출근하자마자 과장은 그를 불러 세우고 짧고 차가운 선고를 내렸다.

투명인간들에게도 예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마주 보고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지난 9개월 동안의 우정을 정리도 못하고 잔인한 이별을 했다. 사람들은 종윤 씨를 어떻게 기억할까? 흰색 유니폼을 입었기에 겉으로는 그의 빈곤을 눈치 챌 수 없다. 그가 우리 곁의 가난한 청년임을 전혀 모를 것이다. 그래서 가난과는 관계가 없는 투명인간처럼 여겼을 것이다. 그의 해고가 부당한 이유는 그가 가난한 청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가난의 표식이 없는 우리 곁의 수많은 투명인간들, 그런 투명인간들에게도 예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알바와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가난한 청년과의 이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7년 6-7월호(통권 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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